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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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CV
2012
트랜스레이션, 엠오티 아트 갤러리, 타이베이
비누로 쓰다 : 좌대 프로젝트, 카벤디쉬 광장, 런던
2011
트랜스레이션, 재영 대사관저, 런던
트랜스레이션, 아트클럽1563, 서울
트랜스레이션, 헌치오브베니슨 갤러리, 런던
2009
트랜스레이션, 국제갤러리, 서울
트랜스레이션, 르페브르 에 피스 갤러리, 파리
2008
트랜스레이션, 서울대학교 미술관, 서울
2007
트랜스레이션, 몽인아트센터, 서울
트랜스레이션-달항아리, 한국실, 대영박물관, 런던
<주요 단체전>
2013
글라스트레스: 하얀 빛/하얀열, 팔라쪼 카발리 프란체티, 베렝고 센터, 베네치아,
Couriers of Taste, 댄슨하우스, 런던
DNA, 대구미술관, 대구
2012
제작된 오브제, 사마리아 런 갤러리, 런던
코리안 아이, 사치 갤러리, 런던
다양한 스펙트럼: 600년 간의 한국 도자, 상파울루 현대미술관, 상파울루
코리안 아이: 에너지와 물질, 페어몬트 바브 알 바흐르, 아부다비
세라믹 코뮌, 아트 선재, 서울
마테리알 매터, 이스트 윙 엑스, 코톨드 인스티튜트, 런던
2011
코리안 아이: 에너지와 물질, 뮤지움 오브 아트 앤드 디자인, 뉴욕
예술을 입다, 플라토 미술관, 서울
트라: 생성의 끝, 팔라쪼 포르투니, 베네치아
융합, OCI 미술관, 서울
2010
미래의 기억들, 리움 삼성 미술관, 서울
코리안 아이: 환상적인 일상, 사치 갤러리, 런던
소년과 소녀들이 놀러 나오다, 로시로시 갤러리, 런던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 덕수궁 미술관, 서울
연금술사들, 에델 아산티 프로젝트 스페이스, 런던
2009
신오감도, 서울 시립미술관, 서울
2008
난징 트리엔날레, 난징미술관, 난징
성곡 내일의 작가들, 성곡미술관, 서울
굿모닝, 백남준: 백남준과 그의 친구들, 한국 문화원, 런던
Meme Trackers, 송장미술관, 북경
2007
미, 욕망, 사라짐, 스페이스 다, 베이징
소프트 파워, 한국 국제교류 문화 재단, W호텔, 서울
2006
거울 나라 앨리스, 아시아하우스, 런던
부드러움, 소마미술관, 서울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한국
리움 삼성 미술관, 서울, 한국
휴스턴미술관, 휴스턴, 미국
서울대학교 미술관, 서울, 한국
매일유업, 서울, 한국
판화공방, 일본
용산구청, 서울, 한국
몽인아트센터, 서울, 한국
Critic 1
신미경의 <트랜스레이션>에 관하여
임근혜 (독립큐레이터)
번역 Translation
가로지르기 즉, 횡단이나 초월의 의미를 지닌 영어 접두사 trans-는 신미경의 작가노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다. 언어 사이를 가로지르는 번역 translation, 공간 사이를 가로지르는 이동 transportation, 상태 사이를 가로지르는 전이 transition 등은 ‘서로 다른 문화 간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이탈과 개입을 반복하는 작가 자신의 존재 방식을 언어로서 설명해준다. 2000년도부터 박물관의 유물을 비누라는 독특한 재료로 복제한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트랜스레이션(작가는 ‘trans-’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영어 독음으로 표기한다)’이라 명명한 것은 작품 자체가 “자신의 존재와 삶을 반영하는 지속적인 번역의 산물1”이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가 <번역의 경험 Experiences in Translation>이란 책에서 “번역은 언어가 아니라 문화를 옮기는 것2”이라고 역설했듯이, 좋은 번역은 번역자의 언어적 감각과 능력 이외에 그 언어가 담긴 문화적 맥락을 정확히 이해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번역이라는 개념을 내세운 신미경의 작업이 주목하는 지점은 총체적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또는 올바른 번역이 아니라, ‘오역’ 즉, 출발어 source 와 도착어 target 사이의 차이와 어긋남이다. 그의 작품에 있어서 이러한 간극은 원본과 복제물 사이의 시각적 상관성뿐 아니라 사용하는 재료와 제작 과정 전반에서 드러난다.
