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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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CV
2015
‘드로잉이 서쪽에서 온 까닭은?’ 백 아트, LA, 미국
2013
‘Two Rooms’ 스페이스몸 미술관, 청주
2012
‘Twilight Zone’ 갤러리 로얄, 서울
2011
‘牛.雞.狗.畵’ 갤러리 소소, 파주 헤이리
2010
‘여기…새가 있느냐?’, 스페이스 공명, 서울
2009
‘눈물’, SPACE CAN, 서울
2008
‘김 을 드로잉- 눈물’, 가 갤러리, 서울
2007
‘잡화2’, 갤러리 눈 , 서울
2006
‘Drawing is Hammering’, 테이크 아웃 드로잉, 서울
2006
‘잡 화’ 갤러리 쌈지, 서울
2005
‘김을 painting and drawing’, 백해영 갤러리, 서울
<주요 단체전>
2016
‘Inside drawing’, 일우 아트스페이스, 서울
2015
‘여백의 뜰’, KSD Gallery, 서울
‘도시, 樂’, 성남아트센타, 성남
2013
‘Running machine’, 백남준 아트센터, 용인
2012
‘미술의 생기’, 대구예술발전소, 대구
‘진도소리’, 신세계 갤러리, 서울
‘홍성,답다-’, 이응로기념관, 홍성
‘책속의 미술관-꽃’, OCI 미술관, 서울
2011
‘Tell me, Tell me’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0
‘Drawing Plam’, 그문화, 서울
2009
‘Layered City’, 아트사이드, 베이징, 중국
‘대학로 1번지’, 아르코 미술관, 서울
‘안전제일’, 대안공간 충정각, 서울
‘오해라는 풍경’, 자하미술관, 서울
2008
‘樂-Joy’, Pax Arts Asia, Beijing, China
2007
‘뻥 화론연구’, 쌈지 스페이스, 서울
‘잉여의 시간’, 더 갤러리, 서울
Critic 1
나를 꺼내다 – 김을
임대근(국립현대미술관)
‘정체성’이라는 주제 하에 끈질기게 지속해 온 <자화상>과 <혈류도> 연작이 일단락되던 2002년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나는 김을을 처음 만났다. 톡톡 튀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 무대였던 공간을 생뚱맞게도 풍경화와 인물화로 가득 채워놓고 당당하던 작가의 모습은 상당히 신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신의 족보를 역으로 추적해 갔던 <‘혈류도> 연작은 그 이전까지 거울 너머 비친 자신에게 박혀있던 시선이 자신을 둘러싼 세계로까지 확장된 결과였다. 그러나, 그 소재가 고향 마을 어귀의 선산이든 흑백사진으로 간신히 남은 조상의 기억이든, 그의 궁극적인 관심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이 고집스러운 연작의 스토리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 빛 바랜 캔버스들이 마치 치열한 전투가 지나간 전장에서 발굴한 유품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의 화면에서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의 아픔이 배어 나왔다. 한편으로 그의 진정성에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실은 나 자신조차 힘이 들어 오랫동안 보지 못 하고 전시장을 나섰던 기억이 난다. 그 강렬하고 무거운 주제는 김을에게는 양날의 칼이었다. 그의 자아 탐구를 인도하는 등대인 동시에, 예술세계의 자유로운 확장을 막는 장애물이기도 했다. 주제는 마치 수도자를 내리치는 채찍처럼 그에게 좀처럼 일탈을 허용하지 않았다. 역사학자나 인류학자인 양 족보를 연구하고, 관공서의 문서철을 뒤지고, 선산의 조상님들의 묘소를 방문하고 집안 소유의 토지들을 측량했다. 당시 주변에서는 작가가 그 말리기 힘든 고집으로 이 주제를 더 밀고 나갈는지 혹은 어떤 새로운 주제를 발견하게 될지 자못 기대가 커지고 있었다.
그러나, 궁금증은 관객의 몫일 뿐이라는 듯, 작가는 이미 전혀 엉뚱한 방향의 드로잉 작업을 시작한 후였다. 2001년부터 6년간 3년에 1,000점의 드로잉을 그리고, 도합 2,000점의 드로잉을 완성한다는 장기 프로젝트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본 드로잉은 주제가 무게에 진력이 나기 시작한 작가에게 새로운 세계로의 문을 열어주었다. 끊임없는 상념들을 즉흥적으로 옮겨놓다 보면 머리가 비워지고 다시 새로운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경험이었다. 주제가 미처 사태를 통제하기도 전에 쏟아져 나온 생각들이었고, 무언가 다듬을 틈도 없이 끝나버렸다. 그린다(paint)기 보다는 머리 속에 있는 것들을 그저 꺼낸다(draw)에 더 가까운 작업들이었다.
