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인콜렉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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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CV
http://okin.cc
<주요 전시 및 프로젝트>
2018
현실비경, 토탈미술관, 서울
2017
역사를 몸으로 쓰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과천
2017
공동의 리듬, 공동의 몸, 일민미술관, 서울
2017
무용수들, 아트스페이스풀, 경남도립미술관, 서울
2017
do it 2017, Seoul, 일민미술관, 서울
2017
비디오 포트레이트, 토탈미술관, 서울
2017
In the Presence of Others, 주인도 한국문화원, 뉴델리
2016
제3회 난징국제아트페스티벌-히스토리코드: 결핍과 공급, 난징
2016
EAST ASIAN VIDEO FRAMES:SHADES OF URBANIZATION, Pori Art Museum, Pori
2016
행복의 나라: 사회 속 미술,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서울
2016
아트스펙트럼 2016, 리움, 서울
2016
무엇인가 잘못됐나요? 게임을 만들자!(Rien ne va plus? Faites vos jeux!), 드아펠 아트 센터, 암스테르담
2015
아시안 아트 비엔날레, 대만국립미술관, 타이중
2015
Survival K(n)it 7, 리가
2015
안무사회, 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15
EAST ASIAN VIDEO FRAMES, Pori Art Museum, 포리
2014
제10회 광주비엔날레-터전을 불태우라, 광주
2014
Post-Movement: Night of Café Mueller, 콴두 미술관, 타이페이
2014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13
No Dance!: Between Body and Media, 제로원디자인센터, 서울
2013
No Mountain High Enough, 시청각, 서울
2013
Acts of Voicing, 토탈미술관, 서울
2012
진실은 구체적이다 (Truth is Concrete), 쉬타이르샤 헵스트 (Steirischer Herbst) 2012, 그라츠
2012
파동 The Forces Behind, 두산 갤러리, 뉴욕
2012
총파업-Stop the city, Take the Street, 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2011
안녕 없는 생활들, 모험들,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2010
옥인 콜렉티브 단독전시 ‘콘크리트 아일랜드’, 테이크아웃드로잉, 서울
2010
옥인 콜렉티브 단독전시 ‘옥인 오픈 사이트’, 철거중인 옥인아파트, 서울
2010-현재
옥인 인터넷 라디오 스테이션 [STUDIO+82]
2009.7-2010.11
옥인아파트 프로젝트, 철거중인 옥인아파트, 서울
<주요 퍼포먼스 및 워크숍>
2017
지시문 2017-무지개가 뜨는 시간처럼, 일민미술관, 서울
2017
[프랙티스-03 말과 위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과천
2016
[프랙티스-02 막간극], 여의도 공원/C-47 비행기 전시관, 서울
2015
[프랙티스-01 폐와 반복], 백남준아트센터, 서울
2014
작전명-님과 노래를 위하여, 10회 광주 비엔날레, 광주
2014
서울 데카당스-Live, 페스티벌 봄, 인디아트홀 공과 건물 옥상, 서울
2013
몸말 워크숍, 아트스페이스 풀, 서울
2013
플레이그라운드 인 아일랜드 2013, 워크숍, 코타 키나발루
2012
돈키호테 델 까레(거리의 돈키호테), 길거리 퍼포먼스, 바르셀로나
2012
한국현대극세사(韓國現代極細事) 디제잉, 사운드 퍼포먼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과천
2012
작전명-까맣고 뜨거운 것을 위하여, 19금 퍼포먼스 릴레이, 서울
2011
작전명-하얗고 차가운 것을 위하여, 갤러리 루프와 동교동 일대, 서울
2010
옥인 매니페스토-5분간의 혁명, 백남준아트센터(기획_클라우디아 페스타나)
2010
제주인권회의 워크숍, 제주/서울
<주요상영>
2016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한국영상자료원, 서울
2015
아티팩트 페스티벌 15(ARTEFACT FESTIVAL 15), 스툭(STUK), 겐트
2015
제15회 서울국제뉴미디어 페스티벌, 인디스페이스, 서울
2014
토탈리콜, 일민미술관/한국영상자료원, 서울
2013
스펙타클과 우회의 전략, 기 드보르와 국제상황주의 전, 미디어 극장 아이공, 서울
2012
제4회 오프앤프리 국제영화예술제, 서울
<레지던시>
2013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12
앙가(Hangar) 국제 레지던시, 바르셀로나
2011-2012
금천예술공장, 서울
<소장처>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Critic 1
조주현 (일민미술관 학예실장)
그리고 나서 근대 남 호주의 흰개미 후장(hindgut)에 있는 믹소트리카 파라독스, 즉 역설적으로 얽혀 있는 미시적 “머리털” 조각이라 명명된 생물체의 존재가 제시하는 텍스트를 생각해 보라. 이 작은 가는 실 같은 생물은 유전적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경계가 있는, 방어되는, 단 하나의 자기라는 개념을 조롱한다.
다나 J. 해러웨이1
1. 친구인가 친족인가 : 낯선 자들의 친밀성
“그 순간, 무엇이 우리를 달아오르게 한 것일까. (…) 보다 원초적인 죽음 혹은 사라짐과 연관이 있으며 (…) 교사되어진 것, 어쩌면 비천하게 탄생하여 비천하게 사망하는 것에 대한 비릿한 우애 혹은 비천한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아직은’ 손상되지 않은 자들의 연대감, 또는 ‘아직은’ 누구의 소유라고도 말할 수 없는 거대한 무덤-놀이터에 대한 탐닉일지도 모른다.”2
인류 문명이 종말한 후의 암울한 세계를 묘사하는 포스트아포칼립스 소설의 한 구절인 양 들리는 위의 인용은 을씨년스러운 옥인동의 초현실적 풍경을 마주한 작가 이정민의 독백이다. 엄청난 화마가 휩쓸고 간 듯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건물의 회색 시멘트 조각들과 녹슨 철재 골조들이 앙상하게 모습을 드러낸 채 헐벗겨진 벽체, 산산이 깨지고 부서져 흙바닥에 널브러진 유리 창문 조각들, 그리고 이 황량한 폐허의 장소를 둘러싼 허무와 우울의 정조. 2009년 7월, 김화용, 이정민, 진시우 3인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옥인 콜렉티브(okin Collective, 이하 ‘옥인’)의 <옥인아파트 프로젝트>(2009-2010)는 당시 서울시의 한강르네상스 사업에 따른 재개발 계획에 의해 느닷없이 다가 온 강제철거라는 상황을 둘러싸고 그곳에 남겨진 사람들, 잔재들 속에서 우발적으로 모인 작가들과 지역민들이 함께 벌인 일종의 해프닝이었다.