작가가 시각 예술을 통해 문화적 번역의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1997년 말, 런던 대학 슬레이드 스쿨 Slade School에서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우연한 기회에 학교 본관에 진열되어 있던 19세기 이탈리아 조각가 에밀리오 산타렐리 Emilio Santarelli가 대리석으로 제작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목욕하는 비너스>를 복원가가 공들여 세척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된다. 이때 오랜 세월의 더께가 벗겨지며 마모된 흔적이 드러나는 모습을 통해 작가는 견고한 돌을 마모시키는 시간의 감각을 느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조각상이 애초의 목적과 용도는 잊혀진 채 시공을 이탈하여 작가와 마주하게 된 상황에 주목하게 된다.
작가는 이렇게 하나의 사물이 원래 놓여있던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탈문맥화 하는 과정을 ‘유물화’라고 지칭하고, 스스로 그 과정을 재연한다. 단, 견고한 대리석과는 완전히 상반된 성질의 무르고 부드러운 비누를 재료로 덩어리는 붙이고 디테일은 깎아내는 방법을 병행하며 원본의 마모된 흔적까지 완벽하게 복제한다. 원작이 전시된 공간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작품 바로 옆에서 ‘공개 작업’을 하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퍼포먼스로 인식되었다. 복제품이 완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6개월, 원본이 100년 이상의 긴 세월 동안 겪은 유물화 과정을 반년으로 압축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비누라는 재료는 단지 유물화 과정을 단축시키기 위해 편의상 선택한 것이 아니라 원본과 복제본 사이에서 ‘오역의 단서’를 제공하는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비누에 특유의 향을 담아서 시각적 유사성으로 인한 판단 착오를 미연에 방지할 뿐 아니라, 원본과 복제의 차이와 간극에 내재한 작가 자신의 내러티브로 관심의 방향을 유도한다.
사실, 복제본의 내러티브는 원본의 출처나 배경과는 거의 관련이 없고, 이는 작가의 본질적인 관심사도 아니다. 박물관에 진열된 전시품에는 제작자나 사용자의 의도과 흔적을 증발시키고 대단히 압축적이고 추상화된 정보의 결정체만 남는다. 그 사라진 내러티브를 찾아내서 역사적으로 재맥락화하고 학술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박물관 큐레이터의 역할이라면, 상상력을 통해 역사의 우연과 의지의 개입이 상호작용해서 만들어진 사물의 운명에 재해석을 가하는 것은 예술가의 몫이다.
초기 <트랜스레이션> 시리즈가 대리석상을 그대로 복제한 유사성에 집중한 반면, 2000년도 이후부터는 의도적으로 원본과 복제 사이의 다양한 거리감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리스 헬레니즘 시기를 대표하는 조각가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을 차용한 작품들을 예로 들 수 있는데,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의 신체에 자신의 얼굴을 삽입하고 <웅크린 비너스>와 똑같은 포즈를 취한 자신을 석고 캐스팅한 후 비누로 다시 모델링한 자소상 연작이 이에 속한다. 흥미로운 점은 일련의 ‘패러디’ 작품들이 원본을 복제한 것이 아니라 미술사 관련 서적에 흔히 실리는 도판을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기존 작품의 일부 요소를 차용했지만 2차원 평면을 3차원적으로 재해석한 또 다른 원본으로서 존재하는 셈이다. 이처럼 원작의 아우라를 제거하고 교란하는 행위는 마치 도판 사진을 다시 카메라로 촬영한 것을 자기 작품으로 제시하여 모더니즘 회화의 권위와 가치체계를 전복시킨 세리 레빈 Sherrie Levine의 작업과도 맥락을 함께 한다.
