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영

Interview
CV
<개인전>
2018
Anomalous Fantasy-Japan Version, TPAM, KAAT, 요코하마
2017
Wrong Indexing: Yeoseong Gukgeuk Archive, NTU CCA, 싱가포르
2016
변칙 판타지, 드라마센터, 남산아트센터, 서울
2016
틀린색인, 신도문화공간, 서울
2015
전환극장, 아트스페이스 풀, 서울
2014
사랑이 넘치는 신세계, 광주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14
(Off)Stage/Masterclass, TPAM, KAAT, 요코하마
2010
시연, 플랫폼 슬로우러시, 송도 국제도시, 인천
2007
탑승객; 여행자의 책, 서울-프랑크푸르트-마드리드-파리-런던-서울
2006
유랑하는 병들, 브레인팩토리, 서울
<주요단체전>
2018
Proregress, 상하이비엔날레, 상하이
2017
공동의 몸, 공동의 리듬, 일민미술관, 서울
2017
아시아디바: 진심을 그대에게,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관, 서울
2017
2 or 3 Tigers, 세계 문화의 집, 베를린
2017
스코어: 나, 너, 그, 그녀(의), 대구미술관, 대구
2016
Polyphonies, 퐁피두센터, 파리
2016
Gestures and Archives of the Present, Genealogies of the Future, 2016 타이페이 비엔날레, 타이페이
2016
제 8기후대: 광주비엔날레 2016, 광주
2016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6
불협화음의 하모니, 콴두미술관, 타이페이
2016
스테이징 필름,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15
불협화음의 하모니, 히로시마 미술관, 히로시마
2015
ASIA TIME : 제 1회 광동 미술 비엔날레, 광동미술관, 광저우
2015
FANTasia : Asia Feminism,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5
제8회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 QAGOMA, 브리스번
2015
미래는 지금이다, La friche Belle de Mai, 마르세이유
2014
미래는 지금이다, 로마국립현대미술관, 로마
2014
Traditional (Un)Realized, 아르코 미술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
2014
귀신, 간첩, 할머니: Media City Seoul 2014,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4
Post-Movement: Night of Café Mueller, 콴두 미술관, 타이페이
2014
Something in space escapes our attempts at surveying, Württembergischer Kunstverein, 슈트트가르트
2013
Where the Ends Meet, Gallery Houg, 리옹
2013
텔미 허 스토리, 스페이스 씨, 서울
2013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2013
러닝머신, 백남준 아트센터, 용인
2013
기울어진 각운들, 국제 갤러리, 서울
2013
페스티벌 봄, 서강대학교 메리홀 소극장, 서울
2012
플레이타임, 문화역 서울 284, 서울
2012
언바운드 아카이브, 아르코 미술관, 서울
2012
마지막 혁명은 없다, 캘리포니아 어바인대학 미술관, 어바인, 미국
2012
신진기예, 토탈미술관, 서울
2011
새로운 발흥지, 우민아트센터, 청주
2010
Perspective Strikes Back, L’appartement22, 라바트
2010
유령, Platform SlowRush #13, 송도 국제도시, 인천
2010
Trans-media-scape, 제 1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
2010
Going, 2010 Seoul LGBT Film Festival, 서울
<수상>
2015
신도리코 미술상 수상
2013
에르메스재단미술상 수상
<레지던시>
2017
Artist Residency Program at NTU Center for Contemporary Art, 싱가포르
2016
Artist-in-residancy at TPAM (Performance Art Meeting in Yokohama), 고베-요코하마-도쿄
2014
세마난지 레지던시 입주작가, 서울시립미술관
2010
제 1기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 경기문화재단
2005
제 8기 쌈지스튜디오 프로그램 입주작가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대구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KADIST
Critic 1
개인들의 노래1
이성희 (큐레이터, 전 아트 스페이스 풀 디렉터)
작가 정은영은 거의 잊혀지고 사라져가는 전통예술을 현재로 소환하고, 현대미술 맥락 안에 위치시켜 끊임없이 발전시켜가면서 예술, 문화, 정치,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냈다. 작가는 2008년부터 약 10여 년에 걸쳐 여성배우들로만 이루어진 한국의 공연예술 ‘여성국극’을 연구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는 여성국극의 행위자들인 배우와 관객, 무엇보다 남성 역할을 수행하는 남역배우들을 통해 여성국극 무대와 무대 밖 일상에까지 연결되는 성별의 정치학을 다루며 퀴어적 해석을 시도한다.