2003년 첫 3년간의 1차 프로젝트가 선보였다. 거의 천 점에 이르는 작품의 양도 양이었지만, 각 드로잉들이 담고 있는 아이디어들은 마치 둑이 무너져 내리듯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고 또 신선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필자는 거의 두 시간에 걸쳐 그 드로잉 북 전체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서 보고 있었다. 카페 컵 받침에 새겨진 로고, 화장실의 낙서, 중고시장에서 발견한 낡은 인형, 심지어 낡은 수학책에서 본 도형까지, 그의 눈과 손에 포착된 모든 것들은 드로잉의 소재였다. 이 모든 잡다한 소재들은 ‘김을’이라는 거름망을 통과하는 즉시 드로잉으로 전환되었고 그는 이것을 ‘잡화’라고 불렀다.
작업 성격의 즉흥성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엄청난 양의 드로잉들은 일견해서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없다. 즉, ‘혈류도’에 익숙했던 주변의 기대가 무색하게도, 그 프로젝트는 아무런 주제가 없었다. 가끔 예외적으로 반복되는 소재를 제외하고는 그저 하나의 생각 너머에 또 다른 생각이 자리잡고서, 각자 저마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왜 주제를 버렸냐는 질문에 작가는 “너무 무거워서 스스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고백했다. 드로잉들이 쌓여가면서 중압감은 서서히 사라졌고, 그 가벼워진 손놀림에 또 다른 드로잉들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또 십여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이제는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서도 ‘오늘 뭘 그려야지’라는 생각 자체를 안 한다고 한다. 조바심 내지 않고 그저 물 흐르는 듯 오늘 하루도 살아가면 그 뿐… 어쩌면 편집증적으로 주제에 집착해서 자신을 극한까지 몰아가 본 작가이기에 가능한 깨달음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이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주제를 언급하자면, 마치 ‘삼천배’를 결심한 불교신자처럼 결연히 스스로에게 부과한 ‘3년에 천 개의 드로잉’이라는 과제 그 자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그 드로잉 연작들이 더욱 놀라운 부분은 그 끊임없는 실험과 다양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전혀 혼란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관된 주제가 없다는 것은 나중에 전시를 되새겨볼 때의 분석일 뿐 그 각각의 작업들은 철저하게 하나의 주제로 묶여있었다. 드로잉, 회화, 오브제. 설치. 소재와 방법이 제 아무리 다양할지라도 그의 주제는 언제나 변함없이 ‘김을’ 자신이다. 마치 각양각색의 풍선 뭉치가 가는 실로 그 중심의 장사꾼에게 연결되어 있듯이, 언뜻 눈에 띄지 않으나 작가의 존재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나를 중심으로 짜여진 세계의 전모를 한 번 드러내 보고자 한 것”이라고 말하는 김을의 작업들은 어쩌면 보이지 않지만 그 중심에 감지되는 작가의 거대한 자화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12년작 <자화상>은 이런 작가의 세계를 잘 도해하고 있다. 화면 중앙에는 좌우명이기도 한 ‘정직(正直)’이라 쓰여진 기저귀를 차고, 하늘색 선글라스를 쓴 작가가 양 팔을 펼친 채 독특한 형태의 받침대 위에 서 있다. 양 손 위에는 푸른 색과 초록 색 눈물방울이 놓여 있고, 심장에는 튜브가 박혀서 묘하게 생긴 실험용기를 지나 미완성의 캔버스에 붉은 피를 뿌리고 있다. 특히, 머리를 거치지 않고 심장에서 곧바로 피를 토하듯 그려진다는 점에서 이는 그의 드로잉 작업의 특성을 상징하고 있다. 잘린 머리 위로 뻗어나가 있는 가지에 걸린 붉은색 띠에 “MY BLOOD, TEARS, SEMEN…”이라고 적혀있는 것은 이 체액들이 작가의 생리적, 실존적 조건이자 매일매일 배출하듯 작업하는 작가의 작업성격을 암시한다.