사실 작가가 참조한 도판 속의 <웅크린 비너스>도 기원전 3세기경 프락시텔레스의 손길이 닿은 원본은 사라지고 500년 후 로마에서 만들어진 복제품으로 전해지고 있다. 신미경 버전의 <웅크린 비너스>는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을 연상시키지만, 작가는 자신이 참조한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만든 것이 새로운 작품으로서의 원본성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원본/복제 관계의 이항 대립을 무너뜨리는 포스트모던적 개념들보다 근대를 성찰하는 하나의 비판적 도구로서의 후기 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문화 번역’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이는 호미 바바가 언급한 중심과 주변이 겹쳐지는 경계면에서 이루어지는 ‘혼성 hybrity’ 또는 ‘제3의 공간 the third space’과도 상통하는 것으로, 한국 근대사의 잔재가 작가의 의식에 각인시킨 서구 우월주의 즉, 일제 강점기에 이루어진 일본식 서구화를 근대화의 모범으로 삼다가 해방 이후 미국적 가치와 생활 양식을 추종해온 뿌리 깊은 이중의 식민성에 대한 반성적 고찰이기도 하다.
박물관 Museum
작가가 서구 편향의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가치의 문제를 재인식하게 된 계기는 유럽 여행 중 유적과 미술관을 방문한 경험으로부터 시작된다. 미술학교 진학을 위해 오랫동안 고대 그리스 ∙ 로마와 르네상스 시대 대리석 조각의 석고 모형을 모사하는 뎃생 교육을 받았던 작가는 복제본으로 친숙해진 조각들의 원본을 감상하면서 원본과 복제 사이의 간극 즉, 시공의 맥락을 벗어나 종교적 예배 대상이 심미적 오브제로 전시되는 상황에 주목하게 된다. 특히,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을 장식하던 조각품들이 런던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습에서 ‘이질적이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은 그들이 원래의 역사적 환경적 상황에서 벗어나 박물관이라는 전혀 다른 맥락 속에 강제 이식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토니 베넷 Tony Bennett은 <전시 복합체 Exhibition Complex>에서 권력/지식의 관계에 관한 푸코적 관점을 바탕으로 박물관의 탄생을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과 발전 및 역사, 과학, 미술사, 인류학 등 새로운 학문의 보급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즉, 박물관은 다양한 관람 장치와 전시 기술을 통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통제하도록 유도하는 일종의 훈육 기관의 역할을 하며, 사물의 질서를 체계화하고 시민들이 그에 따르도록 통제함으로써 은밀히 지배계급의 제국주의적 권력을 드러낸다. 왕실이나 귀족의 개인 콜렉션이 박물관으로 전환되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는 사례가 급증한 시기가 바로 18세기와 19세기 제국주의 전성기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3.
또한, 베넷은 박물관이 유물의 발달 과정에 맞춰 연대순으로 전시를 구성하면서 어떻게 서구 중심의 역사관을 어떻게 만들어왔는지에 주목한다. 특히, 식민지 쟁탈전에서 라이벌 관계에 있던 영국과 프랑스가 아프리카와 중동의 지배권을 다투면서 우월권을 선점하기 위해 그 지역의 고대 문명까지 고고학적 발굴 범위를 확대한 결과 오늘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부터 시작하는 서구 박물관의 역사적 타임라인이 형성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고고학적 발굴의 성과에 따라 구성된 문명의 보편적 고대사가 민족국가를 중심으로 한 각 나라의 근대사에 수렴되는 것이 19세기 서구 박물관의 기본 골격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원시 민족 primitive peoples’으로 규정된 비서구는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서구 중심으로 형성된 역사에서 분리되어 서구의 우월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보조적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4
작가가 대영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유물 앞에서 느낀 불편함은 바로 박물관이 담지한 제국주의적 관점과 태도에 견고함과 영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안된 이데올로기적 장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박물관의 새로운 대중 교육에 길들여지지 않은, 즉 근대 사회가 요구하는 시민의 덕목을 받아들이지 않은 국민들은 교도소로 보내져서 권력의 교훈을 더욱 혹독하게 배우게 되었다는 베넷의 설명처럼, 오늘날의 우리도 제도권 교육이 주입시켜온 가치관과 지식에 의문을 품는 순간 불온한 사상을 의심받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가르침과 수사학이 실패하는 곳에서 형벌이 시작5”되는 대신 새로운 예술이 탄생하기도 한다. 신미경의 경우처럼 말이다.