《올해의 작가상 2018》에 정은영 작가를 추천하는 첫 번째 이유는 끈질기게 질문하고 실천하는 작가라는 점이다. 현 시대의 속도를 거스르며 그는 역사 속에 공인되지 않은 이들의 인생과 예술로 뛰어들어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질문하면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단계적으로 여성국극의 역사를 살아있는 것으로, 현대미술과의 접합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생산으로 일궈냈다. 정은영은 자신이 처음 여성국극 배우들을 만나 매혹된 경험부터, 이후 그들과 일상사를 공유하면서 느낀 지리멸렬한 감정들까지 생생히 간직하면서,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다가 점차 개인적 경험과 여성국극의 재맥랙화 사이의 거리를 넓혀간다. 그는 배우들의 리허설 장면, 인터뷰 등으로 구성된 초기 작품에서 다큐멘터리 작가처럼 대상과의 거리를 조율하는데 신중을 기하며 일종의 여성국극의 아카이브를 만들었다면, 이후에는 그 배우들을 위한 무대와 영상을 마련하면서 여성국극에 대한 작가주의적 개입과 미적, 예술적 변용을 실험한다. 이러한 단계적인 과정과 긴 시간 속에서 작가는 뚜렷한 전략을 갖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유보를 거듭하며 자신이 왜 여성국극을 재현할 수밖에 없는지 신중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한다. 정은영의 여성국극 프로젝트는 어떤 완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완 속에서 작가 자신이 예술을 하는 이유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정은영은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통해 고정되지 않은 젠더라는 측면에서 성별의 정치학을 다룬다. 작가는 젠더라는 것이 결국 삶을 통해 변화하고 드러난다는 사실을 여성국극 배우들의 무대와 삶들 속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구술채록, 이론연구, 사진, 영상, 퍼포먼스 등으로 소환해낸다. 〈(오프)스테이지〉(2012)에서 무대에 선 여성국극 남역배우는 무대에서 멋진 남성을 연기하기 위해서 무대 바깥에서도 남성이어야 했던 개인사를 회고한다. 남역을 전수하는 수업을 재현하는 〈마스터클래스〉(2010, 2012, 2013)에서는 여성국극이 실현하려는 남성이 매우 과장된 것으로 실제 남자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환상에 가득찬 남성성을 연기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통상적인 젠더의 관념을 비튼다. 무대 안팎에서 ‘되고자’ 노력했던 남성성이란 결국 허구라는 것을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 태도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앞선 작업들에서 작가는 여성국극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이 실제 과거 무대에서 하지 못한 얘기를 풀어낼 자리를 만들어준 한편, 2014년 아르코미술관에서 그리고 2017년 HKW(Haus der Kulturen der Welt)에서 선보인 렉쳐퍼포먼스 〈칼잡이들〉에선 작가가 퍼포머가 되어 여성국극에서 성별의 이분법 바깥에 놓은 새로운 성별의 논의를 펼쳐낸다.
2015년 아트 스페이스 풀에서 열린 개인전 《전환극장》에서 작가는 자신이 수집, 참조한 아카이브 자료들에서 추출한 이미지 몽타주에 “개인적이고 공적인 아카이브”라는 제목을 붙인다. 이 전시의 기획자 안소현은 어떤 명확한 중심을 설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읽히는 이미지들의 경항성이 사람들에게 기입된 어떤 사회적 관심에 의지하거나 그 관습을 전복시키는 데에서 드러난다는 점이 젠더 형성과 아카이브 전시의 공통분모라고 설명한다. 정은영은 2016년 남산예술센터에서 극장 기반 작품 〈변칙 판타지〉을 통해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다른 국면으로 끌고 간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여성국극의 탄생 배경과 그 안에서 실현된 ‘성별연기’를 주목하면서 ‘쇠퇴 이후에 남겨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여성국극 마지막 세대 남역배우 남은진의 운명과 아마추어 게이남성합창단 ‘지보이스’의 목소리를 통해 “마땅한 ‘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의 불완전한 삶에 잔류하는 디오니소스적 미학을 일깨워내고자” 한다(작가 노트). 〈변칙 판타지〉가 보여준 것은 여성국극의 실패한 역사에 괄호쳐진 수많은 이유들(특히 남성 중심의 근대화에서 의도적으로 누락되어 타자가 된)을 동시대의 시점에서 사유하고, 현재의 성별정치에 관한 논의를 적극적으로 펼쳐간다는 점이다.
