써니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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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금껏 만들어왔던 것과 개입해왔던 상황, 새로운 모색들을 통해서 완성된 풍경을 담은 회화 작품들과 함께 3차원의 구조물 위에 다양한 소재와 그림, 영상을 재배치하며 서로 관계 맺고 각자의 내러티브를 만들어가는 여정을 선사한다. <어둠에 뛰어들기>란 주제로 세 개의 공간에 회화와 영상, 오브제가 어우러져 낯선 이미지와 기억을 생성하며 살아있는 공간을 만든다. 어둠 속을 산책하는 관람객들은 공간의 저편이 개입하거나 감각을 매개하는 전이적 공간(transitional space) 체험을 거치며 ‘소녀들의 초상’, 성스러운 도상(iconic image)에 다다른다.
Interview
CV
<개인전>
2013 제 2의 생각, 스페이스 비엠, 서울, 한국
2010 롤링호그, 갤러리 현대 16번지, 서울, 한국
2006 완전한 풍경, 일민미술관, 서울, 한국
2004 클라우드 나인, 윈도우갤러리, 갤러리현대, 서울, 한국
2001 교복 입은 소녀들, 갤러리 사간, 서울, 한국
<주요단체전>
2017 올해의 작가상 201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한국
2016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한국
2014 네오산수, 대구미술관, 대구, 한국
2012 플레이타임, 문화역서울 284, 서울, 한국
2011 그녀의 독백, 주영한국문화원, 런던, 영국
2008 비싸이드, 두아트, 서울, 한국
2007 유클리드의 산책,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한국
2007 일래스틱 테부, 비엔나쿤스트할레, 비엔나, 오스트리아
2005 리메이크 코리아, 스페이스*C, 서울, 한국
2002 페인팅 애즈 파라독스, 아티스트 스페이스, 뉴욕, 미국
2002 또 다른 이야기 : 한.일 현대미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한국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 오사카, 일본
<프로젝트/퍼포먼스>
2014 풍경, 인천아트플랫폼 극장, 인천, 한국(큐레이터 배은아와 협업)
2012 정물, 문화역서울 284, 서울, 한국(큐레이터 배은아와 협업)
<소장처>
정부미술은행,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오사카국립국제미술관, 일본
서울시립미술관, 한국
코리아나화장품, 한국
김&장법률사무소, 한국
한국민속촌재단, 한국
<수상>
2014 풍경, 2014 플랫폼 초이스, 인천아트플랫폼, 한국
2014 풍경, 문화예술진흥기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
2002 뉴저지주의회 미술상, 미국
<레지던시>
2013 코퍼레이션 오브 야도, 뉴욕, 미국
2012&1999 뉴 햄프셔 멕도우웰 콜로니 프로그램, 뉴햄프셔, 미국
2009 유크로스 재단 프로그램, 와이오밍, 미국
2004 창동 3기 미술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 서울, 한국
Critic 1
수상한 장면: 그 시간의 틈으로
배은아 (독립큐레이터)
내 기억 속에 써니킴은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림은 여기도 저기도 아닌 아주 두꺼운 경계를 만들고 있었다. 그 곳은 땅이기도 바다이기도 했고 산 것이기도 죽은 것이기도 했으며 당신이기도 나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 모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1980년대 초 한국의 경제성장과 급변하는 사회정치적 환경은 무수한 개인들에게 변화와 이동을 강요했고 써니킴은 그 중의 한 소녀였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을 꿈꾸던 한 소녀의 이룰 수 없었던 미래는 성인이 되어 돌아온 고국에서 ‘그리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2001년 나는 써니킴의 <Girls in Uniform> 연작을 처음 만났고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한 재미교포의 상실된 미래를 재현한다는 것 이상의 다른 무언가를 상상했던 것 같다. 그 때 나의 질문은 써니킴이 ‘무엇을 그리는가?’라기 보다는 써니킴은 ‘왜 그리는가?’에 가까웠다.