다시 <트랜스레이션> 연작으로 돌아가자. 작품의 외형이나 전시 연출 등의 면에서 새롭고 다양한 요소들이 끊임없이 가감되는 가운데 오늘날까지 기본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점은 바로 박물관 유물들, 그중에서도 특히 유럽 대리석 조각, 중국 도자기 등 동서 문명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고전을 참조한다는 사실과 원재료와 전혀 성질이 다른 비누를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비누로 재현한 유물은 무엇보다도 기술적인 면에서 감동을 준다. 비누라는 연약한 재료를 덧붙이고 깎아내고 문양과 색을 입혀 대리석이나 도자기의 형태와 장식뿐 아니라 그 질감까지 거의 완벽하게 복제하는 장인적 기술 craftmanship의 최대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의 예술적 의미는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미적 쾌감보다는 원본과 복제본의 우위가 전복되며 의미와 가치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면, 수천 수백년 간의 유물화 과정을 압축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전시 공간 내의 화장실에 작품을 비치해서 관람객이 손을 씻도록 유도하거나(화장실 프로젝트, 2004~), 작품을 야외공간에 전시하여 풍화되는 과정을 노출하기도 한다(날씨 프로젝트, 2009~). 특히 전자의 경우, 미의 화신인 비너스의 두상이나 종교적 예배 대상인 불상이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데 사용되다가 전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심미적 오브제로 변신하는 가치 전환(transition)이 이루어지는 순간 자체가 작가의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따라서 신미경의 작업에 있어서 완성된 결과물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작업 과정이며, 이런 의미에서 유물 곁에서 이루어지는 현장작업은 작업의 이해를 돕는 설명장치에서 더 나아가 그 자체로 퍼포먼스 작업으로 인식된다.
2004년 대영박물관 그레이트코트에서 펼쳐진 퍼포먼스는 박물관에 소장된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대리석 조각의 형상을 복제하여 본인의 얼굴을 삽입하고 원본에 없는 채색을 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관람객들이 익숙한 서양 고전 도상과 낯선 동양인의 얼굴이 결합한 장면에서 느낀 어색함은 작가가 런던에서 아테네 신전의 잔해와 마주쳤을 때 느낀 이질감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작가 스스로 박물관의 볼거리가 되는 상황은 또 다시, 한국을 떠나 영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느낀 복잡다단한 자신의 감정과 현실공간으로부터 이탈해서 전시장에 덩그러니 놓인 유물 간의 감정이입으로 이어진다.
낯선 불편함으로 인해 일상적 상황을 비판적 관점으로 새로이 볼 수 있게 하는 ‘소격 효과’는 2006년 런던 아시아하우스 전시에서 첫선을 보인 <트랜스레이션-도자기> 에서 중국 도자기를 복제한 비누조각을 작품이 담겨있던 운송용 크레이트와 함께 전시함으로써 더욱 배가된다. 즉, 좌대 위에 정갈하게 놓여야할 유물들을 거친 목재 상자 위에 이제 막 꺼낸듯이 올려놓아서 마치 미완성의 디스플레이처럼 보이도록 연출함으로써, 매끄러운 디스플레이를 통해 완결된 내러티브를 제시하는 박물관 전시의 고전적 레토릭을 의도적으로 파기한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역사적 미학적 가치의 심급 기관으로서의 박물관의 권위를 부정하고 도전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유령 Ghost
근대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의 박물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테오도르 아도르노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960년대에 쓴 <발레리 프루스트 박물관 Valery Proust Museum>에서 박물관 museum과 능묘 mausoleum 란 두 단어의 음운적 유사성을 의미적 연상작용으로 확장시키면서, “박물관은 예술 작품의 가족 묘지6”라고 규정한다. 이 글에서 그는 박물관에 대한 폴 발레리의 엄격하고 비판적 시각과 마르셀 푸르스트의 유연하고 긍정적인 시각을 비교한다. 즉, 발레리가 신전이나 교회에서 분리되어 전시장으로 옮겨온 유물들을 ‘어머니를 잃은 고아’에 비유하며 오브제 고유의 맥락을 왜곡하는 박물관의 카오스적 면모를 불쾌하게 여긴 반면7, 푸르스트는 이러한 카오스의 비극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예술 작품이 죽어 삶의 질서에서 분리될 때 비로소 그 고유성이 해방된다고 주장했다.8
아도르노적으로 표현하자면, 신미경은 예술적 창작 과정을 통해 박물관 유물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발레리적인 부정을 푸르스트적 긍정으로 전환시킨다. 대영박물관 한국실에서 전시되고 있는 달항아리를 예로 들면, 조선시대에 음식을 저장하는 생활용기로 사용되다가 일제시대 이후 한국적 미학을 대표하는 유물로 재맥락화되어 지금은 일상에서 분리된 채 유리진열장 안에서 심미적 오브제로 감상되고 있다. 이는 달항아리가 작가의 손에 의해 비누 조각으로 복제되면서 예술 작품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함으로써 오래전 상실한 원래의 기능과 용도가 다시 한번 재조명되는 역설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작가의 작업 중 2000년대 후반 이후 양적으로 가장 많이 집중되는 부분이 바로 도자기인데, 중국에서 수입한 화려한 장식의 대형 도자기와 단아한 한국의 청자, 백자가 주를 이룬다. 작가는 19세기 무렵 유럽에서 수집된 중국 도자기가 실제로 중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것이 아니라 서구인의 취향에 맞게 수출용으로 개발된 것이라는 사실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결과적으로 유럽인들이 ‘중국 도자기’로 알고 있던 것은 ‘유럽식 중국풍 도자기’였던 것이다.