추천서를 쓴 후 일년이 지나 《올해의 작가상 2018》 전시에서 정은영의 신작 〈유예극장〉(2018)을 본 소감을 짧게 덧붙이고자 한다. 나는 이 작업을 정은영이 지난 10여 년간 여성국극에 다가가고 관찰하고 기록하고 현재화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지금, 왜, 이것을 해야만 하는지, 다시 작가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읽었다. 극장이라는 배경 안에서 작가는 여성국극의 마지막 세대 남역배우, 가곡창자, 드랙킹, 세 퍼포머들에게 지금 하고 있는 장르에 대한 생각을 묻고, 각자의 답을 교차시키면서 무수한 질문을 끌어올린다. 여기에서 세 명의 퍼포머 모두 각자 장르에 대한 열정 혹은 매혹을 표현하지만 그에 대한 태도는 상반되거나 차이를 드러낸다.
작가는 특히 자신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작업해온 여성국극 배우에게 날 선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왜 지금 여성국극을 재현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성찰해보자고 청하는 듯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여성국극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냐는 작가의 질문에 여성국극 남역배우 남은진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게 흐름을 잘 짜서 만들면 가능하지 않겠냐고 답하는데, 작가는 “안가능할 것 같다”고 응수한다. 다양한 전통문화의 하나로서 사라져가는 장르인 여성국극이 지속되길 바란다는 남역배우, 이에 작가는 가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공연하는 가곡창자 박민희의 현재 “가곡의 위치는 어디에도 없다”며 “한 시절 아름다운 것이 사라지는 게 그리 큰 일은 아니다”라고 하는 냉소적 태도를 병치하면서 전통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이는 전통과 과거를 동일시하고 그것을 고정된 것으로 이해하여 무조건 부정하거나 옹호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태도와 전통을 끊임없는 경합을 통해 이어져온 연속체로 이해하는 것의 차이와 다소 유사해보인다.2
장면은 다시 남역배우와 드랙킹 아장맨을 교차한다. 전통 여성국극에서 가상의 남성성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던 과장된 제스처와 남성적 소리를 전수받아 연습해온 남역배우와 지금 자신의 성정체성을 수행하고 해방시키는 장으로서의 무대에서 노래하는 드랙킹 사이에, 작가는 성별의 정치에 관한 논의를 슬며시 드리운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가 설령 전통과 현재, 그리고 성별 정치에 대해 질문하고 논하기 위함이라 할지라도, 이 세 명의 퍼포머들이 드러내는 것은 전통이나 역사에 관한 거시적인 관점이 아니라 결국 나 개인에게 필요해서, 살아가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고 사적이고 사소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싶어 이러한 작업을 한다는 고백 아닌 고백이며, 이것이 사실 어떤 말보다 크게 들린다.
작가가 수집해온 여성국극 아카이브의 자료와 영상, 1세대 배우 조영숙의 인터뷰 클립이 교차된 후에, 작가는 근대 남성 중심의 국악계에서 여성국극을 의도적으로 폄훼하고 훼손시켜온 역사적 자료를 직접 읽어 내려간다. 그 글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까지 인용하며 여성들의 활동을 비판하는 가운데, 종국에는 다시 남녀 창극인 모두의 화합을 통해 전통 창극을 정립하라고 요청한다. 작가는 여기에서 다시 “남녀”와 “전통”을 끌어올려 되묻는다. “이 장르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이어 “내가 좋아하는 것이 살아남기를 바란다. 개인적인 바람이다”라고 하는 남역배우. 그러나 다시 영상 화면은 1960년대 여성국극 배우들이 남성 중심의 국악계와 맞서고자 했던 치열한 의지를 보여준 기사를 비춘다. 정은영의 〈유예극장〉은 전통과 현재, 이분법적 성별의 문제를 세 명의 퍼포머들의 인터뷰를 통해 해체하고 다시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만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여성국극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현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도, 1세대 배우들의 무대와 무대 밖 일상이 하나가 되었던 그 뜨거운 정동과 마지막 세대 남역배우의 막연한 희망을 품은 정동 사이에서 다시 접합점을 찾는 것 같다.