써니킴의 초기 그림에 등장하는 이미지들 – 소녀, 교복, 수학여행, 학교, 십장생, 산수화 등 – 은 얼핏 보면 역사 속에 구축된 관습, 가치, 규범, 제도, 전통과 같은 상징체계를 다루는 듯 하다. 그러나 거기에서 탈락된 혹은 상실된, 불투명하고 어긋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숙한 이미지들은 보는 사람의 시선을 외면하고 저 바깥으로 이동하고는 했다. 써니킴의 그리는 과정에는 사진, 영화, 신문 스크랩, 잡지와 같은 재생산된 이미지들을 조합하는 시간과 이 이미지들을 기억과 망각, 사실과 허구, 과거와 현재, 성장과 죽음과 같은 알레고리로 구성하는 또 다른 시간의 축이 교차된다. 이러한 시각적 그리고 감각적 콜라주 과정을 지나면서 이미지들은 점차 심리적인 입체감을 획득하고 궁극에는 매우 수상한 장면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써니킴의 완벽하게 가공된 이미지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보고 있지만 볼 수 없는, 즉 ‘본다’는 행위 자체의 균열을 경험하게 한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얼굴 없는 몸이거나 몸만 남은 영혼 같았다. 소녀들은 그 소녀가 아니고 교복은 그 교복이 아니며 풍경은 그 풍경이 아닌 것이다. 써니킴의 그림은 어쩌면 논리 저편에 있는 불완전한 인식체계를 일깨우는 매개자일 뿐 그 어떠한 이미지도 재현하지 않으며 오히려 스스로 그 불안정함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나는 써니킴은 ‘왜 그리는가?’라는 질문을 시작할 수 있었다. 2012년과 2014년 사이 써니킴과 나는 두 개의 재연(Reenactment) 퍼포먼스를 만들었다. 써니킴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했던 그림 속의 소녀들을 실제 공간에서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던 <Still Life>와 그 소녀들이 바라보고 거닐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자 했던 <Landscape>는 써니킴의 그리는 과정이 캔버스가 아닌 삼차원의 공간에서 재연된 시간이기도 했다. 써니킴은 그림 속의 이미지를 실제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역사 속에서 상실된 개인의 정체성과 과거의 시간성을 현재로 소환하고자 했지만 궁극적으로 이들의 실체는 사라짐으로써 실존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현재에 침전된 과거의 기억을 반복 가능한 움직임과 살아있는 몸으로 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열망과 그러나 결코 다다를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이 공존한다. 죽은 것을 살리는 것, 정지된 것을 움직이는 것, 그리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는 것. 그녀의 이미지들은 세상의 언어로 읽혀지기를 거부하는 듯, 스스로 증발되기를 자청하는 듯, 그리고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 그 자체인 듯, 그렇게 부유하고 있었다.
그린다는 행위는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태초의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아무리 애써도 인간의 언어로 언어화될 수 없는 또 다른 언어이다. 써니킴의 그림이 무섭고도 슬프고 그리고 아름다운 이유는 아마도 말로 옮길 수 없었던 무수한 순간들이 우리의 눈 앞에 홀연히 등장하면서 온몸으로 우리를 관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그림이 무엇이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 태초의 무엇이기 때문이다. 써니킴은 왜 그리는가? 이 질문은 다시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내 안에 무엇이 계속 되는가? 그 인간의 조건을 상기하게 한다. 이러한 사유의 시간을 공유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써니킴과 함께 할 아직 다다르지 못한 여정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 시간의 틈으로 들어온 올해의 작가상에 그녀를 추천한다.
Critic 2
피동과 능동이 합작하는 회화
- 써니킴의 그림, 실천, 방법에 관한 미학 담론
강수미 (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1. 즐거움
회화처럼 역사가 오래된 예술일수록 사람들은 진보적이기보다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런 이들의 감각과 인식 속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든 그림은 무조건 좋고 명작이다. 반면, 21세기 현대미술가가 실험적으로 그린 회화는 언제나 이미 미성숙하고 난삽한 것으로 판단된다. 예술에 대한 관념 또한 파격적인 해석을 담은 새로운 미학보다는 관습적으로 통용되어온 논리, 개념, 이론적 내러티브를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 가령 일반인들 사이에서 미술사의 화가들은 모두 ‘천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고 사람들은 천재인 그들(거의 전적으로 유럽, 백인, 남성)이 그 단어에 담긴 뜻처럼 ‘하늘이 내린 재능’ 덕분에 뮤즈로부터 영감을 받아 위대한 작품을 창조했다는 신화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인간 이성이 쌓아올린 문화가 빛을 발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피카소가 “모던 회화에서의 연구라는 말” 대신 자신은 “발견”을 중시한다고 한 발언을 거듭 회자하고,1 고흐는 자신의 천재성에 고통 받았기에 그런 엄청난 그림들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라 믿는 식이다. 바스키아의 낙서화가 그토록 자유분방하고 묘한 에너지를 품은 것은 소수자의 외관을 한 (거리의) 천사가 작가의 내면에 불어넣은 영감 덕분이라는 등등 말이다. 