옥인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던 동료 김화용의 소식을 듣고 우연히 목격하게 된 그 장소에서는 자본 중심의 근대 사회에서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도시 권력자들의 횡포와 그로 인해 폐기된 삶의 흔적들이 무참하게 지워지고 사라지고 있었다. 그 아수라 속에서 이들이 본능적으로 감지했던 공통의 정서는 소위 ‘젊은’ 예술가로 이 시대를 버티고 살아가며 느끼는 끝이 없을 불안감과 알 수 없는 패배감, 그로부터 유인된 ‘낯선 자들의 친밀성’이었다. 도시의 폐허 현장 속에 자발적으로 모여 그 “거대한 무덤-놀이터”를 누비며 시체 더미 위에 뒤얽힌 살아남은 자들의 연대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더 이상 미래가 존재하는 않는 상황에서 생존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그 곳에 모인 예술가들에게 이 재난의 현장을 마주한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예고하는가?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 이외에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거대한 몰락의 파국서사를 내포한 <옥인아파트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사회적 예술 실천이나 행동주의 예술 운동과는 사뭇 결을 달리한다. 자본주의로 인해 손상된 세계, 더 이상의 답안을 찾을 수 없는 세계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는 “낯선 이들과 함께 함”이었다. 절망과 불안을 체화한 이들은 함께 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자신의 신체 일부인 촉수를 뻗어 타인의 신체에 닿아 분비물을 사출해 상대를 감싸고 서로를 감염시키며 비정형의 무리를 지어나갔다. 어느 순간 자연스레 ‘콜렉티브’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도 그 멤버를 고정시키거나 특정한 타깃을 설정하지 않은 이들의 연대는 말 그대로 유기체적인 것이었다.
그 장소에서 일어난 이웃들의 문제들에 개입하기 시작한 후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하나 둘씩 모여들었던 동료 작가들, 남아있는 철거민들과 함께 이들이 벌였던 행위는 마치 어린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세상을 감각해 나가듯 폐허가 된 아파트 곳곳을 돌며 버려진 폐기물들 속에서 보물찾기를 하고, 텐트 친 옥상에 주민들을 초청해 함께 바캉스 즐기거나, 동료들과 인왕산 사생대회를 열고, 철거현장에 즉흥 공연을 마련하는 등, 소소한 파티 성격의 이벤트들이었다. 이들은 모든 생명력이 소멸된 장소를 점거하고, 이전에 전혀 관계 맺지 않았던 이웃들에게 놀이와 여행, 전시, 시위 등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을 결합시킨 가장 낯선 경험들을 제안함으로써, 그곳에 내재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고 지역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인식하여 직접 발화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하나의 ‘장치(apparatus)’를 마련한 것이다.
옥인은 오늘날 우리 사회 가장자리에 위치하여 그 형태나 존재가 쉽게 드러나거나 감지되지 않는 가시권 밖의 공동체들을 관찰한다. 그 공동체들이 처한 ‘상황’은 본능적으로 개체들을 무리 짓게 만든다. 많은 동식물 종의 몸에 서식하는 미생물들의 공생 관계를 관찰한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숙주와 장내 세균 간의 상호작용은 어느 정도 기생적이지만 장내 세균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유해한 다른 기생자가 숙주를 공격할 때 매우 유익한 보호자가 되는 쪽으로 진화한다. 이에 상응한 숙주 또한 방어 기능을 하는 세균이 더 많이 자기 몸에 정착하도록 돕는 쪽으로 진화하는데, 이렇게 공진화한 숙주와 방어 세균 개체군이 결합하여 두 종에 모두 유익한 이점이 최대가 되면서 상리공생에 함께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3 낯선 개체들이 공격을 받는 적들에 대항해 방어기제로 연대하게 되는 상황이 되었을 때 함께 공진화해나간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가시권 밖에 존재해 온 공동체들이 맺는 ‘관계’에 대해 재고하게 한다.
2010년 무렵, 한국 미술계에서는 시각예술가, 디자이너, 기획자 등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다루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형성한 소그룹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청년세대가 떠 앉은 이 시대의 유산인 ‘불안감’을 공유한다. 2008년 외환위기를 겪은 예술가들이나 그 시기 미술계에 막 들어선 젊은 작가들은 이 자본주의로 손상된 사회적 상황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비슷한 취향과 태도를 지닌 ‘친구들’과 갖는 사적 연대로부터 위로를 받고 그로부터 공적 발화를 시작했다.4 그러나 이 예술가 커뮤니티들이 기조로 삼고 있는 “나와 비슷한 취향과 방향”을 가진 이들의 연대, 그것은 상당히 강고한 ‘경계’를 가진 개념이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순수한 동질성을 강조하고자 하지만, 그것은 태생적으로 배타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종적 연대로는 또 다른 소외가 양산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 사회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문제들을 상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5
반면, 사회 가장자리에서 주체로서의 권력이 주어지지 않는 이들이 무리 짓는 방식은 미생물의 공생관계나 난과 식물의 종자가 균의 감염에 의해서 발아되는 공생발화처럼 서로를 “먹고 감염시키며, 먹히고 감염되는”6 와중에 함께 진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는 ‘친구’와 같은 배타적 관계 맺음이 아닌, 새로운 종류의 세포들, 조직들, 기관들처럼 주로 낮선 것들과의 오래 지속된 친밀성을 통해 진화해 나가는 ‘친족’의 관계 맺음이다. 친족은 모든 것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가장 본능적으로 감각한 어떤 것에 촉수를 뻗어 서로 붙고 얽히며 관계를 만들어낸다.7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대신한 유대관계, 기존의 모든 친한 관계들을 가로지르는 진정한 우정, 사랑을 모두 포괄한 관계에 기반 한 공동체의 형태.8 옥인이 10년 동안 ‘공동체’를 다룬 방식은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옥인의 관찰 대상이 되고, 또 옥인 공동체 자체인 이들은 서로 관계 맺기 이전에 전혀 상관없던 매우 낯선 조직들과 세포들로, 서로의 신체를 함께 점유하고 감염시키며 무리를 이룬 것이다.