이런 관심사에서 출발한 도자기 연작도 이전 작업과 마찬가지로 원본을 복제하는 과정이 다양하게 변주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도자기의 화려한 상감 문양을 그대로 재현하여 장인적 기술의 극치를 보여주는가 하면, 조선백자를 고려청자처럼 또는 청자를 백자처럼 기형과 색채를 뒤바꾸어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든 경우도 있다. 그리고, 2007년 서울 몽인아트센터에서 처음 소개되고 2011년 런던 헌치오브베니슨 Haunch of Venison 초대전을 통해 영국 언론의 관심을 모은 <트랜스레이션-유령> 시리즈는 표면의 디테일을 제거하고 도자기의 기형과 유리처럼 반투명한 색채만 남겨 견고한 물질성은 사라지고 최소한의 흔적만 남은 상태를 보여준 것이다.
작가는 물질적 외피를 탈각하고 어렴풋한 그림자로 존재하는 도자기들을 ‘유령’이라 이름 붙였다. 유령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 존재하며 두 공간을 매개하는 존재이자, 원본이 사라진 후 남겨진 흔적이기도 하다. <트랜스레이션> 연작의 연장선상에서 ‘유령’의 의미를 파악하자면, 서로 다른 공간의 경계에서 각각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불안정하고도 역동적인 존재로 해석할 수 있다. 탈이데올로기 시대를 관통해온 이데올로기의 궤적을 정리한 저서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유령specter을 이렇게 설명한다. “현실을 실재와 영원히 분리시키는 바로 그 간극에서 유령은 출몰하며, 이 때문에 현실은 (상징적) 허구라는 특징을 지닌다. 유령은 (상징적으로 구조화된) 현실을 빠져나온 것에 구체성을 부여한다.”9
현실의 상징적 허구가 은폐하거나 억압하고 있는 그 무엇이란 의미에서 지젝의 ‘이데올로기의 유령’은 아직도 여전히 우리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근대적 가치 체계를 의심하고 해체하는 신미경의 작업과 통하는 지점이 있다. 작가는 탈맥락화된 박물관 유물 사이에 출몰한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유령을 미술 교육 제도에서도 찾아낸다. 젊은 미술학도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 조각을 정해진 시간 안에 사실적으로 데생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미술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미대 지망생들이 제도권 미술계에 진입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쏟아붓는 대상이 왜 하필이면 고대 그리스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인물상일까? 작가는 아테네 여행 중 한국과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이젤 위에 화판을 놓고 석고데생을 하는 그리스 미술대학의 실기수업을 참관하면서 느낀 놀라움을 회상하면서 “그들이 같은 대상에 부여하는 의미는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라고 질문을 던진다.