천재, 재능, 뮤즈, 영감에 의한 비밀스런 창조 같은 개념이 거의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 아래 정리된 특정 관점의 미학적 주장이라는 점은 개의치 않고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좀 충격적이고 과격한 예술-뮤즈론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전개한 논리다. 그는 바쿠스 축제에서 주신(酒神) 바쿠스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래하고 연주하느라 손과 입이 바쁜 뮤즈의 모습을 “고객의 음경(physis)을 부풀리고 아랫배에 닿을 정도로 세워 사정에 이르게 하는 창녀” 같다고 서술했다.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가 비판적 현대 음악 미학서라 할 『음악 혐오』에서 고대 희랍 철학자의 그 같은 견해를 소개하고 있다. 인용을 통해 키냐르는 작품 창작이 자유로운 예술가의 능동적 행위만은 아니라는 점, 창작 행위의 모든 것이 “어딘가에 매여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싶어 한다. 키냐르에 따르면 그 매여 있음이 곧 “슬픔에 사로잡히는 것”을 의미하며, 모든 예술가의 기억/영혼과 작품들에 슬픔의 구속은 “술독 바닥의 찌기”처럼 가라앉아 있다.2 앞서 예술/예술가에 대한 오래된 믿음과 신화적 서사를 간직하고 싶은 이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뮤즈론은 환상을 깨는 선정적 비유일 것이다. 그리고 키냐르의 창작론은 뭔가 답답하게 읽힐 것이다. 예술 창작의 자유, 감상자의 미적 향유(aesthetic pleasure), 그 모든 즐거움을 두고 하필 슬픔에 옥죄인 찌꺼기라니…
2. 스케치
이제 써니킴의 미술을 논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나의 비평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이 글에서 초점을 맞추고 가능하다면 깊게 탐구하고자 하는 논제가 바로 ‘가장 오래된 예술’ 중 하나인 ‘회화’를 써니킴이라는 작가가 지금 여기서 행하는 문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창작과정에 내재한 방법론, 뮤즈의 영감 같은 거창한 후원은 고사하고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이 성공하리라는 작은 보장도 없이/없지만 어둡고 불확실한 걸음에 걸음을 더하고 더해 작품을 완성해가는 그 길에 관해 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제는 비단 써니킴에게만 해당되지 않을 수 있다. 거의 모든 동시대 예술가를 대상으로 논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한편으로 그렇게 예술의 보편적 문제라는 점에서 여기 우리의 비평이 초점을 맞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써니킴이 2012년을 기점으로 집중적으로, 그러나 자신의 페이스로 천천히 수행해가고 있는 회화의 과제는 오로지 써니킴만의 방식과 결과로 이어진다. 보편성으로 용해되지 않는 개별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이 글의 목적과 의도가 여기 있다. 요컨대 본문에서 나는 써니킴이 최근 5년 사이(왜 시간을 나누는지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회화를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는(왜 간단히 ‘그림을 그렸다’로 명시하지 않고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지도 차차 드러날 것이다) 내용 및 그 과정/결과로서 작품을 미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관습화된 예술 관념의 프레임 바깥에서 작업하고 있는 한 명의 작가가 컨템포러리 페인팅 작업을 통해 성취하고 있는 것과 그 창작의 여정 및 방법론에 관해 이해해볼 것이다. 미리 말하건대 거기서는 초월적 천재성이 아니라 작업 주체의 경험적이고 수행적인 질문과 회의(doubt)가 핵심이다. 또한 화가의 정수리든 손끝이든에 깃드는 뮤즈의 영감 대신 현실적 노고의 제작 행위, 창작의 완벽한 자유 대신 그것을 막는 비가시적인 힘들의 구속, 그에 맞서면서 또한 조응하는 작가의 부단한 시도가 관건이다.
3. 명시적인 것과 그 반대
시간을 거슬러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인 2001년, 써니킴은 서울 갤러리 사간에서 《교복 입은 소녀들 Girls in Uniform》이라는 첫 개인전을 통해 한국 미술계에 등장한다. 1969년생인 작가는 당시 삼십대 초반이었다. 그런 그녀가 들고 나온 작품은 전시 제목처럼 지나간 시대의 교복 입은 소녀들을 마치 훼손된 흑백필름을 인화한 사진처럼 그린 것이다. 전체적인 인물의 형상은 남아있지만 콧날이나 손가락 등 세부는 흐릿하고, 풍경은 아예 없거나 강한 명암대비로 파편화됐으며, 빛과 어둠의 날카로운 대립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그림들이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 작품들에서는 차갑고 건조한 느낌이 아니라, 그리움과 아련함과 포근함과 안타까움 같은 정서들이 뒤섞여 배어나오는 듯 했다. 얼핏 일제 강점기 조선의 여학생들이 떠오르지만, 교복 스타일 등 좀 더 사실에 입각하자면 1970~80년대 개발도상국 한국의 여학생들을 그린 것 같은 그림. 그것은 작가 자신의 과거 같지도 않지만, 무엇보다 20세기를 보내고 이제 막 새로운 밀레니엄을 시작한 시공간과 맞지 않았다. 요컨대 그 그림들은 써니킴의 지나간 경험이나 기억의 이미지도 아닐뿐더러, 비록 IMF 사태를 겪었지만 꽤나 부유해진 2000년대 한국의 화려한 현실을 비추는 거울도 아니었다는 말이다. 여기에 써니킴의 초기작들(형식상 초기와 최근으로 구분하자면)이 지닌 핵심이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교복 입은 소녀들》은 그렇게 화가 자신의 기억도 아니요 현실도 아닌 것, 과거의 이미지임에는 분명하나 지금은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성격의 이미지를 화면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왜 그것을 그렸을까?