2. ‘도시 3부작’ : 함께-되기
이번 전시에서 옥인은 서울, 인천, 제주 세 도시를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 공동체들을 다룬 ‘도시 3부작’을 발표했다. 옥인아파트의 철거 사건을 배경으로 예술가 콜렉티브로 탄생하게 된 과정들을 파편적으로 기록한 <바깥에서>(2018)를 통해 예술가들이 이루는 연대의 방식, 그 울퉁불퉁하고 열린 공동체가 사회적으로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보여준다면, 가장 최근작인 <회전을 찾아서, 또는 그 반대>(2018)는 인천 변두리의 한 구도심을 거점으로 작업하는 지역 작가들의 공동체를 관찰한 것이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 중심에서 벌어지는 미술 현장으로부터 빗겨난, 가장자리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지역작가들의 공동체를 다룬 이 다큐멘터리 영상은 또다시 생명력이 소진된 막다른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활동의 기반이 되는 ‘씬(scene)’이 없는 곳에서 예술가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 어떻게 지속 가능할 것인가. 이 작업의 관찰 대상인 인천 ‘회전예술’ 공동체의 작가 구성원들은 출신도, 배경도, 나이도 가지각색이다. “어느 순간 시간이 멈춘 박제된 상태”9인 이 도시에 정착한 작가들이 모여 이룬 이 공동체는 예술 인구가 적은 그곳에서 어쩔 수 없이 만날 수밖에 없는 동료들의 집단이다. 이들 무리는 그 어떤 이념이 강요되거나 의식을 공유한 집단이 아닌, 자발적이고 본능적으로 그 자리에 함께 모여 있을 뿐이다.
인천이라는 장소의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비 일관적이고 무책임한 문화정책, 특징 없고 무질서한 도시 시스템, 정책 담당자들의 횡포와 의식 없음에 지칠 대로 지친 이들은 더 이상은 기대할 것이 전무한 이 도시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며 느끼는 일종의 절망감과 패배감이 자신들에게 색다른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고 증언한다. 모든 것이 희망 없는 상태, “거대한 무덤”에 다름 아닌 장소지만, 그래서 이들은 그곳에서 오히려 “즐거움”이 유일한 목표가 된다. 낭시(Jean-Luc Lancy)에 따르면, 인간이 타자에게 ‘외존(外存)’하여 공동으로 현존하게 되는 순간은 전적으로 자신의 실존이 유한하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이다. 낭시에게 공동체는 어떤 하나의 공통적 존재로서 동일한 신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는 것이 아닌, 실존적 공동체로서 공통적으로 모여 있는 “공동-내-존재(being-in-common)”만이 있을 뿐이다. ‘무위의 공동체’로 정의되는 이 새로운 공동체성은 단지 “타자와 내가 공동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무위(無爲)’란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 ‘비-행동’, 도래하게 내버려두는 것”을 뜻한다. 이때, 공동체 속의 개인은 “어떤 가치도 함의하지 않은 존재”로서의 ’단수성(singularity)’을 특징으로 하고, 또 다른 단수적 존재인 타인의 피부(또는 심장)와 만나서 “그 경계에서만” 완전해질 수 있다. 이것은 온전히 나 자신이면서, 동시에 타자일 수 있는 상태로, 서로가 서로를 “분유(分有)”하고 있는 것이다.10
‘회전예술’ 작가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갖고자 함께 모여 같이 회전한다는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 회전은 의미 없이 돌아가는 공(空)회전이기도 하고, 또 함께 공생 발생적으로 생성되는 공(共)회전이기도 하다. 옥인이 <작전명> 시리즈에서 주로 사용하는 장치인 ‘헛기술’로서 무술의 몸짓은 이 작업에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영상에 삽입된 회전무술 마스터의 시범처럼, ‘회전’은 잠재의식 속에서 찰나를 감각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장치)이다. 회전예술 작가들이 함께 모여 ‘회전한다’는 의미는 그들이 한 방향으로 돌다가 부지불식간 그 무게중심을 이용해 쉽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 강한 소용돌이 속에 뭔가 꿈틀거리는 작용과 반작용으로 기능할 수 있는 잠재적 순간들을 내포한다. 그것이 비록 공회전이더라도 그 움직임은 신체를 탄력 있게 균형 잡아 다음 회전을 가능하게 만든다. 이들은 각자 미술 외부의 다른 삶을 모색하며 살아가다가도 서로의 피부(또는 심장)를 접촉해 회전하는 순간, 예술가로서 다음 회전이 가능한 지속 가능한 상황을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공유된 존재로서 함께 있을 때에만 현시되는 이 “유한한 존재들의 공동체”는 그 자체 또한 유한한 특성을 지니게 되며, 끊임없이 “도래해야 할 어떤 것”으로서 불안정한 상태로만 나타난다.
옥인의 ‘도시 3부작’ 중 <황금의 집>(2017)은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인 ‘죽음’을 가까이에서 의식할 수밖에 없는 노후의 삶과 시니어들의 공동체를 관찰한 다큐멘터리이다. 이 영상의 배경인 제주도 원 도심에 위치한 ‘까사돌(Casa d’or)’이라는 이름의 커피숍은 일반 찻집과는 좀 다른 기능을 하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의 이 오래된 카페는 이 지역의 연세 드신 분들이 모여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그곳에 모인 점잖은 노인들이 TV 모니터 앞에 둘러 앉아 오페라 ‘소포클레스의 비극’의 일본 공연 실황을 보며 담소를 나눈다. 클래식 음악이라는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노인들의 공통감은 무엇일까. 제주도 한 의료원에서 18년간 의료원장을 하고 퇴직한 한 노신사는 자신이 목격했던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돈, 친구, 가족과의 관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음을 말한다. 이에 화답하듯, 목회자 출신의 한 어르신은 이 ‘까사돌’ 공동체에 대한 흥미로운 지점을 밝힌다. ‘노인’이라는 조건은 학력, 지위, 젠더, 권력 여부 등의 세속적인 조건들을 뛰어넘어 그들만의 어떤 공통성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원초적인 생과 죽음 앞에서 평생 자신을 타인들과 구분 짓고 종적 경계를 만들어 온 그 어떤 사회적 조건들 대신, 본능적인 감각으로 타인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여 ‘친족’ 공동체가 가능한 감성의 연대와 관련한다.
옥인이 관찰한 ‘까사돌’ 노인 공동체는 자신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간은 진정한 공동체를 이룰 수 없음을 반증하는 듯하다. 동시에, 이들은 랑시에르가 말한 ‘미적 공동체’로서 새로운 감각의 공동체의 표본일 수 있다. 예술의 향유를 매개로 한 ‘까사돌’ 공동체는 기존 인간 집단들의 정체성을 해체하는 ‘탈정체화’ 과정을 거친 인간들이 상호 동일화를 통해 새로운 주체화가 형성된 집단이다. 인간의 세속적 경계를 허무는 감각의 공동체는 기존의 분할선을 파괴하면서 새롭게 “함께” 재구성한 “감각적인 것의 나눔”의 틀을 공유한다. 그것은 특유의 주체화 과정에서 모든 인간들이 근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전제 속에서 행동하게 하며, 그런 의미에서 이 공동체의 매개로 작용하는 예술이 진정한 정치적 효력을 갖게 만든다. <황금의 집> 영상 마지막 부분에 오페라를 감상하며 극장 청소 문제를 걱정하는 여성 시니어들의 대화는 평등을 인정하지 않는 치안의 질서가 평생 이분법적 논리 속에 대척점에 두었던 젠더 공동체를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옥인아파트 철거 과정에 개입하며 도시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했던 옥인콜렉티브는 이후 사회 여러 소수자들과 연합하며, 노동자들, 성소수자, 노인, 비주류 등 사회 시스템 안에서 보이지 않는 다양한 주체들과 연대하고 있다. 근대가 파괴한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삶의 방식을 어떻게 다시 현재로 가져와 재창조하느냐에 헌신하는 옥인의 활동들은 서로의 삶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재건될 수 있음을 기대하는 결코 순진하지 않은 상상이다. 이들은 파괴된 피난처를 복구하기 위해 함께-되기를 시도하는 존재들로, 자신도 아니고, 타자도 아닌, 우리 모두이며, 바로 “무수한 옥인”의 존재들이다.
