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승

정희승
정희승은 대상을 이미지화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가능성과 한계들을 탐구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그는 사물과 신체, 공간 등을 다루면서 매체의 즉물성을 극대화하는 한편, 텍스트를 활용하여 이미지와 언어라는 불완전한 소통 도구들 사이의 관계를 조명하기도 한다. 고은사진미술관(2017), 아트선재센터(2013)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대구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Interview

CV

정희승 (1974. 한국)

교육
2007
런던 컬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 사진학과 석사 졸업, 런던, 영국

2005
런던 컬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 사진학과 우등학사 졸업, 런던, 영국

1996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학사 졸업, 서울, 한국

개인전
2020
《Copier》, 신도문화공간, 서울

2017
《중간보고서-스탄차》, 고은사진미술관, 부산

2016
《ROSE IS A ROSE IS A ROSE》, 페리지갤러리, 서울

2014
《정희승》, PKM갤러리, 서울
《부적절한 은유들》, 하다 컨템포러리, 런던

2013
《부적절한 은유들》, 아트선재센터, 서울

2012
《Still-Life》, 두산갤러리, 뉴욕

2011
《Unphotographable》, 두산갤러리, 서울

2008
《Persona》, 갤러리 와, 서울

주요 단체전
2019
《Live Forever》, 하이트컬렉션, 서울
《나로서 보고 있는 것》, 챕터 투, 서울
《Controlled Perspectives》, 벨파스트 포토페스티벌, 벨파스트

2018
《예술가의 책장》, 고양아람누리미술관, 고양
《상상된 경계들》, 제12회 광주비엔날레, 광주
《대구사진비엔날레》,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
《자연스럽게》,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수원

2017
《송은 수장고: Not your ordinary art storage》, 송은문화재단 수장고, 서울
《매체 연구: 긴장과 이완》, 대구미술관, 서울
《You Are a Space》, 누크갤러리, 서울

2016
《복행술》, 케이크갤러리, 서울
《돌我봄: 송은문화재단 유상덕 이사장의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 수상 기념 특별전》, 송은 아트스페이스, 서울
《사진: 다섯 개의 방》, 두산갤러리, 서울
《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헤렌 프로젝트》, PKM갤러리, 서울
《호기심 상자 속의 원숭이》, 신세계갤러리, 서울

2015
《Dialogues of Space》, 주영한국문화원, 런던
《거짓말의 거짓말》, 토탈미술관, 서울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하이트컬렉션, 서울

2014
《팔로우-미》,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
《도큐멘타리: 달 뒷면의 세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난지전시실, 서울
《청춘예찬: 한-중 청년작가전》,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난지아트쇼 III – Band of Feeling》,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난지전시실, 서울
《아트스펙트럼 2014》, 리움 삼성미술관, 서울
《사진과 미디어: 새벽 4시》,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3
《Heeseung Chung, Richard Kolker, Jochen Klein》, 프리츠 운트 힐데가르트 루오프 슈티프퉁, 뉴팅겐
《정희승, 제백 이인전》, 하다 컨템포러리, 런던

2011
《송은미술대상전》, 송은 아트스페이스, 서울

2010
《실패의 승리》, 사우스 힐 파크, 브랙넬
《I Love Your Profile》, 에스파시오 메노수노, 마드리드
《싱가폴 국제사진 페스티발》, 싱가폴 내셔널뮤지움, 싱가폴
《분리시선 – 떨어져보기》, 관훈갤러리, 서울
《I love your profile》, 카디츠 유니버시티, 카디츠
《Maden Pictures》, 아라리오갤러리, 천안
《실패의 승리》, 노암갤러리, 서울

2009
《The Photography as Contemporary Art》, 두산갤러리, 서울

2008
《2008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 – 인간풍경》, 구 서울역사, 서울
《4482_Emerging Korean Artists in London》, 바지 하우스, 런던
《PHotoEspaña 2008 Descubrimientos PHE》, 스페인 문화관광부, 마드리드
《예술가의 센서빌리티》, 쌈지아트마트, 서울

2007
《Nikon Discovery awards》, 런던 올림픽 컨퍼런스 센터, 런던
《MAP 2007 Final Show》, 런던 컬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 런던
《Photography for Begindners》, LCC 에커슬리 갤러리, 런던

수상
2018
신도 작가지원 프로그램(SIANP) 선정, 가헌신도재단, 한국

2016
언베일드 포토북 어워드 파이널리스트, 영국

2012
제11회 다음작가상, 박건희 문화재단, 한국

2011
송은미술대상 우수상, 송은문화재단, 한국

2007
스프록스톤 메모리얼 어워드, 스프록스톤 파운데이션, 영국

Critic 1

이성휘(하이트문화재단 큐레이터)

 

정희승은 대상의 본질과 이미지의 관계, 그리고 그 간극을 포착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그의 사진은 사진이 대상의 물리적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대상의 일부로 현존하고 있는 이미지의 속성을 독립시키는 일임을 보여주었고, 그럼으로써 정희승의 사진은 대상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진 이미지로서 인정받는다.