좀 더 거리를 두고 보면, 그의 정체성을 보다 객관적으로 증명하는(혹은 그렇게 보이는) 사실들로 작가는 둘러싸여 있다. 각각 출생연도인 ‘1954’와 ‘20□□’라고 적힌 화면 좌우의 깃발은 이 드로잉이 그의 생애 전반을 의미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작가의 뒤편에는 여러 점의 백색 캔버스가 놓여있는데, 첫 캔버스가 기대선 나무 위에는 파랑새가 마지막 캔버스에는 녹색 뱀이 그려져 있다. 양쪽 끝에 모두 ‘베니타스’를 상징하는 해골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죽음’에 관한 작가의 오랜 집착과 관련이 있다. 먼 배경의 얕은 능선 위에는 A와 T라는 알파벳이 간판처럼 서 있고(이는 시간의 경과와 자신의 A형 혈액형을 동시에 상징한다.) 하늘에는 여행과 모험을 상징하는 여객기와 군용헬기들이 떠 다닌다. 이 드로잉에 등장하는 소재들 중 상당수는 다른 드로잉과 오브제 작업들에서 다양한 형태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회화와 드로잉의 차이가 뭐냐는 나의 질문에 대해 자신에게 있어 드로잉은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정치란 무슨 의미인가. 마치 성장(盛粧)한 여인네처럼 외관을 꾸며 타인에게 영향을 주려는 욕망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드로잉은 막 깨어나 눈곱도 떼지 못한 맨 얼굴의 여인, 타인을 미처 의식하기 전의 상태이다. “드로잉은 그림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그림에 대한 어떤 내적인 태도이다”라고 말하는 김을에게 있어 드로잉은 재료나 기법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마치 회화 같지만 사실은 드로잉인 작품도 있느냐는 질문에도 즉답이 돌아온다. 작가가 어떤 작업을 처음 시도할 때, 즉 백지상태로 실험에 나설 때의 작업은 아무리 회화나 조각처럼 보여도 본질적으로 드로잉이라는 것이 김을의 설명이다. 물론 자신은 그 백지상태의 위험한 자유를 최대한 유지하고 싶다는 의미일 것이다. “드로잉에는 작가의 진실이 담겨있다…. 그것은 강하고 아름다우며 진실하고 자유롭다.” 그런 맥락이라면… 그의 오브제 작업도, 페인팅도, 설치작업도, 심지어 다시 들추어 본 ‘혈류도’조차 너무나 정확히 드로잉이다. 그 피가 흐르고 흘러 마침내 “뼈가루로 빚은 눈물 한 방울”이 자신의 마지막 드로잉이 될 것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드로잉은 김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꺼내어 세상에 흩뿌리는 수단일 뿐이다.
Critic 2
김을의 드로잉 - 자라는 집, 세상의 모든 풍경
고충환 (미술비평)
시인들은 항상 수첩을 가지고 다닌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대세이지만 그래도 어떤 시인들은 여전히 수첩을 고집한다. 볼펜으로 일일이 꼭꼭 눌러 쓰는 것에서 오는 몸이 주는 느낌에 길들여져서일 것이다. 스마트폰이건 수첩이건 번쩍하는 발상들, 부유하는 단어들, 흐르는 인상들,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느낌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서다. 그것들은 부지불식간에 낚인 것들인 만큼, 낚인 것들 답게 어떠한 논리적 개연성도 인과성도 없다. 대개는 그렇게 잠시잠간 임시 저장고에 기입돼 있다가 본격적인 시를 위해 재 호출되고 재구성되기 마련이지만, 더러는 그 자체 그대로, 우연하고 무분별한 파편인 채로 시가 되기도 한다.
시와 소설은 다르다. 소설은 서사가 중요하고 기승전결이 결정적이다. 그 와중에서 기와 승과 전과 결이 틀어지거나 자리바꿈을 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구획된 부분(틀) 자체가 해체되거나 와해되는 일은 좀체 일어나지가 않는다. 이에 반해 시는 소설보다 행간이 넓다. 행과 행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가 넓다. 시에서의 의미는 행 자체, 단어 자체, 문장 자체가 아닌 그 사이에서 온다. 그 사이가 좁으면 빤한 의미(클리세)에 가까워지고, 그 사이가 넓으면 의미는 낯설어지고 생경해지고 지리멸렬해진다. 바로 이런 낯설고 생경하고 지리멸렬한 의미로 빤한 의미를 대체하고 구제하는 것에 시의 의미가 있고 시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드로잉은 그 생긴 꼴이 꼭 시 같다. 번쩍하는 발상들, 부유하는 단어들, 흐르는 인상들,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느낌들, 부지불식간에 낚인 것들, 어떠한 논리적 개연성도 인과성도 없는 것들, 우연하고 무분별한 것들, 파편인 채로 존재하는 것들, 파편 속에 그 자체 자족적인 전체를 품고 있는 것들, 낯설고 생경하고 지리멸렬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대개 잠재적인 그림(가능성으로서의 그림)의 형태로 잠시잠간 기입돼 있다가 본격적인 회화로 등록되기 위해 재 호출되고 재구성되기 마련이지만, 때로 그 자체로 그림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시와 소설의 관계는 그대로 드로잉과 회화의 관계에 해당한다. 피상적으로 보자면 드로잉은 가능태로 그리고 회화는 실현태(혹은 현실태)로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드로잉은 잠재적으로 회화가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의 형태와 경우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드로잉은 어쩜 회화의 바깥이며 그림의 잉여일지도 모르고, 그 자체로 회화를 이루고 그림이 되는 지경이며 차원일지도 모른다. 제도화된 그림과 미처 제도화되지 않은 그림, 이미 실현된 그림과 미처 실현되지 않은 그림과의 차이로 봐도 되겠다. 여기에 드로잉의 급진성(바깥의 자의식)이 있고 정치적인 성격(반제도적인 실천논리)이 있다. 기본적으로 드로잉은 개인형식이며 개별양식이다. 정해진 형식도 따를 만한 양식도 없다. 전제가 없다. 저마다 형식이고 양식이다. 드로잉의 급진성과 정치적인 성격은 바로 이런 개인형식이며 개별양식에서도 온다.