2002년 성곡미술관 개인전에서 선보인 <쥴리앙 프로젝트>은 미대 입학 실기 시험 현장을 재현한 일종의 퍼포먼스의 결과물로서 실제 예고생들이 전시장에서 데생 시험의 단골 화재인 쥴리앙을 비누로 소조하는 작업에서 출발한다. 학생들은 작가가 미리 만든 복제품을 보고 다시 복제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여기에 조각상의 실제 인물, 즉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 로렌초 성당에서 영면하고 있는 쥴리아노 데 메디치 Guiliano de Medici 나 그를 건장한 미남으로 이상화하여 르네상스 조각의 대표작으로 재탄생시킨 미켈란젤로 Michaelangelo 에 대한 정보나 지식은 의미가 없다. 쥴리아노의 초상 조각이 예술가로서 반드시 숙지하고 체득해야할 이상적 미와 예술적 카논의 전범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만이 어린 학생들의 의식에 지속적으로 주입될 뿐이다.
작가는 박물관이나 미술학교에서 가르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이라는 상징적 허구의 틈새에 현현한 서구 우월주의의 유령을 굴종적으로 인정하지도, 도도하게 쫓아내지도 않는다. 다만 유령이 드러내는 현실의 허구성을 작품 재료와 제작 과정을 통해 다양하게 구체화할 뿐이다. 원본과 상관없는 이미지를 계속 복제하는 과정은 축귀의 의식이라기보다는 이상적 아름다움이라는 개념과 제도권 교육 현실 사이의 모순, 즉 식민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유령과 벌이는 한판의 게임에 가깝다.
기념상 Monument
2012년 여름, 런던 최대의 번화가 옥스포드 서커스 부근 캐번디쉬 스퀘어 Cavendish Square에 세워진 공공조각 <비누로 쓰다: 좌대 프로젝트 Written in soap: A Plinth Project>는 역사적 기념비라는 또 다른 미술제도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높이 3미터에 2톤 분량의 비누가 사용된 대작으로서 기존의 비누 조각이 쌓아온 기술과 역량을 모두 쏟아 부은 동시에 문화번역이라는 주제를 가장 서사적으로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2013년 서울에 이어 타이페이에도 세워질 예정으로,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동일한 기마상이 특정 장소와 역사의 맥락을 이탈하여 세계 곳곳에 편재하게 된다.
이 작품이 설치된 좌대 위에는 원래 18세기에 영국왕 조지 2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전쟁영웅으로 추앙 받던 컴버랜드 공작 Duke of Cumberland 을 기리는 기념상이 서있었다. 그는 1688년 명예혁명 이후 국외로 망명한 스튜어트가의 제임스 2세를 군주로 다시 옹립하려던 스코틀랜드의 재코바이트 일당을 잔혹하게 학살하여 ‘백정’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인물이다. 1770년, 공작이 사망한지 5년 만에 생전에 살던 집 근처인 캐번디쉬 공원에 그의 기마상이 세워졌는데, 1세기가 지난 1868년 뒤늦게 스코틀랜드 학살에 대한 비난의 여론에 떠밀려 철거된 후 텅빈 좌대만 150년 동안 남게 되었다.
작가는 우연한 기회에 시내 한복판에 텅빈채 놓여있는 좌대에 대해 알게 되고, 설명판에서 사라진 기마상 주인공의 이름을 발견한다. 그리고, 약 4년간 작품 구상을 위해 컴버랜드 공작이라는 인물에 대한 자료를 추적한 끝에 광장의 옛 모습과 조각상의 설치 모습을 담은 동판화, 유화로 그려진 초상화, 그리고 50cm 높이의 기마상 모형을 찾아낸다. 높이 3미터의 거대한 기마상은 초상화의 얼굴과 모형 및 동판화에 담긴 자세를 기초 자료로 삼아 만든 것이다. 작가는 사실적 표현을 위해 모델을 세워 인체의 움직임을 보다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당시의 의복을 연구하여 장엄하고 화려한 장식적 디테일을 더했다. 즉, 최소한의 정보를 토대로 관련 정보를 조합하고 상상력을 더해서 역사속 실존 인물의 모습을 복원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2014년으로 예정된 스코틀랜드 독립에 관한 찬반투표를 일년여 앞둔 시점과 묘하게 맞물리면서 상반된 반응을 일으켰다. 공공작품을 ‘조각도시 City of Sculpture’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허가해준 웨스트민스터 카운실 측은 컴버랜드 공작의 기마상을 특수한 인물과 사건이 아닌 보편적인 역사적 사실을 다룬 예술작품으로서 인정한 반면, 공작에 의해 학살당한 지역 관계자들은 이를 정치적 관점으로 해석하여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간의 관계 악화를 경고하면서 철수를 요구하기도 했다10. 