3. 장치-픽션, 장치-공동체
옥인이 10년 동안 ‘공동체’를 이루는 방식은 자신들의 ‘콜렉티브’ 자체 뿐 아니라 우리 사회 가장자리에 불안정하게 존재하는 다양한 ‘공동체’를 하나의 ‘장치(apparatus)’로 바라보고, 이 사회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장치는 기계 장치처럼 어떤 목적을 위해서 작동하도록 장착된 도구이다. 그것은 필연적인 권력(힘)을 수반하며, 장치를 가진 자들은 국가나 사회 곳곳의 시스템을 변경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권력 관계들이 전략적인 기능을 갖고 작동하는 체계를 뜻하는 장치 개념은 푸코나 데리다, 아감벤 등 20세기 후반 근대 사상가들에 의해 다각적으로 고찰되었다. 푸코는 ‘디스포지티프(dispositif)’라는 개념을 통해, 장치의 작동 메커니즘이 “다원적인 요소들 사이에서 존재할 수 있는 연결지점의 본성”으로써 “전략적 기능”을 갖는다는 점을 논하며, 궁극적으로 장치가 ‘고정된’ 것의 권력 혹은 제도에 물음을 던지고, 이를 전복시킬 수 있는 유동성의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을 규명한다.11
옥인은 예술가로서 자신들이 처한 현실,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콜렉티브’가 하나의 장치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동시에 사회 가장자리에 위치한 다양한 개체들과 연대하며 사회적 제도와 같은 매우 공고해진 장치에 대항해, 미술의 장소이자 작가들의 콜렉티브라는 이 무형의 유기체가 자신들을 둘러싼 사회, 문화, 경제, 정치, 제도 등 여러 이해관계의 문제들을 폭로하는 다원적인 관계망이 되고자 했다. 옥인이 다양한 프로젝트들에서 창안해 온 주요한 장치적 기제는 ‘실제성의 무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포스트-드라마로서 연극의 형태이기도 한데, 예술이면서 실제 정치적 행위가 되기도 하는 것들이었다. <서울 데카당스-Live>(2014)는 국내 최대 규모 기타 제조회사인 콜트콜텍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의 연극 ‘구일만 햄릿’을 서울의 한 폐공장에서 재구성한 퍼포먼스였다. 부당해고에 맞서 무려 11년이 넘는 시간동안 복직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밴드와 연극 활동 등 다양한 문화 행동을 벌여왔던 이들은 연극 ‘햄릿’을 각색하고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자신들의 상황을 세상에 전달하고자 했다. 옥인은 이 연극을 다시 퍼포먼스로 무대에 올리면서 공동연출을 했던 진동젤리의 권은영과 매운콩을 배우로 캐스팅했다. 연출자들이 전직 노동자들인 아마추어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서서 긴장한 이들에게 조언을 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끌어올 수 있게 함으로써, 시나리오에 기반 했던 본 연극은 어느 순간 일종의 즉흥극으로 변신했다.
옥인 퍼포먼스의 특징은 배우들이 주로 전문적인 신체 훈련을 받지 않은 아마추어들이라는 점이다. 또한 배우 뿐 아니라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들까지 무대와 객석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은 극장에 육체적으로 같이 현존한다. 이때 무대와 객석 사이에는 새로운 연대관계가 형성된다. 옥인이 구성한 장치적 기제로서 이러한 실제성의 무대는 연출된 상황을 실제 상황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실제와 허구 사이의 판단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다시 말해 연극적 상황의 모호성으로부터 실제성의 무대는 그 효과를 발휘한다. 무대에 오른 연출가의 일상적이지 않은 역할은 주인공들에게 노동과 가족에 대한 기억을 입혀 관객들로 하여금 절규하는 인물이 오필리어 대사인지 노동자 개인의 이야기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을 제시한다. 이렇게 관객들은 실제인지 연극인지 모를 상황에서 심정적으로 이들의 퍼포먼스에 참여하게 된다. 이러한 퍼포먼스에는 허구적인 연극과 실제적인 정치적 집회의 성격이 포개어져 있다. 두 개의 상이한 틀이 충돌하면서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관객은 연극 속으로 들어와 행위자로 전환된 것이다. 옥인이 창안한 퍼포먼스 장치들은 배우와 관객의 관계가 쉽게 역전되는, 허구성과 실제성의 교묘한 조합을 통해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경계에 서서 전복적인 힘을 갖는다.
일민미술관에서 개최된 <do it 2017, 서울>전에 참여한 옥인콜렉티브가 피에르 위그의 지시문을 재해석해 진행했던 한 퍼포먼스는 미술관 전체를 하나의 장치로 만들었다. “무지개가 뜨는 시간처럼”이라는 지시문 문구에 착안해 동성애, 젠더, 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듯 보였던 이 퍼포먼스는 참여자들에게 “자신의 반려○○(동식물, 사람 포함)과 함께 전시를 관람”하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참여자들과 관람자들 사이의 미묘한 상황을 만들며 장치로서의 실험적 상황들을 통해 관람자를 교란시키고자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성격의 여타 프로젝트들과 달리 이 퍼포먼스는 특별히 극단적이거나 대립적인 상황을 만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객들은 강아지, 거북이, 앵무새와 같은 자신의 애완동물이나 식물을 무지개로 장식하고 지정된 드레스코드에 맞춰 파티 장에 오듯 미술관에 방문해 작가들이 제공하는 다과와 선물을 즐긴다. 또한 동성애자, 이성애자 구분 없이 모두가 이 퍼포먼스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현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설정으로 인해 퀴어 문제와 관련한 기존의 첨예한 사회적 질문들과 그에 따른 특유의 시선들은 희석되거나 사라지고 대신 모두가 동화되어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보편성의 장이 마련된다.