드로잉 이전
김을이 본격적으로 드로잉에 진력한 것은 드로잉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첫 번째 전시(2003. 갤러리 도올, 갤러리 피쉬)부터이다. 전시를 위한 작업 기간을 감안하면 최소한 2003년 이전으로 소급될 것이다. 작가 개인적으로 회화를 하다가 드로잉으로 바꾸게 된 계기에 대해서, 그림이 지닌 정통성에 대한 회의를 떨치고, 동시대적 감성에 대한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서 그림이 지닌 정통성에 대한 회의가 주목된다. 그림의 됨됨이에 대한 정해진(예술제도에 의해 정통성을 부여 받은) 형식과 정의가 따로 있다는 결정적인 태도를 의심했을 것이다. 그림의 됨됨이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형식이고 정의일 수 있다는 비결정적인 입장(행위 자체, 과정 자체에 방점이 찍히는 입장)에 눈 떴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1998년경 작업실 화제로 그동안 그린 그림 대부분이 소실된다. 작가가 드로잉으로 전환하게 된 것은 당연히 그림의 됨됨이(예술의 존재방식)에 대한 작가 자신의 자각이 결정적인 이유가 되겠지만, 화제 역시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작가 자신도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했지만, 여하튼 거듭나게 해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드로잉으로 전환하기 전 작가의 그림을 보면 대략 자화상 시리즈(1994-1997)와 혈류도 연작(1997-2002)으로 대별된다. 이 두 연작은 따로 구별되면서 하나로 통하는데, 자화상이 자신의 핏줄을 확인하는 것으로 확대 재생산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사실을 말하자면 자화상이 자화상 자체로부터 혈류도로 확장되고, 그리고 이후 파편화된 주체며 다중주체를 반영하는 형태의 드로잉을 예비하기조차 하는 전제로 볼 수도 있겠다. 작가의 작업은 말하자면 주체라는 기표에 대한 지난한 그리고 때론 발랄한 암중모색의 과정이라고 볼 수가 있겠고, 그 핵심에 혈류도가 놓인다.
모든 존재는 땅에서 태어나고 다시 땅으로 되돌아간다. 그래서 땅을 두고 생명의 근원이라고 했다. 땅은 한 순간 생명을 얻어 자신에게 기대 살던 숱한 인연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 인연들은 재차 먼지가 되고 흙이 되고 바위가 되고 나무가 되고 강이 되고 산이 된다. 그렇게 땅속에는 존재의 피가 흐른다. 그러므로 땅의 역사는 곧 피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김을은 전라남도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 265번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래서 가족사를 소재로 그린 자신의 그림을 혈류도라 부르고 혈시도라 부른다. 그리고 옥하리 265번지라고 명명한다. 이 그림들이 특이한 것은 가족과 자연이 어떠한 경계도 없이 서로 넘나들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넓게 펼쳐진 선산을 배경으로 인물초상들이 땅으로부터 솟아나고, 종갓집을 지켜온 오랜 감나무 가지가지마다에는 감 대신 인물초상들이 가득 열렸다. 마치 선산 자체, 감나무 자체로부터 인물들이 불거지고 맺힌 것 같다. 가족이 곧 땅이며, 가족의 역사(족보)는 곧 땅의 역사(선산)이며, 동시에 피의 역사(혈류)이기도 한 것임을 예시해준다. 그렇게 6대조에 이르는 조상들로부터 현재의 자손들에 이르는 초상들이 낱낱이 현재 위로 호출된다. 선산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소나무에서 작가가 겪곤 했다던 묘한 감정이란 이렇듯 시간을 매개로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관문이며 길목에서 맞닥트린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편으로 임야도와 지적도를 배경의 일부로 그리고 풍경의 일종으로 끌어들인 것에서는 자연을 사유화하고 경계를 설정하는 사회적 행위가 결부된 것이란 점에서 풍경을 읽는 전혀 다른 독해 이를테면 풍경의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독해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혹자(강홍구)는 이를 두고 진경산수로 읽기도 하는데, 자연에 대한 재산권 행사가 공공연한 현실에서 산수며 풍경은 재정의 되어져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드로잉의 전개, 평상화와 잡화
그리고 이후 작가는 드로잉으로 전환하게 되고, 그 형식실험은 현재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도 드로잉은 작가의 항상적인 현재진행형의 형식으로 자리하지 않을까 싶다. 최소한 드로잉을 계기로 작가의 표현영역이 다변화될 것이고, 그렇게 다변화된 형식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것은 드로잉을 확장하고 회화를 재정의 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작가는 한 3년 정도 드로잉에 전념하기로 작심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작심을 지키지 못했다. 그간에 드로잉의 재미에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게 되었고, 드로잉이 작가의 회화적 생리를 바꿔놓았을 것이다.