1. 이 글은 《올해의 작가상 2018》에 정은영 작가를 추천하면서 2017년에 쓴 글을 수정하고 《올해의 작가상 2018》에 전시된 신작에 관한 내용을 덧붙여 보완한 것이다.
2. 이영욱, 박찬경, 「앉는 법: 전통 그리고 미술」, 『앉는 법』 인디프레스 전시도록, 2016, p.24. 이영욱이 기획한 전시 《앉는 법》의 글에서 이영욱, 박찬경은 김수영의 시 〈거대한 뿌리〉(1964)에서 출발해 전통의 개념을 다각도에서 접근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사례를 접목한다.
Critic 2
유예된 역사들 –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다
한국문화사를 퀴어링하는 정은영의 작업에 관하여
우테 메타 바우어 (싱가포르 난양기술대학교 현대미술센터 (NTU CCA) 디렉터)
성별 정치학 및 역사적 저항 행위를 활용한 정은영의 리서치 기반 예술 실천은 영화, 사진, 퍼포먼스, 설치 등 광범위한 매체를 포함한다. 정은영은 2013년에 제작한 비디오 작품 〈정동의 막〉으로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Hermès Foundation Missulsang)을 수상한다. 내가 그녀의 작품 중 처음으로 접한 것이 바로 〈정동의 막〉인데, 이 작품을 통해서 오직 여성에 의해 제작되고 공연되는 전통극 장르인 ‘여성국극’의 역사를 탐구하는 정은영의 작업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최근 싱가포르의 난양 기술대학교 현대미술센터(NTU CCA)에 입주작가로 있었던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195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이 특수한 공연예술 형식에 대한 그녀의 장기적 관심을 보다 잘 알 수 있게 되었고, 더불어 그녀가 여성국극의 주요 특성들을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과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의 ‘해방공간’ 이라는 특수한 문화적 상황 속에서 탄생한 여성국극이 공식역사에서 억압되고 배제되어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정은영의 예술 실천이 보여주는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일련의 작품활동을 한국의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역사의 문맥 속에 위치시켜 보는 것이 중요하다.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난 작가가 10대였을 무렵, 한국은 독재 정부에 저항하던 학생 및 시민들이 고문당하거나 살해되는 등 폭력의 시대를 겪고 있었다. 그때 정은영은 어린아이였지만 이 사건들은 작가의 기억 속에 흔적을 남겼고 이후에도 영향을 끼쳤다. 작가가 인지했던 여러 논란의 사건들 중 주목할 만한 것은 1988년 한국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준비와 관련한 과정이다. 아시아 국가로서는 두 번째로 올림픽을
주최하게 된 대한민국에 1988년 서울 올림픽은 국제적 주목을 얻는 동시에 국가의 경제 성장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였다.1 그러나 국가폭력에 의해 빈곤한 원주민들의 강제퇴거를 야기한 상계동 재개발과 같은 사건이 그 과정에서 일어났다. 주민들이 저항하면서 폭력사태로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세간을 옮기지도 못한 채 건물은 모두 철거되었다. 주민들은 교정시설에 감금되거나, 공장이나 건설현장에서 무임금으로 강제 노역을 하기도 했으며, 많은 이들이 학대당하고 사망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 모든 일을 알고 있었음에도 사법적 절차를 취하지 않았다.