이처럼 옥인의 실재성의 무대는 잘 짜여진 시나리오에 기반 한 한 편의 연극이라기보다 훨씬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오히려 이들의 퍼포먼스는 관람자들과 참여자들 간의 행위적 패턴에 관심을 갖고 실험하는 사회심리학자들의 태도와 관련되어 논의될 수 있다. 이처럼 덜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했을 때 참여자들이나 관람자들은 개인적 또는 집단적인 행위들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의 반려물인 핑크색 공황장애 약병을 보며, 레지비언 커플의 뒷모습에서, 자신의 반려동물인 작은 거북이가 타인의 커다란 반려견 등 위에 올라 탄 광경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행동하게 될 것인가. 퍼포먼스 자체가 윤리적, 사회적 또는 젠더의 차이점들을 측정하는 도구처럼 행동 패턴들을 측정하는 것은 인간 행동 패턴들을 윤리적, 사회적 측면에서 지적하는 기능일 뿐 아니라, 관람자들과 참여자들로 하여금 ‘즐거움과 어색함 사이 어딘가에 유일한 감정 상태’를 실험하는 매커니즘에 접속하도록 한다. 이러한 감정상태를 측정하는 것은 모든 개인적 경험이다. 그 기계 장치에 접속한 관객들 개개인이 자신의 위치에서 행동하고, 배치를 변경하며, 재배치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을 열어두는 것이다.
4. 나가며
이처럼 옥인이 마련한 장치-픽션은 클라이맥스를 수반하는 연극적 무대를 제시하거나, 관객들의 인식을 전환시키기 위한 촘촘한 시나리오가 숨겨져 있지 않다. 이들은 연극이 아닌 우리의 삶 그 자체를 무대로 한다. 연극적인 허구성은 실제성 속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제성을 통해 더 강화한다. 결국 옥인이 구성하고 배치한 무대는 완벽한 경계 해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이게 하고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규칙들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게 한다. 그래서 관객들이 관점을 바꾸어서 현실을 볼 수 있도록 만든다. 옥인이 실험하는 퍼포먼스는 실제적인 상황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통해 관객들을 모든 계획이 사라져 버리는 공백의 순간까지 끌어 들인다. 이때 관객들은 내적으로 위기를 겪게 되고, 단순히 무대를 바라보는 사람에서 직접적인 행위자로 전환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이렇게 관객에서 행위자로의 전이 체험은 참여자들의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되며, 이들 장치-공동체가 지속가능성을 유지시켜나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제가 되는 것이다.
베라르디(Franco ‘Bifo’ Berardi)가 말하듯, 근대문명이 더 이상 안전하고 지속적인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는 이 ‘미래 이후’의 시기에 자본주의는 “창조적 노동의 정신적 에너지를 총체적으로 동원”12하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이에 소진된 인간들은 지배적으로 우울과 허무의 정조를 체화하고 있다. 10년간의 옥인 콜렉티브 활동은 이러한 현 질서를 낯설게 보도록 만드는 실재성의 무대를 만들고, 이 파국의 시대 살아남은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저항적 전략의 무효함을 비틀며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장치를 사회 곳곳에 배치, 배열, 재구성한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 시대 예술이 할 수 있는 가장 능동적인 정치적・철학적・생태적 사고실험일 것이다.
1. 다나 J. 해러웨이(사이어자 N. 구디브와의 대담), 『한 장의 잎사귀처럼』, 민경숙 옮김, 갈무리, 2005, p.139.
2. 옥인 콜렉티브, 『옥인 콜렉티브』, 워크룸 프레스, 2012, pp. 169-170.
3. Charlotte Rafaluk‐Mohr, Ben Ashby, Dylan A. Dahan, Kayla C. King, “Mutual fitness benefits arise during coevolution in a nematode-defensive microbe model,” Evolution Letters(2018), published by Wiley Periodicals, Inc. on behalf of Society for the Study of Evolution(SSE) and European Society for Evolutionary Biology (ESEB). pp. 246–256.
4. 인터뷰, 옥인 콜렉티브, 『옥인 콜렉티브』
5. 최유미, <선언의 사상가, 다나 해러웨이> 강의노트, 말과활 아카데미, 2018. 5-6.
6. ibid.
7. ibid.
8. 다나 J. 해러웨이, ibid, p.114.
9. <회전을 찾아서, 또는 그 반대>(2018), 인터뷰
10. 장-뤽 낭시, 『무위의 공동체』, 박준상 역, 고양: 인간사랑, 52, 161.
11. Michel Foucault, “The Confession of the Flesh”, Power/Knowledge: Selected Interviews and Other Writings 1972-1977, Edited by Colin Gordon, Random House USA Inc, 1988, 194-197.
12. France “Bifo” Berardi, After the Future, Edinburgh: AK Press, 2011, 67-68.
Critic 2
제이슨 웨이트 (독립 큐레이터)
불확실함은 명확히 존재한다. “계속해서 맴돌지만 움직임은 없다고 느끼죠.” 옥인 콜렉티브는 다소 불편한 듯 이렇게 말한다. “예술과 사회의 공회전에 관해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공회전은 움직임이 있지만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는 하나의 형태로써, 에너지는 더 많이 쓰이지만 사회는 정체되는 느낌을 말한다.
저항의 불꽃이 일어난 지 641일이 지났다. 서늘한 토요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에 대항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여러 작가가 미리 연락을 나눈 뒤 그날 집회에 참여했다. 규모가 더 큰 집단에 함께 참여한 것이다.
다음 주에 벌어질 또 다른 집회 계획이 이뤄졌고, 작가들은 다시 만났다. 그런데 한 주 뒤에는 함께 모이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집단을 이루지 않고 개별적으로 참여한 사람이 많았다.1 옥인 콜렉티브조차 시위에 따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연대가 깨진 것일까? 옥인 콜렉티브는 다르게 느꼈다. 보다 더 큰 어떤 것의 한 부분을 느꼈고, 시위를 할 때에는 개인으로서 온전히 사회의 일부가 된 것이라고 느낀 것이다. 일상의 보호와 지원을 위한 작은 규모의 집단이 시위 참여자라는 더 큰 구조로 펼쳐졌다.
이런 시위가 살아 있는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정치 이론가 조디 딘은 이것이 민주주의에 반(反)하는 것이라고 본다.
민주적 정부는 인민에 의한 통치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군중이 정부에 반대하여 모이면, 이러한 정당화의 한계를 드러낸다. 선거에서 표출된 다수의 의지가 인민의 의지로써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현재의 정부나 그 결정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공개적으로, 물리적으로, 격렬하게 나타난다.2
군중은 이런 한계를 벗어나면서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명령을 망가뜨린다. 이미 동의한 선거 일정이나 국민 투표를 기다리지 않는다. 바로 지금 변화가 일어나길 원한다.