써니킴은 중학교 2학년인 1983년 경 가족과 함께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 간 재미교포 1.5세대다. 거기서 내내 성장했고, 뉴욕 쿠퍼유니온 대학에서 회화를, 뉴욕 헌터 칼리지 대학원에서 종합매체를 전공해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신진작가로 막 나아가려던 참이었다. 그러던 그녀는 1998년 개인적인 사정으로 귀국해 서울에 정착했고,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내 미술계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므로 따지자면 이민에서 리턴까지 십 수 년 동안의 한국은 써니킴에게 공백이고, 경험이 부재한 시간이며, 따라서 사적인 기억이랄 것이 없는 텅 빈 공간이다. 하지만 그녀가 청소년기 중 어느 애매한 시기에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났다가 15년 이후 다시 한 번 자기 의지를 벗어난 상황 때문에 갑자기 귀환한 이곳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은 기이하게도 그 공백, 부재, 텅 빔 안의 존재(했으리라 추측할만한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없는 그 때, 그 곳에서 이런 소녀들이 저런 모습으로 이러저러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식의 과거 가정법 진행형. 1980년대 한국에서 여자중고등학교를 다니는, 경주 같은 곳으로 수학여행을 가서 고택 처마 아래 단정한 포즈로 친구들과 단체사진을 찍는, 칼라가 넓고 허리가 살짝 들어간 흰 상의와 검정색 치마를 입고 다소곳하지만 싱그러운 미소를 띠며 정면을 향해 서는 단발머리 그녀(들). 말 그대로 ‘교.복. 입.은. 소.녀.(들)’ 그 경험담 또는 이미지는 써니킴의 개인적이고 실제적인 기억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망각된 것 또한 아니다. 신경생물학자 이반 이스쿠이에르두(Ivan Antonio Izquierdo)는 저서 『망각의 기술』에서 다음과 같은 동료 연구자와 철학자의 주장에 동의하며 인용한다. “기억의 가장 두드러진 양상은 망각”이며,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3 그것이 옳다면, 써니킴의 그림은 기억과 망각의 관계로 포착할 수 없고 작가의 사적 기억은 물론 주체성이 부재하는 어떤 영역/층위를 표상하고 있다고 해석 가능하다. 그것은 한국의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기억↔망각 영역/층위겠지만 써니킴은 포함, 공존, 동반 되지 않는/할 수 없는 시공이다. 작은 단서지만, 영어 ‘uniform’과 그것을 한국어로 번역한 ‘교복’이라는 전시 제목부터 써니킴과 그때 그곳의 소녀들 간 부재 와/또는 거리감이 읽히지 않는가. 그러나 더 큰 차이가 있다.
《교복 입은 소녀들》은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인물을 기록하거나 과거를 보고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이 아니다. 존재의 흔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작가는 다소간 흔해빠지고 양식화된 옛 사진들을 불완전한 형상(figures)으로 재현함으로써 개인을 넘어서 작동하는 시대의 상실, 사회적 기억 안에 침전된 시차(parallax view), 인간 현존의 부박함 같은 것을 건드렸다. 그런 것들은 매우 추상적이거나 심리적이어서 시각화하기가 모호하고 논리화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미 잘 아는 스테레오타입 이미지, 현재에 잔존하는 사물들과 주변 환경, 일상적으로 느끼지만 또한 무의식적으로 흘려보내는 부박한 감정과 지각의 조각들이다. 이를테면 아주 명시적인 것들이자 반대로 그만큼 비가시적이고 복합적이며 다층적인 동시에 다자적인 힘들의 작용이다. 나는 써니킴의 초기작이 당시 작가 스스로도 충분히 의식하지 못한 가운데(영감의 영향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그 같은 것들을 추적하고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작업하는 와중에 써니킴 자신에게 던져졌을(누가 질문하는가? 작업 자체가.) 질문을 가정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즉 어떻게 캔버스에 개인적인 사실의 경험과 기억을 넘어선 내용을 그릴 것인가? 시차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리얼리티를 어떻게 회화가 강제하는 표현조건 속에서 가시화할 것인가? 이런 물음이 가장 오래되고 보수적인 장르인 ‘회화’가 동시대 지금 이곳의 한 화가에게 던지는 미션으로 부상했을 것이다. 겉으로야 《교복 입은 소녀들》이 노스탤지어와 멜랑콜리를 자극하는 추억의 사진을 심플하게 재 형상화한 회화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내가 보기에 써니킴은 당시 그 미션을 자각하기 전이었고, 어느 시점까지는 꾸준히 교복 입은 소녀들을 여러 배경과 모티프로 변주하면서 작업들을 쌓아올리는 데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러나 2012년 이 작가는 과감하게 평면을 벗어나 다양한 경로의 문들을 두드려가면서 ‘회화’라는 중심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흥미롭게도 평면이 대변하는 ‘회화’ 프레임을 벗어나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다양한 표현, 매체, 해석의 방법론으로 우회하여 다시 ‘회화’로 진입해가는 경로다. 자신이 ‘한국’에 백 앤 포스(back and forth) 한 것처럼.