그렇게 드로잉의 이름으로 제작된 작품 양이 엄청나지만, 그 대략을 보면 <원> 시리즈(2004), <CCTV> 시리즈(2004), <갑신잡언> 시리즈(2004), <아상블라주 박스> 시리즈(2005~2015), <눈물> 시리즈(2006~2010), <작업실> 시리즈(2009-2013), <비식별역 작업실> 시리즈(2011~2013), <비식별역 드로잉> 시리즈(2011~2015) 정도로 아우러질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중 <원> 시리즈를 보면, 종이컵 바닥을 그대로 종이에다 대고 그린 원 속에 이러저런 이미지를 그려 넣은 것들이다. 그림을 그려 넣은 것도 있고, 문자를 써넣은 것도 있고, 사진과 영수증 같은 평면 오브제를 붙여 넣은 것들이다. 원으로 대변되는 기하학의 쓰임새를 다용도화한 것이고,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틀화된 형식으로부터 기하학의 존재방식을 해방시킨 것이고, 모든 전형을 문제시한 것이다. <CCTV> 시리즈는 당연히 사회학적 의미를 갖는데, 있을 수 있는 범죄(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범죄) 가능성을 빌미로 무고한 익명의 주체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내모는 경찰국가의 전형적인 제도적 장치(디지털 판옵티콘)를 소재로 한 것이다. 미셀 푸코의 권력이론을 심화시킨 아감벤이라면 주권 권력 앞에 노출된 잠재적인 호모 사케르 곧 벌거벗은 생명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상블라주> 박스 시리즈와 <작업실> 시리즈는 집짓기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편인 작가의 성향과 무관하지가 않다. 작가에게 집짓기는 단순한 집짓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드로잉이 입체로 확장되고 현실로 구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일련의 시리즈들은 그대로 집의 모형들이며 삶의 축소판들이다. 눈물 시리즈 역시 단순한 감정의 소산이라기보다는 삶 자체며 삶 전체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 자체 드로잉의 한 변종에 해당한다. 드로잉과 삶을 동일시하는 작가이기에 드로잉의 결정체이면서 동시에 삶의 응결된 형태로 보면 되겠다. 그럼에도 여하튼 삶을 눈물로 간주하는 작가의 태도는 예사롭지가 않은데, 여기서 눈물은 다르게는 연민으로 바꿔 읽을 수가 있을 것이다(예술의 존재이유가 여럿 있지만, 개인적으로 존재에 대한 연민이 예술의 원동력이며 계기라고 생각한다). 1
이 일련의 작업들에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비식별역> 시리즈인데, 원래 Twilight Zone을 번역한 것이다. 사전에 보면 빛이 도달하는 바다 속의 가장 깊은 층, 중간 지대(상태), 경계 불분명 지역(비식별역)2, 여명의, 박명의, 황혼의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로소 작가의 작업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어디를 향하는지를 알겠다. 빛이 도달하는 바다 속의 가장 깊은 층이란 바로 심연이며 침묵이고 죽음이다. 존재가 미처 언어로 명명되기 이전의 원초적인 상태, 비결정적인 상태, 가역적이고 가변적인 상태, 미증유의 상태며 오리무중의 상태, 미처 의미화를 얻지 못한 선의미들이 침묵 속에서 소란스러운 상태, 경계가 지워진 상태, 사이, 구석, 변방, 잉여 정도를 의미할 것이다. 작가는 바로 그 불분명한 상태 위에 자신의 작업을 정초하고 싶고, 자신의 존재를 재정립하고 싶다. 그 좌표에 대해선 무엇보다도 작가 자신의 증언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드로잉 작업을 통해 새로운 좌표를 가진 나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나와 세계와 그림 간에 얽힌 보다 정교한 지도를 작성했다고 볼 수가 있다. 수많은 좌표들이 얽힌 나의 세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들 모두가 의미 있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 속에서 특별한 시각으로 주제를 잡아내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였다. 전체를 보고 그들의 관계항을 주목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3…일정하게 정돈된 것보다 이것저것 섞인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이지 않을까. 일정한 체계도 진실이지만 뒤섞임이 오히려 더 본질적인 진실이라고 봅니다. 인생이나 자연이나 대책 없이 뒤섞임 위에 존립하고 있지 않나요?4