타인과 함께 광장에 몇 시간이나 서 있는 것에는 어떤 힘이 작용하는가? 군중을 살펴본 새 연구에서, 조디 딘(Jodi Dean)은 군중이란 그저 공동체가 아니라 “일시적 집단 존재”, 즉 “개인의 총합 이상의 것. 총합의 뒤틀림을 통해 변화한 여러 개인” 이라고 밝혔다.
이런 식의 뒤틀림 혹은 어떤 장소에 놓인 개인을 집단적으로 비트는 것은 어떠한 힘을 매듭짓는 것이다. 뒤틀린 상태로 가만히 서 있는 것은 강력한 상태다. 이러한 일시적 집단 존재 안에 놓인 개인은 상호적인 세력을 형성한다. “힘의 응집은 그들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하도록 밀어붙인다.”3
군중 안에서 함께 존재하는 데서 비롯하는 뒤틀림은 사람들을 잠시 하나로 묶어주는 감정을 역동적으로 수렴한다. 혼잡한 공간이지만, 서로를 챙겨주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한 곳에 서 있기 위해 자리를 잡고 나면, 하나의 목적을 공유하는 다양한 사람 가운데 있다는 데서 놀랍도록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딘은 이러한 군중이 “모방, 전염, 그 자신의 패배 불가능성을 통해 정동적으로” 한데 모인 상태를 유지한다고 본다. 함께 있기에 패배할 수 없다는 이러한 감각은 매우 중요하다. 그저 광장에 함께 서 있음을 통해 국가 원수를 타도하는 어려운 과제를 직면하고, 일시적 집단 유기체가 형성될 때야말로 불가능한 것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뒤틀림의 힘을 통해 어떤 생각이 기꺼이 실체를 띄게 될 수 있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이런 일이 단지 한 차례 벌어진 것이 아니라 매주 일어났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음 주에는 또 다시 집회에 참석해야 할 것 같다는 불안정한 집단적 믿음과 함께. 저항의 한 형태로서 매일 함께 생활하는 야영지를 형성했던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과는 달랐다. 한국에서 벌어진 집회의 경우, 각 개인이 제 삶과 일을 유지하며 평일에는 스스로를 재생산했고, 그런 뒤 토요일이면 군중의 일원이 되어 대통령의 사임을 집단적으로 요구했다.
이렇게 급진적인 혼란은 집회에 참여한 개인들을 위한 균형을 찾아줄 수 있었고, 평일 동안 이뤄진 재생산과 주말에 벌어진 활동의 조합을 통해 몇 달 동안이나 혼란스러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깊숙이 미래적이면서 짧은 순간에 존재하는 동시에 역사적인 행동이었다. 스스로 의식하면서 시간을 횡단하는 정치의 형태였던 것이다. 불리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한 요구는 현실이 되었다. 이런 성취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시민과 온라인상의 여러 집단은 승리의 월계관을 쓰는 데 머무르지 않고, 전에는 손닿지 않는 곳에 있는 듯 했던 다른 이들의 뒤를 캐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늘어나는 목표물의 목록에 있는 주요 기업의 수장, 전직 대통령, 부패 정치인 등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집단적 주체성은 감각의 정점을 직접 또한 온라인상에서 입증하는 듯 했다. 그런데 그 이후엔 여전히 공회전, 격차가 느껴졌다. 이런 격차는 반란과 혁명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일 수도 있었다. 정치 철학자이면서 난민이기도 했던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이 두 개념의 결정적 차이점에 관해 논한 바 있다.
‘반항’과 ‘반란’의 정의는 심지어 중세 후반부터 비로소 이뤄졌다. 그러나 이 단어들은 혁명가들이 이해한 것처럼 해방을 가리킨 적이 없고, 심지어 새로운 자유의 수립을 나타내지도 않았다. 혁명적 의미에서 본 해방은 현재뿐 아니라 역사에 걸쳐 존재한 이들, 즉 개인만이 아니라 인류의 다수, 하층민과 가난한 이들, 항상 암흑 속에 살아왔던 이들과 온갖 권력에 무릎 꿇었던 이들이 일어나 영토의 최고 주권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4
반란으로 지도자를 바꿀 수 있지만, 여기에는 체계상의 한계가 따른다. 아렌트는 혁명이 자유를 향한 욕망과는 다른 욕망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의 자유라는 개념을 팔아먹는, 속속들이 신자유주의적인 사회에서 집단적 자유를 실제로 규정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지금 벌어지는 공회전 감각의 문제를 보게 되는 부분이다. 불완전한 욕망에서 불완전한 행동이 벌어지는 것. 아렌트는 말한다. “억압에서 자유로워지려는 해방에 대한 단순한 욕구가 어디에서 끝나는지, 정치적 삶의 방식으로써 자유에 대한 욕망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말하기 어려운 때가 많다.” 아렌트는 여기에서 정치적 삶의 방식으로써 우리를 더 전체론적 형태의 정치로 이끈다. 주말 집회에서 나타났을 뿐 아니라 아마도 일상으로 초월해 들어갈 방법을 찾아낸 삶의 방식을 말이다. 혁명이 일어난 뒤 지금과는 다른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기다리는 대신, 새로운 세상이 매 순간 다가오고 있었다면 어떨까?
옥인 콜렉티브와 뒤틀림
대체 왜 개인주의 패러다임의 신봉자로 여겨졌던 예술가들이 21세기에 콜렉티브가 되기로 결심한 걸까? 2008년, 김화용 작가는 서울시 종로구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아파트 단지가 철거되어 다른 주민들과 함께 강제 퇴거를 당하게 되었다. 1980년대 이래 서울의 상당 부분이 건축과 재건축을 반복했기에, 이 사건은 드문 일 아니었다. 하지만 당신에게 실제로 강제 퇴거가 벌어진다면, 이것은 독특한 경험이 된다. 그간 살았던 공간에서 떠나라고 강요 당하는 것이다. 네 개의 벽과 두 개의 층으로 이뤄진 건물 사이에 존재했던 도시의 오아시스는 그 상태가 어땠던지 간에 “스스로의” 공간이었다. 감정과 소속감, 머무를 곳이라는 애정을 담은 공간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공간을 떠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공간에서 찢겨져 다른 곳에 또 다른 공간을 다시 만들어야만 하는 것. 김화용은 이런 트라우마가 “일방적이고 처절한 이별을 선고받는” 것이라고 설명한다.5
주민이 떠나며 아파트 단지가 비어가고 있었지만, 주민들의 소지품 중 다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람들의 삶이 남긴 감정이 만든 환경, 벽지, 가구, 소지품들이 건물의 벽 사이에 남았다. 김화용은 이런 맥락에서 다른 작가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공유했고, 작가들은 김화용이 살던 집과 다른 주민들의 집에서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거의 대부분 강제 퇴거로 비워졌지만, 주민 몇 명이 여전히 남아 이주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곳에 이르렀다. 건물 철거를 위한 카운트다운이 진행되는 가운데 그곳에 도달한 것이다. 작가들은 자신을 둘러싼 건물들이 해체되는 가운데 주민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폐허 속에 살면서, 주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고, 이미 떠난 사람들의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고고학을 창안했다. 또 다른 공동체의 파괴로 생긴 잔해 위에 일시적인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었다.