광주 시민 학살2의 여파로 발생한 1987년의 유명한 학생 운동인 6월 민주항쟁은 마침내 대한민국의 제5공화국을 종식시켰다. 이 같은 충격적 사건의 영향은 당대 대학생들의 태도에 즉각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한국 사회의 규범과 위계라는 전통적 기준에 도전하려는 시위대와 페미니스트 그룹이 조직되었고 이들은 1990년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변화를 요구했다. 정부가 참여적 민주주의 구현을 배척하고, 정치적 이행 과정에 필수적인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국민을 계속해서 좌절시켰다.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은 임금 및 직장 내 권리 문제와 관련하여 성차간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국가들 중 하나이다.3
1994년 정은영은 그녀가 다니던 대학 내 젊은 페미니스트 운동의 태동에 참여한다. 학생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예정된 사회적 역할을 거부하면서 정치적· 사회적 제스처의 일환으로 자신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다. 이 중요한 통과의례를 통해 정은영은 스스로를 특정하고 표현하는 이름을 짓기로 결정한다. 그녀는 기존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구조 및 계급 구조에 의해 자신이 규정되는 것을 거부했고, 이에 의도적으로 ‘위험한 여성/존재’를 뜻하는 “세이랜”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그리스 신화를 참조해 저항적이고 힘센 이름을 선택한 정은영은 스스로 부여한 그 이름을 모두 소문자로(“siren eun young jung”) 표기한다. 강하고 매혹적인 목소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세이랜이라는 이름을 제시함으로써, 예술가 정은영은 작업으로 관객을 ‘유혹’하고 귀 기울이게 만드는 이가 되고자 한다. 나아가, 그 이름은 소문자로 표기되기 때문에 국적, 젠더, 인종, 계급적 배경 또한 알아채기 힘든데, 이는 서구 남성중심 사회에서 동양인 퀴어 예술가로서 그녀가 선택한 정치적 전략이다.4
정은영은 영국에서 페미니스트 미술사학자인 그리젤다 폴록(Griselda Pollock)을 만났고, 폴록이 있는 리즈(Leeds) 대학 석사과정에 입학한 후, 2004년 ‘시각예술에서의 페미니즘 이론 및 실천’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폴록은 그녀에게 페미니즘이 단지 이론일 뿐 아니라 실천이라는 것을 강조했으며, 작가의 사유와 의지를 작품으로 창작하도록 장려했다. 귀국 후 정은영은 주변의 여성들이나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둔 작품들을 발전시켜 나가기 시작했고, 2007년부터는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동두천의 지역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작가는 그곳에서 미군을 상대로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만나게 되는데, 연구자이면서 예술가의 위치에서 특정 여성 집단과 관계 맺는 이 최초의 경험을 통해서, 작가는 성노동자의 일상을 대면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남성에게 서비스하고 여흥을 돋우는 특정 역할을 이행해야 하는 여성이 겪는 고통과 그 삶에 천착했다. 이후 문화 연구자인 선배를 통해, 2차 세계대전 종전후인 1950년대에 성행했던 여성으로만 구성된 공연예술 장르인 여성국극과 생존배우들을 접하게 된다. 주요 남역 배우들과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정은영은 배우들의 삶은 물론, 여성국극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탄생에 기여한 역사적 특수 상황을 탐구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부 한국 여성들은 식민정부가 운영하는 ‘권번’이라는 기생 학교에서 실상 일본인이나 고위층의 모임에 여흥을 돋우는 훈련을 받았다.5 여성들은 음악 연주나 춤과 같은 기능을 배웠는데, 이는 일본에서 게이샤가 맡았던 역할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6 이보다 더 심각한 제도인 “위안부”는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일본군을 상대하도록 여성을 강제로 성적 노예화한 제도이다. 지난 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정은영은 의자에 앉은 소녀의 동상으로 나를 안내한 적이 있다. 그것은 서울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는 일본 정부가 아직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위안부”에 대한 가시적 재현물이었다. 해방 후, 권번에서 훈련 받았던 여성예인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여성국악동호회를 조직하면서 국악계의 새로운 일부가 되었다.7 여전히 낙인 찍히고 차별 받는 존재였음에도 그들은 고유의 공연예술 형식인 여성국극을 발전시켜 나갔다. 