비식별역은 말하자면 작가의 드로잉이, 작업이, 존재 자체며 전체가 정초되는 지점이고 지향되는 지점이다. 그 지점은 정교한 지도로 작성된 것이지만, 사실은 작가가 그린 인식지도이며 개별양식일 따름이다. 그 인식지도를 답사하기 위해선 작가의 개별양식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 그 개별양식에 주제는 없다. 최소한 의미가 없다. 주제가 뭔가. 지리멸렬한 것들, 파편적인 것들, 무분별한 채로 자족적인 것들을 채집하고 분류하고 유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 본성을 말살하는 것이다. 주제 밖에서 자족적인 것들을 주제에 예속시켜 한정하고 왜곡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주제화의 기획은 개념화의 프로젝트와 통한다. 개념이 그렇다. 주제를 개념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개념과 사물대상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개념과 사물대상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주제를 가정하고 설정해야 한다면, 이때의 주제는(그리고 주제화의 기획도) 사물대상을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와 사물대상이 만나지는 사건이어야 한다. 어떤 사물대상이 어떤 주제와 만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어떤 의미를 내어주는지를 가만히 두고 보는 행위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존재의 대책 없는 뒤섞임을 인정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리고 작가는 바로 이런 존재의 대책 없는 뒤섞임에 근거하여 자신의 드로잉을 잡화라고 정의할 수가 있었다.
나의 드로잉은 잡화다. 의도하지 않은 특별한 주제가 나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사소한 것들이 무작위로 섞여 있다. 나의 정신도, 인생도, 세계도, 심지어는 우주도 잡이니 잡화가 차라리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내용도 형식도 뒤섞여 있지만 사시현상에 주의만 한다면 가히 볼만한 것이 있을 것이다.5
흔히 잡스럽다는 말은 이렇다 할 만 한 것이 없는 상태, 별반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상태, 도대체 평범한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잡다하다는 말은 이런 평범한 것들이 무분별하게 뒤섞여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작가는 정신도, 인생도, 세계도, 그리고 우주마저 잡스럽다고 보고 잡다하다고 본다. 이처럼 잡스럽고 잡다한 것이 평범한 것을 의미한다면 도대체 평범하지 않은 것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듯 잡스럽고 잡다한 것들을 그린 자신의 드로잉을 잡화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여기서 잡화는 평상화와 그 의미가 같다. 평상시의 상태며 평범한 존재방식을 그리고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잡화상이 있다. 잡다한 물건들을 파는 가게다. 다르게는 만물상이기도 하다. 여기서 만물은 수사적 표현으로 보아야 하고, 따라서 세상의 온갖 물건이며 모든 물건을 파는 가게다. 지금의 백화점의 원형쯤으로 봐도 될 잡화상은 자기만의 분류며 체계를 가지고 있다. 분류며 체계방법에서 저마다 저만의 독창적인 창의력을 발휘하는데, 그 극단적인 경우를 고서점에서 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책들이 무분별하게 진열돼 도무지 오리무중인 와중에서도 책방주인은 고객이 원하는 책을 희한하게도 금방 찾아낸다. 미셀 푸코는 지식이 권력의 기반이라 했고, 분류와 체계가 지식의 근간이라고 했다. 통상적인(그리고 상식적인) 분류와 체계는 그 자체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정투쟁의 결과물이다. 이렇게 시스템에 종사하는 분류, 제도적 장치로서의 체계와는 상관없이 개별주체들은 이미 저마다 저만의 분류와 체계를 삶의 현장 속에 적용하고 있었고, 여기에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보다 적극적으론 시스템의 일부인 분류와 체계를 전유해 저마다 저만의 개별양식 속에 산포하고 대체하는 것(그게 예술이다), 그런 능동적인 실천논리로도 볼 수가 있겠다. 좀 거창하게는 세계를 재편하고 재구조화하는 일에 부지불식간에 복무하고 있었다고도 할 수가 있겠다.