이렇게 한 곳에 모이게 된 것은 덤으로 생긴 시간에 이뤄졌다. 건설 노동자들과 크레인이 건물을 파괴하는 동안. 작가 가운데 일부는 건물 옥상의 텐트에서, 즉 텅 빈 쉼터의 껍데기 위에 놓인 불안정한 쉼터에서 잠을 청했다.
그들은 명확한 안건이 없는 채 모였다.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주민들을 도울 방법을 찾으려 시도하고자 하는 바람으로. 함께 모였다는 일은 함께 하는 실험으로 이어졌다. 설치 작품, 가이드 투어, 유령 술집과 또 다른 행사들을 만들어냈다. 진시우, 이정민, 이주영, 육킹탄, 조은지 등 옥인 아파트 프로젝트에 참여한 10~20명의 작가 중에는 이런 실험적 공동체에 처음 참여하는 사람이 많았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 작가들은 함께하는 데서 비롯하는 자유를 발견했다. 그것은 “욕망과 현혹, 그리고 공포가 혼재하는 아수라계(阿修羅界)의 압축태”였다.6
미술 학교에선 스스로 예술가가 되라고 가르치지만, 다른 사람과 어떻게 함께 하는지는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다. 옥인 아파트 프로젝트는 일시적인 주거지인 동시에 어떻게 함께 존재하고 같이 작업할 지를 다루는 수평적 학교가 되었다. 존재하기와 함께 존재하기 사이, 이것에서 비롯하는 모든 것에 존재하는 끊임없는 긴장.
예술가라는 “부담감”은 더 이상 별개로 고립되지 않았다. 대신, 예술가로 존재한다는 것은 서로를 지지하는 집단적 수단이었다. 앞 세대 작가들은 이런 고립이 예술가라는 직업의 일부라고 생각했지만, 더 젊은 작가들은 예술가로 존재한다는 직업을 자신의 작품으로 여기는데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그들은 이러한 삶의 조건들이 어떻게 사회 전반에 침투했는지 생각해보고자 활동을 넓혔다. 왜 모든 게 그렇게나 어려웠을까? 꼭 이런 식으로 해야 했을까?
옥인 아파트 주민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법정 투쟁을 통해 흔치 않은 승리를 거두었다. 주민 모두가 보상금을 받게 된 것이다. 옥인 아파트를 떠나며, 작가들은 주택 단지의 폐허에서 서로를 살피도록 몰아 넣었던 신자유주의적 사회 변화에 스스로가 깊이 빠져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늘어나는 비정규직 업무, 줄어든 직업 안정성, 불안정한 주거, 신체가 필요로 하는 것과 그 욕망을 능가하는 자본의 가속화가 벌어지고 있었다. 옥인 아파트에서 벌어진 실험이 끝난 뒤에도, 그때의 경험이 계속 맴돌았다. 작가 가운데 여럿이 이렇게 함께 작업한 형식을 더 진척하고자 했다.
백남준 아트센터의 큐레이터인 클라우디아 페스타나(Claudia Pestana)가 기획한 전시에 김화용, 진시우, 이정민, 이주영, 육킹탄이 참여하면서 옥인 콜렉티브는 첫 번째 틀을 형성했다. 철거된 아파트 단지와 그곳에서 함께 펼쳐진 경험을 나타내고자 옥인 콜렉티브라는 이름을 지었다. 작업실 너머로 갔던 경험을 반영하는 선언문을 함께 썼다. 이 선언문은 자신과 서로에 대한 돌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도시에서 직접 작업하고자 하는 집단적 욕구를 언급했다. 함께 작성한 이 문서는 규율적 노동 메커니즘이 예술적, 정치적 활용으로 변모하는 시기를 강조했다. 전시가 이뤄진 미술관의 공간 전체에 걸쳐 선언문을 퍼포먼스로 수행하며 집단적으로 몸을 통해 발화했고, 선언문의 언어를 이러한 퍼포먼스와 연결했다.
전시가 끝난 뒤에는 이정민, 진시우, 김화용이 옥인 콜렉티브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옥인 콜렉티브는 하나의 회합으로, 독립적 신체로 구성된 하나의 차분한 집합체를 구성한다. 중요한 점은, 옥인 콜렉티브가 진행하는 집단 작업과 더불어 구성원의 개인 작업도 지속한다는 것이다. 진시우, 김화용, 이정민은 개인 활동과 주체성을 콜렉티브와 바꾸지 않는다. 콜렉티브 활동은 외려 개인 작업과 인접해 보금자리를 찾는다. 옥인 콜렉티브 멤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서로에 대한 지원은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냈다.
옥인 콜렉티브는 혼자가 아니었다. 옥인 콜렉티브와 비슷한 시기, 다른 콜렉티브들도 각기 다른 이유로 여러 장소에서 결성되기 시작했고, 대체로 도시 환경에 관여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2009년, 미술 학교를 갓 졸업한 이미연, 박재영, 이병재는 학교에서 강조하는 개별성 그리고 젊은 작가들이 미술계 안에서 원자 단위로 쪼개져 순환하는 방식을 벗어나려 했다. 그들은 “전시”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다른 방식으로 만들고자 했고, 혼자서 하기 힘든 일을 해내려 했다. 세 작가는 파트타임스위트(Part-time Suite)를 만들었고,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작은 규모의 지원금을 받았다. 제한된 수단과 더불어, 세 작가는 어느 건물 지하에서 한때 오락실로 쓰인 공간을 발견했다. 공간의 강력한 존재감은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세 사람이 공동의 이름으로 전시를 만들도록 이끌었다. 그런 뒤에는 프로젝트를 위해 도시 전역에서 찾아낸 공간을 활용했다.