4. 존재의 인정
《교복 입은 소녀들》에서 써니킴이 자료(source)로 쓴 사진은 레디메이드 이미지다. 그 사진들은 작가의 개인 앨범이나 가족 앨범, 혹은 사회적 ․ 역사적 다큐멘트의 일부가 아니며, 그렇게 이름이 밝혀져 있지도 인덱스 되지도 않은 것들이다. 그런 만큼 익명적이고 의미와 기능이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초 작가가 경험하지 않은 어느 시간과 공간에서 ‘지금 여기 나/우리’를, 그러나 타인에게는 ‘그때 거기 소녀/소녀들’로 인지될 수밖에 없는 특정 존재(presence)를 약하고 끈질기게 증명한다. 다른 무엇으로 유보하거나 대체 불가능한 존재(being)로서. 이미 써니킴의 회화 작업을 통해 형상이 변주되고, 의미가 변경되었다하더라도 그렇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1960년대 중반에 벌써 데생 또는 드로잉의 도구로서 사진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 회화에 사진의 본질을 전이시키는 파격적 실험으로 오늘날 생존하는 회화 거장이 되었다. 그의 생각을 인용하면 “사진은 절대적이고, 따라서 자율적이고 무조건적”4이다. 그럼 그런 속성을 가진 사진을 원재료 삼아 그림을 그렸던 써니킴의 입장에서 상상해보자. 소녀(들)의 존재성은 키냐르처럼 표현하면 예술가를 ‘슬픔으로 사로잡는 것’이 아니겠는가. 달리 말해 교복 입은 소녀들 ‘사진’은 그 절대적이고 자율적이며 무조건적인 매체적 속성으로 화가의 자유로운 창작을 구속했을 것이다. 물론 써니킴은 아마도 1990년대 말에서 2000년 초 언저리에 자유로운 표현 욕구와 창작 의지에 따라 《교복 입은 소녀들》을 그렸다. 능동적으로. 하지만 동시에 그 그림들은 써니킴이 현실의 시공간에서는 사라진, 그녀의 사적 경험과 기억의 저장고 안에는 없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슬픔(그것이 센티멘털만 의미할까?)’이 깔려있는 시공간을 담은 사진이라는 라이트모티프(“교복 입은 소녀들”)에 이끌리고 그에 의해 작업이 이뤄진 결과이기도 하다. 피동적으로.
능동과 피동의 합작. 그것이 내가 파악하고 공감하는 써니킴 회화 작업의 메커니즘이다. 그것은 먼저, 방금 전에 분석한 것처럼 존재론적 차원에서 작가가 외면할 수 없고 지울 수 없는 소녀들의 현존(‘지금 여기 있음’에서 ‘한때 거기 있었음’까지)에 얽매인/피동 상태로부터 자신의 예술표현능력과 미적 판단을 발휘/능동적으로 행위 하는 작업 체제다. 다른 한편, 리히터의 경우처럼 ‘사진’이라는 매체의 객관적이고 즉물적인 속성을 작가의 주관성 과/또는 사변을 통제하는 조건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그러한 피동의 조건들로부터 탈주하는 주체의 우발적이고 능동적인 그리기를 적극화하는 방식이라 평할 수 있다. 요컨대 능동과 피동의 먹임-되먹임(feed-back)으로서 회화 창작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로든 존재의 인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가령 자신에게는 텅 비고 부재하지만 분명 있었던 사람들, 시간들, 삶들, 경험들, 기억들, 이미지들, 장치의 힘, 표현의 에너지, 행위의 욕구 등등. 그리고 이러저러한 요소와 영향이 수렴되고 발산하는 주체로서 나, 써니킴.