정은영은 약 10여 년간 이 여성국극이라는 소멸해 가는 예술형식과 배우들의 흔적, 나아가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흥행산업의 한 형태로서 여성국극이 맡았던 정치사회적 역할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여성국극은 정은영의 핵심적인 예술적 연구가 되었고, 장기적 연구성과를 이끌어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발행된 그녀의 박사학위 청구논문 〈성별의 정치학과 불화의 미학: 여성국극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역시 이 연구의 산물이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통해 정은영은 국가의 공식적 문화 서사에서 배제된 여성국극의 주요한 유산과 당대 배우들의 활동을 다시 서술하는 독자적 역사를 제시한다. 작가는 자료를 수집하고 재구성하며, 여성국극 핵심배우들을 인터뷰하고, 그녀가 대본을 쓰고 연출한 공연에 그 배우들을 출연시키기도 했다. 가장 최근 작업 중 하나인 〈유예극장〉(2018)에서 그녀는 젊은 세대 배우들을 출연시키고 역사적인 문화적 실천을 하나의 가능한 미래적 존재로 전환하는 능동적인 행위자로서 작업을 확장시킨다. 작업초반을 함께 한 여성국극 배우들이 점점 더 노쇠하고, 작가는 이 예술형식을 여전히 배우고 있는 소수의 여성 배우, 즉 새로운 세대와 관계 맺는다. 프로젝트 초기에 한국의 문화사에서 차지하는 여성국극의 자리를 주장하는 역사연구에 천착했다면, 이제 그녀는 여성국극의 미래적 존재를 요구하는 주장의 그 일부이다. 작가 자신이 그 장르의 일부분이 되어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성국극은 한국의 전통 공연예술 중 한 형태인 판소리에 기반한다.8 오늘날까지 국가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는 판소리는 한국 전근대 시기의 음악적 스토리텔링 전통이며, 소리꾼 한 명과 반주자인 고수 한 명으로 구성된다. 판소리는 그 뿌리를 한국의 서민 문화에 두고 있지만, 엘리트 집단의 여흥을 위해 사가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여성국극은 판소리연행의 전근대적 방식에서 벗어나, 공연자, 관객의 뚜렷한 구분에 기반한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연행 되었다. 여성국극은 또한 가정주부에서 성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성으로 구성된 차별화된 관객 집단을 끌어들였는데, 이들은 이 공연을 평등하게 함께 호흡하고 교류할 수 있는 해방적 공간으로 이해했다. 여성국극이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음은 물론, 가부장적 사회의 이성애 규범에 도전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러한 특별함을 한국 페미니즘 역사에 천착해 있던 정은영이 주목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국극은, 역시 모두 여성 배우들로 공연되는 또 다른 아시아 전통,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단(Takarazuka Revue)9을 떠올리게 한다. 보다 넓은 역사적 맥락에서보았을 때, 두 장르는 모두 남성이 여성 역할을 맡아 왔던 아시아 전역의 전통극에 대항한다.
정은영은 또한 여성국극의 전성기에 톱스타였던 배우들에 대한 대중의 반응, 당대 여성 잡지가 배우들의 일상에 대해 취재한 내용, 그리고 그들의 거대한 팬덤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2008년에서 2011년까지 정은영의 작업은 조금앵이라는 특정 스타에 집중한다. 조금앵을 인터뷰하면서 그녀의 개인앨범을 열람하던 작가는 시선을 끄는 사진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조금앵이 신랑으로, 그녀의 팬이 신부로 분한 가상 결혼식에 조금앵극단의 단원들이 하객으로 등장한 사진이다. 특히, 사진 속 조금앵과 그녀의 팬이 모두 남성과 결혼한 상태였다는 사실이 정은영의 관심을 끌었다. 조금앵은 세 번 결혼하여 세 명의 ‘각성바지’ 아이를 낳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사적 아카이브에 보관하고 있었던 유일한 결혼식 사진은-세 남편의 흔적이 아닌-바로 이 가짜 결혼식 사진이었다. 조금앵의 결혼사와 그 사진의 허구성에 대해 알게 되자, 보관된 사진을 진실의 증거로 믿어왔던 그간의 이해에 균열이 생기게 된다. 이로써 그녀는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역사들이 어떻게 탐색되고 연결되어야 하는지 인지함으로써 더 심도 있는 연구로 진입하게 된다. 한 배우의 삶이 남긴 이 궤적은 한국 사회의 퀴어 커뮤니티의 감추어진 삶에 관심을 두는 후속 연구 주제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여성국극에 관한 작업 실천의 방법론은, 따라서 1950 – 60년대 한국의 퀴어역사를 추적하는 데에도 중요하다. 여성국극이 해방직후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대한민국이 새로운 국가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던 시기에 오히려 그것은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빈곤을 타파하며 국가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된 이 시기에, 주로 여성 관객들과 긴밀히 관계했던 여성국극은 박정희 대통령이 1961년 설립한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10 문화재청은 모든 문화유산의 관리, 정의, 소장, 보존, 홍보, 그리고 새로운 국가 문화 및 정체성을 수립하는 일을 담당했다. 