2009년 결성된 리슨투더시티(Listen to the City)는 상업적 미술 현장이 제 관심사의 막다른 골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집단 지성을 방법론으로 수용했다. 여러 콜렉티브 가운데 가장 급진적일지도 모르는 리슨투더시티는 자신의 주변에서 진행 중인 도시 변화에 저항하는 연구 활동에 덧붙여 직접 행동과 행동주의를 결합했으며, 퇴거에 저항하는 주민들이 벌인 여러 투쟁을 지원하기도 했다. 내성천의 생태를 파괴하게 될 비싼 댐을 짓겠다는 정부의 제안에 반대하기 위해 내성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결국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여러 콜렉티브의 결성은 포스트 민중 미술에서 독특한 사건이었다. 재개발 투쟁에 대한 인식을 배경으로 콜렉티브 각자가 처한 서로 다른 조건이 합류하는 지점이 만들어졌고, 이것은 용산 참사를 통해 두드러졌다. 용산 참사는 철거 위기에 놓인 주민들이 임시변통으로 만든 무기로 경찰에 대항하다 주민 다섯 명과 경찰 한 명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이런 흐름은 2008년 가을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벌어진 전 지구적 금융 위기로 절정에 이르렀다. 사회에서 이뤄지는 희생처럼 그동안 불가피한 듯 보였던 경제 질서의 외연이 무너졌다. 경제 붕괴로 인한 충격은 노동 계급, 중산층, 문화 노동자 등 불안정한 위치에 놓인 이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혔다. 자본주의 질서와 그것이 기초로 삼은 통치가 뒤흔들린 것이다. 근간을 흔드는 집단적 저항 운동이 일어나면서—튀니지, 타흐리르 광장 (이집트 카이로), 주코티 공원 (뉴욕), 게지 공원 (터키 이스탄불), 해바라기 운동 (대만) 현장에서는 여태까지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이 더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
10년이 지났지만, 이런 사건들을 직접 겪은 많은 이들이 아직도 어제 벌어진 것처럼 느끼고 있다. 위기가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지속된다.
옥인 콜렉티브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왜 하는지에 관해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2018년 〈올해의 작가상〉에 참여하도록 초청받아 작업을 만들면서, 세 가지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전시라는 시간적 틈을 메우기로 했다. 옥인 콜렉티브는 출발점으로 돌아갔다. 옥인 아파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 시절에 만든, 전에 소개되지 않은 영상 작업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2017년, 옥인 콜렉티브는 목가적인 풍경과 더불어 여러 분쟁에 휩싸인 섬인 제주도에 초청받았고, 문화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는 노년의 시민들이 모여드는 카페를 발견했다. 그들은 나이든 주민들의 생각과 성찰을 통해 공간을 기록하는 과정을 취했다. 2013년 인천에서 레지던시에 참여하던 중에는 지역의 작가들과 친분을 맺었고 올해 초에는 지역의 작가 콜렉티브인 회전 예술과 함께 인천 투어를 진행하며 지역 작가들과 토론한 내용을 촬영했다. 자기 고백적으로 스스로 변두리라고 말하는 인천에서, 콜렉티브에 속한 개별 작가들이 왜 함께 작업하려는 욕구를 지니는지 살펴보았다. 어쩌면 이 작업은 옥인 콜렉티브 스스로 제 작업 과정을 돌아보고 계속해서 함께 작업할 동기가 필요한 이유를 명확히 살펴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옥인 콜렉티브의 방법론은 주거 단지에서 형성되었지만, 이들이 관여하는 장소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미술 공간과 기관으로 옮겨졌다. 시급함이 없는 장소들은 작업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조건을 제공했다. 여러 공동체와 함께 작업하는 방식은 지속되었으나, 그것을 진행하는 장소와 이를 통한 경험은 영상이나 설치, 출판물을 통해 더 표준적인 전시 공간으로 넓혀졌다. 이러한 전환은 더 큰 성찰과 논의를 위한 시간과 공간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간극이 존재했다. 옥인 아파트 프로젝트는 작가들이 모여 주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은 장소에서 작업하는 모임의 공간이었다. 이후 옥인 콜렉티브가 형성되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작업을 수행하는 공동체와 최종적으로 전시가 치러지는 제도적인 전시 사이에 지속적으로 공간적 차이가 있었다. 이런 간격을 직면한 옥인 콜렉티브는 서로 중첩될 수 있는 일시적 공동체, 이를테면 오랜 시간 지속된 옥인 인터넷 라디오처럼 제3의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애썼다. 간헐적으로 인터뷰와 퍼포먼스, 토론을 이어나갔고, 이것을 수년에 걸쳐 다양한 공간에서 진행하며 인터넷 라디오를 통해 중계했다. 따라서, 관객과 참여자들은 여러 공간에 걸쳐 흩어지는 동시에 일시적 공동체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옥인 아파트와 옥인 콜렉티브의 간격, 그리고 반란과 혁명의 간격은 어떻게 하나로 수렴할 수 있을까? 예술과 사회 전반에 퍼진 공회전 감각에 대한 의견을 묻자, 옥인 콜렉티브는 회전이라는 움직임은 여전히 에너지가 생성되고 있음을 뜻한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엔트로피적이라기 보다는 생성적인 에너지를 말하는 것이다.
집단적 회합으로써, 옥인 콜렉티브는 이런 식의 자치(self-governance)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협상하고 탐색해나간다. 사회에서 이탈하거나 사회에서 떨어져 자율적으로 행동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자신을 함께 구성하는 것이다. 옥인 콜렉티브의 작업에서는 대개 이런 집단적 자치가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10년이 넘게 함께 작업하고 결정을 내렸던 과정은 각자의 활동에서 개별적으로 성장을 거두는 것 뿐만 아니라 서로를 지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정치적 삶의 방식”을 요구한 아렌트를 따르자면, 이러한 일이 매 순간 벌어져야만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행동하는 방식은 변해야 한다. 윤리를 세우고 우리가 바로 지금 원하는 미래를 구체화하는, 우리가 일상에 관여하는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의 사례를 제공하는 정치란 단지 미래의 시간을 위한 훈련일 뿐 아니라 이것을 통해 벌어지는 모든 복잡한 사건, 불완전함, 투쟁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번 전시가 끝난 뒤에도 옥인 콜렉티브가 지속될 지는—마치 집회를 위해 매주 광화문 광장에 모인 이들이 다시 나타날 지 아닐지 모르는 불안정함과 마찬가지로—명확치 않지만, 해방을 이끄는 삶의 방식을 실행하는 지속적 과정은 해낼 수 있다. 앞서 명확히 살펴본 것처럼, 작은 집단도 자체적인 에너지를 형성해 그 주변에 뒤틀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협상의 과정을 통해 주변 사람들을 비틀고 모양을 잡는 것이다. 미술가 미엘레 라더만 우켈레스(Mierle Laderman Ukeles)는 “유지보수 미술 선언문(Maintenance Art Manifest)”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혁명이 일어난 뒤, 누가 월요일 아침에 쓰레기를 주울 것인가?” 혁명과 반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함께 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지금 하나씩 만들어 가는 대안적 기반이다.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택하고 행하는 말과 행동이, 우리가 바라는 미래로 몰래 진입하는 터널을 짓기 위한 벽돌이 되어 쓰일 수 있을 것인가?
번역: 박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