지난 10 여 년간 정희승은 인물, 사물, 공간 등 다양한 대상을 특유의 감각으로 포착해냈다. <페르소나>, <리딩>, <고스트>와 같은 초상 연작을 시작으로, <스틸-라이프>, <부드러운 단추들>, <장미는 장미가 장미인 것>, <사라짐>과 같은 정물 사진, 그리고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를 통해 역사적 공간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우선 <페르소나> 시리즈는 정희승이 인물을 대상으로 삼아 ‘마스크(mask)’와 ‘페이스(face)’의 관계에 대해서 탐구한 작업이다. 작가는 <페르소나>를 비롯하여 일련의 초상 작업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는데, 우선 <페르소나>는 비극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서 현실(reality)과 무대(stage), 몰입(absorption)과 자기현시(self-revealing)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다뤘고, <리딩>은 배우들의 대본읽기가 타자의 언어를 반복적으로 읽어가면서 자기를 상실해가는 행위가 되는 것에 주목하여 이 과정을 사진에 담고자 하였다. 또한 <고스트>는 19 세기 중반 초상 사진들을 레퍼런스 삼아, 사진의 발명후 산업화가 시작되기 직전까지의 약 15 년간 제작된 초상 사진들에서 발견되는 정서,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벤야민에 따르면 아우라가 될 수도 있는)에 대해 파고들었다. 오늘날의 사진에서는 상실되어 있는 이 초기 사진들의 정서에 대한 오마주와도 같은 작업을 위해 정희승은 대형 카메라와 슬라이딩 플레이트를 이용해 약간의 시간과 시점이 어긋난 두 장의 스테레오 이미지를 제작했고, 이는 19 세기 다게레오타입 초상 사진의 제작방식을 의식한 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긴 촬영 시간으로 인해 모델의 시선이 카메라보다는 자신의 내부로 향하게 함으로써, 인물의 표면을 즉물적으로 묘사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상에 관여하고자 했다. 이 작업에 대해 정희승은 자신 역시 표면을 묘사했지만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들의 징후로서 드러나는 표면이라고 말한 바 있다.1

정희승의 <스틸-라이프> 작업은 주변의 여러 사물을 촬영해온 사진들인데, 사물을 촬영하여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제시, 배치하여 낯선 이미지 또는 하나의 오브제처럼 보여주거나, <장미는 장미가 장미인 것> 시리즈를 통해서는 사진이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는 과정을 반복적인 장미 초상 연작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한 <부드러운 단추들> 작업은 시인 거트루드 스타인의 시에서 차용한 제목으로, 유동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는 대상이나 신체를 드러내고자 한 작업이다. 이 작업의 대상은 부드러운 상태의 사물이지만 그것에 붙은 이름과의 관계는 느슨하며, 또한 불안정한 상태이지만 공격적이지도 않은 속성을 지닌다. <부드러운 단추들>은 <장미가 장미인 것>, 그리고 <사라짐>이란 작업과 함께 ‘의미의 불가능성에 대한 세 개의 소품들’로 묶이는데, 이 표현 그대로 도달할 수 없는 이미지의 의미에 대한 작가의 탐구 작업이다. 이 작업들에는 정희승의 여타 작업들이나 전시, 그리고 작품집에서 자주 발견되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 그리고 그 행간에 대한 숙고도 포함되어 있다. 정희승은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특징이기도 한 편집의 행위를 통해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를 실험해 왔는데, 그가 일련의 작품을 배열/배치하는 편집은 하나의 사진을 전혀 다른 맥락으로 전치시키기도 하며, 한 편의 시처럼 언어와 같은 호흡을 만들어내는 행위다. 관람객 또는 독자는 전시장 벽을 따라 걸으며, 또는 작품집의 책장을 넘기면서 작가가 만들어낸 이미지의 행간과 호흡을 읽어내어야 한다.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는 제 12 회광주비엔날레(2018)에 참여하면서 촬영한 옛 국군광주병원 사진들이다. 정희승은 광주의 비극적인 시간이 몇 겹으로 중첩된 채 폐허로 남은 건물을 시차를 두고 마주했을 때 그 공간이 지닌 경험과 기억을 가늠하는 일이 불가능하였다고 한다. 그가 비로소 자신이 담아온 공간의 디테일을 들여다보며 사진가적 입장을 되돌아보게 된 것은 해를 넘길 정도로 시간을 묵힌 후 편집작업을 시작하면서다. 우리는 작가가 인용한 에밀리 디킨슨의 싯구 ‘기억은 뒷면과 앞면을 가지고 있다(Remembrance has a rear and front)’로부터 더이상 재현불가능한 경험과 기억이 기억의 장소로 남아 있는 공간에 의해서 환기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의 장소를 촬영한 사진이더라도 사진은 시간을 차곡차곡 거슬러서 과거의 공간으로 완전히 우리를 데려다 주지 못한다. 따라서 사진이 역사를 기록한다는 미명하에 행하는 것은 결국 기억을 재구성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정희승의 사진은 옛 국군광주병원을 현재 우리가 위치한 시간대에서 바라보고자 하였으며, 역사로 규정된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역사가 기록하지 못하는 현재의 공기와 풍광, 소리까지 암시하는 사진이다.