문화재청은 기념비적이고 거창한 문화유산들, 그리고 전통적인 가부장제와 이성애 규범적 도덕관념을 우선시했다. 오직 소수의 여성국극 단체들만이 이후에도 잔존했다. 정은영의 비디오 작품 중 한 편에 등장한 한 배우는 만일 여성국극이 연습생과 배우들을 위한 내부 시스템을 갖추고 그들이 선배로부터 직접 배울 수 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 가능했을 것이라 진술한다. 그러나 1세대 배우들이 그들 삶의 특수하고 종종 고통스러운 상황 때문에 이 일을 선택하기도 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완전히 다른 모습의 근대화된 한국 사회에서 성장한 후속 세대와 어떻게 소통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젠더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헤게모니, 그리고 그러한 요건들이 개인의 사적 역사 내에 새겨지게 되는 방식과 관련한 복잡성은 정은영의 조사연구 기반의 예술 실천에 반영되었다. 그녀의 예술 실천은 이 여성들의 험난한 역사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조건 그 자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을 가능하게 한 사진, 뉴스클립, 배우와의 인터뷰 등 다양한 소장 자료를 활용한다. 한 겹씩 펼쳐지는 작가의 집요한 탐구, 그리고 다양한 자료와 재료를 해체하고 재정렬하는 데 사용된 관점과 방법론은 페미니즘과 퀴어 이론을 도구로 적용한 것이다. 그녀의 독자적 작품과 그 구성은 여성국극 배우를 창작자이며 동료 예술가로 의미화하면서, 배우들의 서사와 역사의 주변을 맴돈다. 나아가, 정은영은 남역 배우들의 인터뷰 촬영을 포함해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를 활용할 뿐 아니라, 배우들의 행위를 비디오에 담기도 한다. 그러나 다수의 배우들은 카메라 앞이 불편하다고 호소했으며, 무대 위에서 생동감 있게 공연하기를 원했다. 이 결과로 2012년에 문화역서울 284에서 최초 공연된 두 퍼포먼스 작품, 〈(오프)스테이지〉와 〈마스터클래스〉가 탄생했다.
싱글 채널 비디오인 〈(오프)스테이지: 조금앵〉(2012)은 지금은 고인이 된 1세대 ‘니마이’11를 쫓는다. 작가는 비디오작업과 자료를 전시함으로써, 배우 조금앵이 지금 이 순간과 배우였던 자신의 경험 나아가 이 독특한 공연예술 장르를 형성했던 공동체의 특이성이나 그들 삶의 특수성에 대해서 이제는 더 이상 들리지 않을 사라진 목소리와 부재를 드러낸다. 작가는 어떻게 그처럼 의도적으로 은폐되고 축출된 역사가 다시 살아 움직일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떻게 배우들의 구술과 뿌연 사진들이 고인이 된 배우들이 남긴 빈 공간을 채워 줄 아카이브로서의 기억이 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 형성된 이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창조적인 여성들의 개별 역사는 어떻게 하면 마침내 한국사의 일부로서 가시적이며 공식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
전시, 연구 발표에서부터 기록이나 라이브 퍼포먼스에 이르는 다양한 맥락의 작품을 통해서, 정은영은 종종 무대에서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성별을 창의적이고 유희적으로 바꾸는 여성국극 배우들의 삶에서 내밀한 역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작가는 동시에 여성 관객들의 억압된 욕망에 말을 걸었던 전성기 여성국극의 성공과 광범위한 시각화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애초에 정은영은 이들의 활동을 아카이빙하는 아키비스트로 존재할 생각은 없었다. 지난 수년간 작가는 여성국극 배우와 한국 사회에서 퀴어로 살아가는 이들이 소수자로서 연대하는 방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은영이 의도적으로 여성국극 아카이브를 비선형화 하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역사가 되고 그 일부가 되는 것들은 단지 파편적 정보로만 등장할 뿐이므로, 그것은 조심스럽게 재구성되어야 하며, 배우들 개개인의 다양한 경험 때문에, 이 역사는 불가피하게도 중층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역사적 사건들의 지도를 규범적으로 그려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이 부정확성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정은영의 작업이 보여주는 하부주제와 선형적인 논리의 부재에도 작가는 관심을 두고 있다. 상이한, 그리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진실을 취하고 질문함으로써 ‘주어진 것’ 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해체하고 해부하며 재구성하는 아카이브.