김을의 작업이 그렇고 드로잉이 그렇다. 도대체 오리무중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희한하게 저만의 질서체계를 가지고 있다. 작가가 제안하는 분류와 체계, 배열과 배치, 관계와 관계항의 문법이 때로 불편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자기만의 문법을 찾아가는 중인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여기서 논리를 좀 더 비약시켜보자면 저만의 문법을 찾으면서 지우는, 지우면서 찾는, 정립하면서 탈정립하는, 탈정립하면서 정립하는 들뢰즈 식의 리좀이 갖는 생성논리와도 무관하지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잡화상을 기웃거리고 고서점을 배회하고 벼룩시장을 어슬렁거린다. 그건 마치 타인의 삶의 흔적을 엿보는 것(관음증)과 같고, 죽은 사물들에서 원래 자신의 일부에 속해 있었을 무엇인가를 불현듯 발견하는 것(발견오브제)과 같고, 예사롭지 않은 물건들을 매개로 죽은 유령들과 대화하는 것(존재의 원형과 만나지는 경험)과 같다.
그렇게 어쩜 모든 현세적인 삶 자체며 전체가 이미 일종의 잡화상이고 고서점이고 벼룩시장일지도 모른다. 상품이 잠재적인 골동품으로 전환되듯 삶은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이미 죽음이다. 상품이 용도 폐기되면 골동품으로 전환될 수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품에다가 자기를 불어넣고 자기를 이입하고 자기를 투사한다. 바로 골동품으로 전환된 상품이 예사롭지 않아지고, 낯설어지고, 그로테스크해지는 원인이다. 그걸 말하자면 페티시 곧 물신이라고 한다. 이런 물신이 아니라면 사람들이 골동에 매료되는 다른 이유는 없다. 자본주의가 상품은 물론이거니와 골동을 재상품화하는(죽은 유령을 소환하는) 다른 이유는 없다. 게오르그 짐멜, 보들레르, 그리고 발터 벤야민을 사로잡았던(매료되면서 비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작가가 저만의 문법으로 채집하고 분류한, 그리고 재구성한, 해체하고 짜 맞춘, 본을 뜨고 덧붙인 세상의 모든 곳에서 호출된 사물들에는 낯설고 기묘한, 예사롭지 않은, 그로테스크한 물신의 아우라가 여실하다. 그건 흡사 브리콜라주 같다. 그 어원에 해당하는 브리콜레르는 허접한 것들, 이질적인 것들을 그러모아 그럴듯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럴듯한? 의심스러워하면서 흘낏 보는? 사기와 진정이 등을 맞대고 있는? 상식과 의외가 마주하고 있는? 바로 경계가 불분명한 비식별역에다 자기를 정립하는 드로잉과 그 생리가 통한다.
드로잉의 확장, 집짓기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직접 집 한 채를 짓는다. 일층은 작업실이고 이층은 살림집으로 이루어진, 작가가 현재 실제로 살고 있는 집 그대로를 짓는다. 웬 집이냐고 하겠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현대미술과 관련해서 집을 짓는 작가들이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각종 건축모형을 짓는 작가들은 이제 더 이상 낯선 경우가 아니다. 무슨 살아있는 유기체 마냥 계속해서 자라는 현재진행형의 집을 짓는 작가도 있고, 도서관을 통째로 전시장에 옮겨 놓은 작가도 있다. 작가 역시 집을 짓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래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사실을 말하자면 작가는 오랫동안 목수였고, 집을 지어 밥벌이를 했다. 생업을 위해 집을 지었고 작업을 위해 집을 지었다. 현실에서도 집을 지었고 가상에서도 집을 지었다. 삶이 곧 집을 짓는 것이고 집 짓는 것이 그대로 작업이었다. 작가의 작업이 다 그렇지만, 앞서 본 작업 중 특히 <작업실> 시리즈와 <아상블라주 상자> 시리즈는 이런 집짓기와의 연관성이 뚜렷한 편이다. 그렇다면 작가에게 집짓기란 무슨 의미가 있으며, 또한 드로잉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작가에게는) 집 자체도 일종의 작업이다. 그가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이기 때문이다. 이 집 말고도 집을 몇 채 더 지어 먹고 살았으므로 삶 자체가 작업이자 드로잉이라고 해야 할까…그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드로잉화 한다. 그가 사는 집부터 마당의 나무(인형들이 주렁주렁 매달린)와 재배하는 호박(흰 플라스틱 의자 위에 올려놓은)에 이르기까지. 그가 집을 짓거나 건축을 하는 과정에 관한 것은 집 마당에 지은 작은 창고 드로잉에서 볼 수 있다. 그 드로잉에는 창고의 부지를 선정하고, 기초공사를 하고, 완성해가는 과정이 모조리 들어있다. 창고와 그에 대한 기록 모두 드로잉인 셈이다…그의 집은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 집이 곧 작품이다. 그는 거기서 산다. 사는 것과 그리고 만드는 것이 별 구분이 되지 않는 삶이다…그는 자신이 사는 집을 짓기 위해 드로잉하고, 실제로 집을 짓고, 그것을 다시 입체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이때 그의 드로잉은 집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집을 짓는 행위에 가깝다.