5. 어둠에 뛰어들기
시리(Siri)가 아이폰 사용자의 취향과 마음까지 읽고 음악을 선곡해주는 시대. 자기주도 학습형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묘수를 두며 세계 최고 프로 바둑 기사들을 차례로 무릎 꿇리는 시대. 그런 AI를 하루가 다르게 더 큰 기술력으로 도약 확장시키는 능력을 맘껏 발휘하는 인간들의 시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를 이렇게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아이러니한 사실은 고도의 테크놀로지 개발에 성공하고, 심지어 그런 기술 성과들이 인간 자신조차 압도하는 현실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인류는 자기 뇌의 대부분을 잘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학자들마다 이견이 있지만 뇌과학 연구에서 인간의 뇌는 아직도 규명해야 할 것이 산더미인 미지의 세계라 한다. 가령 우리가 어떤 행위, 어떤 생각을 할 때 뇌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활동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자기 의지대로 사용하는가? 답은 부정적이다. 다만 최근 뇌 영상촬영기술인 fMRI(기능성 핵자기공명영상)나 PET(양전자 방출 촬영)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인간은 단순한 사고를 할 때조차 다양한 뇌 영역을 동시에 활성화시켜 사용한단다.
써니킴의 미술을 논하다가 갑자기 왜 ‘뇌과학’이라는 샛길로 빠지나 의아해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은 이제부터 집중해 논하려는 이 작가의 최근 작업 때문에 그런 이야기로 사전 포석을 두었다. ‘Leap in the Dark’ 이것이 넓게 잡으면 2012년경부터 현재까지 써니킴이 하고 있는 창작의 주제이자 제목이다. 영어 관용구로써 ‘앞을 알 수 없는 일, 과정과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일에 [모험적으로] 뛰어드는 행위’를 일컫는다. 작가는 최근 자신이 그 언어 표현처럼 작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그러하다. 쉽게 말해 써니킴은 이미 손에 익은 능수능란한 제작 과정은 물론 완성될 그림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나 계산을 의식적으로 피한다. 반대로 그림이 자체로 되어가는 과정 또는 작업을 해나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이전에는 알지 못했고 경험한 적 없으며 느껴보지 못했거나 피했을 법한 현상/사건/상태/심리/지각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고 그 어려움(어둠)에 스스로를 던진다. 이유가 무엇인가? 작가가 똑같이 설명한 것은 아니지만, 아마 써니킴은 전통과 권위와 천재와 거장들로 꽉 차 보인다 하더라도 사실 일반명사 ‘회화’는 거대한 암흑지대처럼 더 탐구될 수 있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의 회화 실천에 의미를 걸겠다는 뜻이 아닐까. 마치 우리 뇌가 어떻게 활동하는지 또는 어디까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충분히 해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사람들이 어두운 절망 대신 탐구의 빛을 보듯이 말이다. 써니킴은 ‘교복 입은 소녀들’ 시기를 지나 그렇게 새로운 미션 수행 단계로 뛰어든 것 같다. 그만한 능력이, 그만한 “고성능의 대뇌피질이”5 그녀에게 있어 추상적 사고는 물론 추상적 경로를 요구하는 창작에도 기꺼이 응하는 것이리라. 이는 다른 화가의 경우에도 벌써부터 의식된 과제거나 회화 작업의 특수성인 것으로 보인다. 1985년 5월 18일 리히터는 이미 다음과 같이 자신만의 창작론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추상화를 그릴 때(다른 경우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나는 그것이 어떻게 보이는지, 그리기 과정 동안 무엇을 목표로 하고, 거기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미리 알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회화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환경에서 버림받고 희망도 없는 사람의 거의 맹목적이고 필사적인 애씀이다. 도구, 재료, 능력이 주어졌고 그리고 의미 있고 유용한 무엇인가를 창조하려는 다급한 욕망도 갖췄지만, 그 무엇이 집이나 의자가 되는 것은 허용되지 않고 이미 이름이 있는 어떤 것도 아닌 것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타당하고 전문적인 방식으로 일하면서 자신이 궁극적으로는 올바르고 의미 있는 어떤 것을 생산할 것이라는 모호한 희망을 가지고 헤쳐 나간다.”6