역사적 내러티브를 극장이라는 환경 속에 직접 위치시키는, 수행적 도구로서의 최근작 〈유예극장〉(2018)은 단지 배우들이 직업상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장소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성들과 함께 고통의 역사와 관계하는 해방된 공간이 된다. 누군가 상상한 역할과 욕망한 젠더를 스스로 선택하는 실천을 지속한다는 것은 고유한 자기 이해를 위한 예술가들의 창조적이고도 공공적인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정은영은 대단히 독자적인 형식을 만들어낸 여성국극의 여러 흥미로운 특징을 제공하면서도, 작가의 나라인 한국을 포함해서 모든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어온 조직적 폭력의 억압된 역사를 또한 조망한다. 정은영의 예술 실천은 단지 이 특수한 장르와 배우, 그리고 그들의 역사에 대한 옹호라고 한정할 수 없다. 여성국극이라는 주제와 한국의 특정 역사적 상황에 의해 드러난 여성이라는 주제에 오랜 기간 몰두해온 작가는 여성국극이 지금의 퀴어 공동체에 잠재적이고 재구성 가능한 미래임을 역설하며, 더불어, 어떤 사회에서건 그들이 정치적 목소리와 권리를 쟁취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요청하며 투쟁하고 있다.
《올해의 작가상 2018》에서 선보인 정은영의 프로젝트, 〈유예극장〉은 사라져가는 예술형식인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10여 년에 걸친 오랜 노력의 지속물이다. 이 새 작품은 여성국극에 대해 색다른 관점을 취한다. 그것은 작가가 직접 기술한 바와 같이 “여성국극의 사형 선고를 유예”하는 행위이다. 〈유예극장〉은 분명 새로운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작가가 그래왔듯이 여전히 ‘젠더 규범성’을 문제시하고 ‘소외된’ 집단이 겪는 정치사회적 문제들을 강조하는 동시에, 모든 이들에게 부여된 표현의 자유, 동등한 기회 및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유예극장〉에서는 세 명의 배우들이 자신들이 참여해 온 공연예술 장르에 대한 생각을 구술한다. 남성 역할을 내면화하고 남성 연기를 향상시키는 것은 무대 위에서 남자를 연기한다는 사실과 무대 밖에서 여성의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정은영은 지칠 줄 모르는 노력으로 비가시적 과거를 재연, 상연, 기록하여 퀴어한 공연예술 형식, 그리고 더 나아가 퀴어한 삶을 위한 잠재적 미래를 만들어 낸다. 작가는 역사란 가시성의 주변에 머무르는 그림자처럼 불편한 진실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공적이며 사적인 삶에서 여성을 조연으로 격하시키는 가부장제의 지속적인 지배를 거론한다. 정은영은 ‘세이랜’이 그랬듯이, 역사적 진실의 위험하고 불길한 물길로 우리를 유인하려 자신의 예술 언어를 유혹의 목소리로 사용한다.
번역: 신현주
1. Horton, P. & Saunders, J., “The ‘East Asian’ Olympic Games: What of sustainable legacies?”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the History of Sport, 29(6), 2012. Retrieved 20 Februaruy 2015.
2. George Katsiaficas, Asia’s Unknown Uprisings, Volume 1: South Korean Social Movements in the 20th Century, PM Press, 2012, p. 277.
3. https://www.usnews.com/news/bestcountries/slideshows/the-10-worstcountries-for-genderequality-ranked-byperception?slide=9
4. 작가와의 이메일 대화 내용에 근거함.
5. 정은영, 양효실, 김영옥, 나영정, 방혜진, 안소현, 『전환극장: 여성국극 프로젝트 2009 – 2016』, 포럼에이, 2016, p.318.
6. https://www.history.com/news/comfortwomen-japan-militarybrothels-korea
7. 1948년에 이 여성예술인들은 스스로 자유로운 일자리와 창조적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여성국악동호회를 설립했다.
8.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에 의해 음악적 이야기를 전달하는 한국음악의 한 장르이다. 초기에는 하층민을 위한 민속 공연의 한 형태로 시작되었다가 19세기에 이르러 상류층에도 수용된다.
9.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음악극단으로 일본의 효고(Hyōgo)현 다카라즈카에서 시작되었다. 서구적 뮤지컬, 그리고 종종 소녀 만화 (shōjo manga) 및 일본 민담을 화려한 브로드웨이 스타일로 제작하며, 모든 역할은 여성이 맡는다.
https://en.wikipedia.org/wiki/Takarazuka_Rev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