작가는 세월 속에 잊혀진 역사의 망령을 현재로 소환하여 하나의 동일한 사건이 시공의 간극 사이에서 다양하게 의미화되는, 즉, 박물관의 유물처럼 역사적 사실 또한 탈문맥화하여 오역과 재해석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18세기에 세워진 캐번디쉬 광장의 기마상은 원래 한점 뿐이었지만, 신미경의 기마상은 지속적으로 복제되어 지구상 여러 곳에 설치될 예정이다. 역사 속 실재 인물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청동 조각상의 원본이 사라진 좌대 위에, 예술 작품으로서 새로운 원본이 되어 올라온 비누 조각상. 이들은 외형상의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두개의 다른 현실이다. 한세기 동안 영웅으로 추앙받다가 정세 변화와 더불어 역사의 기억 저편으로 추방당한 컴버랜드 공작은 150년만에 다시 호명되지만, 정작 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달콤한 향을 뿜는 비누 조각상이다. 견고한 청동 대신 사용된 무르고 녹아 내리는 비누는 역사가 승자에 의해 쓰여지는 상징적 허구임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그간 박물관에서 퍼포먼스 형식으로 제작 과정을 보여주고 완성된 작품을 전시물로 남기는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번역’이라는 개념적 측면을 드러내곤 했다. 이와 반대로, 런던 시내의 비누 기마상은 완성된 작품이 이후에 지속적으로 복제, 증식되면서 다른 환경적, 문화적 문맥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미경의 첫 공공미술 작품인 컴버랜드 공작 기마상은 근대의 기념비적 공공미술이나 20세기 후반 떠오른 ‘뉴 장르 퍼블릭 아트 new genre public art’등의 대안적 공공미술과도 구별된다. 즉, 전자가 제국주의 확장과 민족국가 형성기에 국가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기 위한 시각적 장치의 일환이었다면, 후자는 미화된 역사나 영웅의 이상적 이미지를 통해 주입된 이데올로기가 아닌 ‘지금, 여기’의 정치적 현실을 드러내고 이에 대한 의식을 환기시켜 사회적 소통을 유도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에 비해, 신미경의 기마상은 보다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존재와 인식의 문제를 다루는 점에 있어서 이전까지 해온 <트랜스레이션> 연작의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시장 외부에는 비누 기마상이, 그리고 내부에는 세계 여러 도시에 세워진 다른 기마상의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모니터가 설치된다. 이때, 도시 간의 거리와 시차에 따른 이질적인 배경들로 인해 기마상의 주인공은 특정 인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보편성과 편재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거리에서 또는 광장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호기심 어린, 무관심한, 냉소적인 또는 경외하는 다양한 시선과 반응은 이렇게 역사의 망령이 되어 떠도는 전쟁 영웅에 대한 무수히 다양한 번역본이다.
글을 마치며
신미경의 작업은 이전에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사실, 즉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형성된 관습과 인식 등이 외국 생활을 통해 낯설게 느껴지면서 끊임없이 떠오르는 ‘왜’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열망에서 시작한 영국 유학 초기, 혼란과 회의에 빠져 작업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작가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당시 지도교수이자 영국 미술계에서 존경받는 원로 조각가인 필리다 발로우 Phyllida Barlow가 던진 한마디 충고였다. “바로 그 의심으로부터 출발해보라.”
즉, ‘의심하는 자신 조차도 의심’하는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가 철학의 중심축을 신에서 인간으로 전환시켰듯이, 문화적 차이로 인한 혼란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는 관점 자체가 새로운 작업의 방향이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한국과 영국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크게 느껴졌던 문화적 시차는 상대방의 시제에 맞추었을 때 느끼는 상대적인 차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리고 비로소“타인의 시간을 따라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제를 세팅할 수 있게 됐다11.”