자못 시적 과장이 끼어든 듯 읽힌다. 그러나 실제 그림을 그리는 작가 입장에서 위와 같은 생각은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닐 것이다. 써니킴이 《어둠에 뛰어들기 Leap in the Dark》라는 큰 타이틀 아래 우리에게 제시하는 최근 그림들은 우리 눈에 충분히 완성됐고 작품으로서 높은 미적 질(aesthetic quality)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그 그림들은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 전반에서, 필사적으로 애쓰며 판단하고 느끼는 작업과정의 굽이굽이에서 모호함, 익명성, 무목적성, 비존재성, 불안정성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아니, 그렇게 그녀를 압박했을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써니킴이 바로 그 같은 회화 창작의 속성들을 감추거나 극복하는 데 급급해하지도 않고, 자신의 예술능력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도 않았다는 데 있다. 대신 그녀는 그 부정적 성질들을 작품의 요소로 적극화하고 미적 형식으로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그러한 면모를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작품이 가장 최근작들인 <우물 Well>, <비추다 Reflect>, <조우 Encounter>다. 세 작품 모두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조와 분위기로 그려진 풍경화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그렇다는 말인데, 좀 더 냉철하게 구분하자면 그 그림들은 전형적인 풍경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추상화나 개념회화 또한 아니다. 장르적 경계로 보면 그 양자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는, 혹은 장르적 관례를 서로 스위칭 하는 역학의 회화다. 예컨대 <우물> 하단에 매우 갑작스러우면서도 이해 불가하게 가해진 단절선과 그 밑의 거친 붓 자국, <비추다>의 상단을 가로지르는 무채색의 면과 계곡풍경(꽤 멋지게 그려진)을 좌우로 쪼개는 수직선, <조우>의 화면 중 거의 1/3을 가리는 상단의 거무죽죽한 면과 물감이 흐른 자국이 조화와 균형과 절제라는 회화 관습에 익숙한 감상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것들은 화면의 조화를 깨뜨리고, 풍경이라는 모티프를 혼란스럽게 하며, 보는 이가 이미지의 가상성에 흡족히 잠기는 순간을 방해한다. 하지만 그 그림들을 그린 작가가 말하길 “그것들은 그래야만 했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7 부분들이다. 써니킴에 따르면 <우물>에 착수할 때 단편적 아이디어(통상적이지 않게 캔버스의 윗부분에 바위로 둘러싸인 우물을 그리자!)만 가지고 그림을 그려나가면서 어느 순간 자신이 아니라 ‘그림’이 작업을 주도하는 양상을 겪었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경험한 여러 혼란과 좌절과 타협과 설득과 성공의 어지러운 흔적을 작품의 내용으로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것이 감상자에게는 풍경을 그린 가상의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엘 그레코의 회화처럼 실체적으로 느껴지길 바랐다. <우물>이 그려진 존재임을 숨기지 않고, 작가가 최종적으로 그린 최상층 화면의 기저에 카오스처럼 혹은 무(無)에 가까운 행위들이 깔려있음을 고백함으로써. <비추다>의 무채색 가로띠와 수직선, <조우>의 흐린 화면과 수직으로 흘러내린 물감자국들 또한 세세한 경위는 조금씩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이다. 그것들은 한편으로 캔버스 화면 위 가시적 요소로써 풍경에 포함돼 있지만, 다른 한편 그 풍경이 자연의 모방/실재의 재현이 아니라 어두운 창작의 경로로 뛰어든 이의 창작 퍼포먼스(행위이자 성과)를 증거 한다. 그에 대해 나는 써니킴이 시도하고 있는 ‘자기만의 회화적 존재 증명’이라고 미학적 판단을 내리고 싶다. (기계적) 객관성으로서 사진과는 다른, 마찬가지로 (천재적) 주관성의 산물로서 회화 신화를 벗어던진 회화의 존재 증명. 그런 이데올로기가 타당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동시대에 한 명의 작가가 자신을 불확실한 과정에 맡겨 그리는 그림으로서.
위 세 작품보다 앞서 그린 <자줏빛 하늘 아래 Under the Purple Sky>, <어두운 구름 Dark Clouds>, <폭포 Waterfall>에서 전조를 발견할 수 있다. 말하자면 단호하게 미적 형식으로서 자기를 주장하기 전 단계에서 형상(해질녘 산안개? 무거운 비를 내리는 구름덩어리? 폭포를 내리누르는 회색하늘?)을 묘사하는 것 같기도 하고, 표현적인 붓질 같기도 한 화면 처리 부분이 그렇다. 그것들은 그림임을 자기 고백하는 목적보다는, 작가의 고민의 흔적이거나 감상자로 하여금 심리적 과/또는 정서적으로 그림에 이끌리도록 하는 효과로써 작용한다. 조금 냉정하게 평가하면 미적 형식으로 발전하기에는 당시 써니킴의 작업 개념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고, 형상 묘사에 그치기에는 상당히 도발적이고 실험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요소로서 말이다.