그렇게 작가에게 집짓기는 곧 삶이고 작업이고 드로잉이다. 구상하고 그리고 만드는 것이 조형의 기본임을 생각하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드로잉에는 기본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의식의 영도지점에 비유할 수도 있다). 하이데거는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존재는 언어로 표현되어야 하고 표현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조형도 언어고 드로잉도 언어고 집짓기도 언어다. 작가는 저만의 언어로 존재를 짓고(표현하고) 삶을 짓는다(표현한다). 좀 비약해 보자면, 적어도 작가에게 관한한 밥 먹고 숨 쉬고 생각하는 것 모두가 드로잉이다. 밥 먹고 숨 쉬고 생각하는 것이 존재를 짓고 삶을 짓는데 필수인 것과 같다. 그리고 마침내 존재를 완성하는 죽음마저도. 다시 말해 작가에게 드로잉은 집짓기며 삶 짓기 그리고 존재 짓기(차라리 살기)에 해당한다. 다시 하이데거를 인용하자면 존재의 존재다움을 탐색하고 실현하고 표현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 있는 모두가 드로잉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집짓기는 그 드로잉의 우연하고 무분별한 총체, 경계가 불분명한 비식별역에 건축된(예술은 언제나 경계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경계에 대한 일이다) 자족적이고 불안정한 총체, 파편적이고 산발적인 총체, 미완의, 현재진행형의, 열린, 항상적으로 이행 중에 있는(박이소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사 중에 있는) 불구의 총체다(예술은 불구를 운명처럼 떠안고 있다).
작가는 지금 새로운 장르를 열려고 하고 있다. 작업(그리고 어쩌면 삶)의 모든 과정이 드로잉인, 탈장르이면서 복합장르인, 아무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기도 한. 이를테면 가게, 집 모형, 실제로 살고 있는 집, 작업실, 창고건물, 하얀색 덩어리, 사물이 사람으로 그리고 사람이 사물로 자유자재로 변신되는 사물인격체, 휴대용 풍경, 선반, 책장, 고풍스런 풍경으로 꾸민 장식장, 조각난 나무판으로 이어붙인 테이블, 크고 작은 틀과 상자들, 마네킹, 더미, 바비 인형, 구체관절 인형, 지우개로 만든 도장, 상품, 발견된 오브제, 잡지, 증명사진, 기호, 그림, 문자, 벼룩시장, 고서점, 잡화상, 만물상, 박제된 새, 새 인간, 신화와 주술, 우측 상단에 녹색점이 있는 그림, 개지랄을 떨고 있는 그림, 그림 너머에 있는 그림, 유령, 난제, 기묘한 곳, 존재론적인 공간, 아찔한 곳, 작은 우주, 큰 자화상, 좌표의 정중앙에 정직하게 서 있는 사람, 소, 닭, 개, 삶과 죽음 사이, 의식과 무의식 사이, 지워진 경계, 해골, 조잡한 장난감들, 정체 모를 잡동사니들, 깡통, 이질적인 서사가 상호 교차되는 텍스트, 서로 다른 맥락에 속한 사물들, 버려진 것들, 상품적 가치를 상실한 것들, 망각된 것들, 눈물방울, 빛나는 눈물, 아름다운 눈물, 빨간 눈물, 칠정, 지구본, 망치, 수레, 자동차, 나무, 혈류도, 가계도, 임야도, 지적도, 일련번호가 매겨진 파일, 사적 형식, 사사로운 일기, 일간지의 주식차트, 눈금종이, 지폐그림, 붕어빵, 키치, 골동품, CCTV, 원주율, 그리고 수집과 채집과 분류에 대한 취향과 인문학적 단상들을 아우르는, 그것들이 흡사 존재 자체가 그런 것처럼 무분별하게 뒤섞이는.
그걸 그림이라고 불러도 좋고, 회화라고 불러도 좋고, 드로잉이라고 불러도 좋고, 이미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림이 아니라고, 회화가 아니라고, 드로잉이 아니라고, 이미지가 아니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