앞서 언급했듯이, ‘문화적 시차’에서 관한 작가의 고민은 유학 이전,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해외여행 자율화와 유학의 증가 등을 통해 개인의 일상 차원에서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이는 문화적 자긍심과 경제적 자신감을 심어준 88 서울올림픽과 오랜 민주화 투쟁 끝에 민선 대통령 선출이 이루어진 다이나믹한 시기로서, ‘세계화’의 구호 속에서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이 싹트면서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서 해외 배낭여행이 유행처럼 번졌다. 당시의 수많은 미술학도들이 미술사 책에서 접하던 고전 명작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설레임을 안고 유럽 미술관 순례를 떠났다.
그러나, 신미경의 작가적 감수성은 유럽의 낭만보다는 문화충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작가는 기대했던 유물 앞에 섰을 때 감동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낯설음, 기대감과 불편함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교차하면서 서양미술의 아우라에 몰입하기 보다는 혼란과 회의에 휩싸였다고 회상한다. 이러한 경험은 서양미술사에 오히려 비판적 거리를 두게 되는 계기가 된다. 전혀 상관없는 궤적을 거쳐온 유럽의 고전 명작들이 어떻게 작가로서 자신의 삶에 중요한 가치와 규범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서구에서 유행하는 사조와 양식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강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작가는 관습화된 의식과 새로운 현실에 대한 자각의 틈새에 출몰한 자신의 ‘유령’과 조우하며 이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모순들을 직시하게 된다.
작가가 회상하는 또 하나의 문화 충격은 유학 초기인 90년대 중반, 영국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소위 yBa(young British artists)의 활동이었다. 당시 일군의 패기 넘치는 젊은 작가들이 작가-비평가-화상의 관계를 위시한 당시의 제도적 관습을 뒤엎고 새로운 규범을 쓰면서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들의 작업은 너무 다양해서 범주화하기 힘들지만, 대체적으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연장선상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개인의 일상 등의 내러티브를 담고 있다. 또한, 수작업에 기반한 미술의 전통적 생산 방식을 비웃으며 작품의 개념적 측면을 내세운 공장형 주문제작도 일반화된다.
한국에서 사실적 묘사에 기초한 데생 교육을 받으며 조각 기술을 연마해온 작가는 이렇게 낯선 상황 속에서 예술의 가치가 단지 장인적 기술이나 개념적 성찰 중 어느 하나로 규정될 수 있는가를 놓고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수공 기술에 기반한 자신의 전통적 작업 방식과 당시 주류로 떠오른 개념미술에 대한 회의와 재고를 거듭한 끝에, 완성된 결과물에 이르는 과정 자체에 내러티브를 담아내는 자신만의 방법론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전과 현대, 재현과 개념을 아우르는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가 발전하게 된다.
즉,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하는 서양 미술사에 면면히 이어지다가 아방가르드 미술 이후 폐기되다시피한‘모방과 재현’의 미학과 기술을 아시아의 여성 작가가 다시 살려내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유럽 미술관에서 느낀 이질적인 느낌을 의도적으로 되살리는 것이다. 이러한 퍼포먼스적 작업 과정을 통해 작가가 스스로 품어왔던 문화 이식과 혼성에 관한 질문들을 관람객을 향해 다시 던지는 셈이다. 이렇게 미적 쾌와 장인적 기술 등 미술의 가장 전통적인 요소로부터 출발해서 보다 깊이 있는 개념적 맥락으로 이끌어가는 섬세하고 디테일한 과정이 재현과 개념을 아우르는 신미경 작업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의 예술을 대표하는 네 가지 프로젝트 – 번역, 유령, 박물관, 기념상 -는 마치 고체와 액체 상태를 넘나드는 비누처럼, 무언가로 규정되거나 그 어딘가에 속하지 않고 중간지대에서 유동하고 변화하는 조건과 상태에 관한 것이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삶에서 죽음으로, 생활 공간에서 제도 공간으로, 기억에서 망각으로. 이렇게 사물을 시공의 맥락에서 이탈시켜 실재와 현실간의 간극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작가가 한국을 떠나 영국으로 삶의 터전과 작업 공간을 옮기면서 이질적인 문화에 이식된 자신의 삶과 예술을 성찰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다른 문화들 사이의 경계에 선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뿐더러 끊임없이 다른 의미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삶의 조건처럼 받아들이며, 문화의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체험을 번역의 소재로 삼아 끊임없이 다른 언어로 변주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