6. 회화를 MRI처럼 단층화하고 종합한다면
“글쓰기는, 책 속에서,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것이 되고, 그 자신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는가?”8
서두부터 나는 써니킴의 미술을 초기와 최근으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했고, 그런 관점에서 지난 16년 동안의 작가 작업을 분석했다. 그 명시적 분기점은 2012년이다. 써니킴의 작품으로 따지면, 캔버스를 벗어나 다양한 매체와 장르적 컨벤션을 방법적으로 절합한 퍼포먼스아트인 《정물》(2012, 문화역서울284)과 《풍경》(2014, 인천아트플랫폼)이다. 편의상 그 작품들을 ‘퍼포먼스아트’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하더라도, 내 생각에 그것들은 기성의 이름에 귀속되지 않고, 써니킴의 이전 회화로부터 자가 증식했거나 절합한 것들로서 분석해야 더 정확하다. 작가가 이미 깨닫고 밝혔듯이 당시 《정물》, 《풍경》은 나중에 올(하지만 현재도 실현되지 않은) 《초상》과 함께 삼부작으로 만들어져 동시대 회화가 무엇인지를 탐구할 목적을 태생적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의 어딘가에서 썼듯이 써니킴이 ‘회화’를 중심에 두고 그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른 경로로 우회해서 다시 ‘회화’로 돌아온 과정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정물》, 《풍경》인 것이다. 그 방식은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병원에서 우리 뇌나 몸을 단층으로 나눠 찍는 MRI(자기공명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MRI는 알려져 있다시피, 엑스레이 촬영과 다르게 다양한 방향에서 단층 촬영함으로써 대상에 대한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이미지를 확보해 관찰과 이해를 도모한다. 우리는 써니킴이 ‘교복 입은 소녀들’을 그린 자신의 초기작부터 2012년 즈음까지 지속해온 그림의 이미지들, 창작 방식들, 질료들, 표현 기교 및 장치들 등을 MRI 같은 방식으로 성찰하지 않았을까 유추할 수 있다. 즉 그때까지 하나로 뭉뚱그려져 있거나 무차별적으로 실행되던 자신의 회화 작업을 주제들로, 요소들로, 방법론들로, 성질들로 분할하고 다른 감각장치들로 들여다봤다고 말이다.
대표적으로 2014년 5월 23일에서 25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총 6회 공연을 행한 《풍경》을 들 수 있다. 어두운 공연장의 정면(관객석의 반대)에 써니킴이 그린 풍경화가 영상으로 투사되는 가운데, 흰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스커트, 그리고 무릎 밑까지 오는 검정색 양말과 검정 단화를 신은 세 소녀가 퍼포먼스를 펼친다. 마치 써니킴의 《교복 입은 소녀들》 시리즈 중에서 오려낸 듯한 느낌의 소녀들은 정확한 시간과 공간, 또는 분명한 맥락과 스토리텔링이 부재한 상황들에서, 마치 진공상태에서처럼 매우 정적이고 아련하게 움직인다. 때로는 정면 스크린의 풍경을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가고, 때로는 관객석을 향해 ‘야호’를 외치는 것 같은 자세와 표정으로 걸어 나오면서. 분명히 그녀들은 풍경이 아니고 사람인데, 관객은 그 소녀들이 배경의 흐릿한 톤과 칼라에 스며드는 것처럼, 반대로 벽 위로 투사된 침묵의 풍경그림이 소녀들의 몸짓과 의복과 풍기는 뉘앙스를 통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낀다.
내가 당시 객석에 앉아 경험한 것, 지금 이 글을 쓰며 기억해내는 감각이 그와 같다. 아주 세부적이거나 지엽말단의 것들은 망각의 강으로 떠밀려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풍경》을 감상하던 당시 나는 그 공연이 마치 ‘회화’라는 관습적 덩어리를 위상학적으로 단층화하고 다시 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조립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으며 현재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앞서 인용한 철학자 보비오의 말처럼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면, 써니킴의 《풍경》을 기억하는 나는 곧 써니킴의 《풍경》을 통해서 형성된(그것이 얼마나 크거나 작은가, 많은가 적은가, 강한가 미약한가, 거친가 섬세한가는 중요치 않다) 기억의 주체일 것이다. 그것은 써니킴이 거기 그때 있었든 아니든, 작가가 직접 경험했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예술작품을 통해 구축된 기억이며 실재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이 긴 비평의 마지막 말이 도출될 수 있다. 요컨대 ‘교복 입은 소녀들’에서 공백의 경험과 기억 때문에 피동성을 피하지 못했던 써니킴은 자신의 회화를 어둠 안에서 밀고 나감으로써 타인의 경험 형성에 기여하고 기억과 망각의 프로세스에 크고 작은 조약돌(헨젤과 그레텔이 숲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해준 단서인 그것)을 놓는 능동적 주체가 되었다. 비록 위 어딘가 조용히 인용해둔 모리스 블랑쇼의 사유처럼 그녀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그러나 자신만은 해독하기 힘든 그리기를 지속해야 한다 하더라도.
1. John Berger, The Success and Failure of Picasso, 김윤수 역,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 미진사, 1989, p. 39. 원문 인용은
http://www.learn.columbia.edu/monographs/picmon/pdf/art_hum_reading_49.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