정희승은 한 인터뷰에서 “매체로서 사진의 특성을 어떻게 정의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사진은 정의하기 어렵다, 고정된 아이덴티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한 적 있다. 그는 사진 이미지가 현실과 맺는 관계란 비가 새는 천정처럼 불안정하기 짝이 없고, 결국 사진이 하는 일은 그 균열과 구멍들에 대한 탐구라고 덧붙였다.2 사진은 세상에 등장한지 200 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등장 순간부터 미술사에 의해 재현 수단으로써 회화와의 대결 매체로서, 또는 영상미학이나 미디어이론 등의 관점에서 다각도로 분석되어 왔고, 디지털 사진이 보편화되면서 데이터로서의 속성이 중요해졌다. 현재의 사진은 회화, 그래픽, 영상과 함께 다같이 이미지이자 데이터로 귀결되어가는 상태이고, SNS 플랫폼을 타고 광속도로 무한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이 새로운 플랫폼을 외면하여 고립되거나 아니면 결탁함으로써 속도에 휩쓸려 가거나 그 운명을 양자택일 해야 하는 지경이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정희승은 고집스럽게 이미지의 본질에 대해 숙고하면서 사진에 대해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1. 정희승, 『Unphotographable』(서울: 두산아트센터, 2011)에 수록된 작가 인터뷰 참고. (페이지 번호 없음)
2. 위의 인터뷰 참조.

Critic 2

천연덕스럽게

조은비 (큐레이터)

 

1

벤야민은 한때 인용만으로 이뤄진 글을 쓰고자 했다. 나는 정희승의 신작에서 이 오래된 시도가 떠올랐다. 스물다섯 작가를 인터뷰하고 이와 관련한 이미지를 포착한 본 작업에는, 동시대 사상을 포집하고자 했던 저 방법론과 유사한 구석이 있는 듯하다. 따라서 나는 이에 발맞추어, 콜라주로 형상화한 ‘오늘의 작가’에게 몇 통의 편지를 쓰고자 한다.

작가님께,
어쩌면 긴 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디 인내심을 가져 주시길. 저는 지금 임시로 구한 숙소에 갇혀 있습니다. 얼마 전 네덜란드에서 귀국한 저는, 방역지침에 따라 2주간 이곳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애초에 그럴 줄 알았지요. 저는 어느 모로 봐도 예외가 아닙니다. 모두와 같은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저라고 남들과 다를 건 하나도 없지요. 그러니까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의 적막감은 저 역시 이전엔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감각이었습니다. 진공으로 포장된 공산품처럼 비닐 커버로 둘러싸인 체크인 데스크를 지나, 어디에서 구했는지 모를 방역복을 입은 이들과 함께 탄 비행기 안의 공기는, 그만큼 어딘지 미심쩍었지요. 그 두려움을 안고 돌아온 고국에서 저는 곧바로 관리대상이 되어 방역절차라는 이름의 긴 줄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잉여’라는 어쩐지 낯익은 정체성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이렇듯 남는 시간은 언제나 제도가 그어놓은 선을 상기시킵니다. 다시 말해, 저는 잉여로 되돌아가면서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예술계로 되돌아온 듯합니다. 제가 서 있는 이 자리가 그 내부인지 외부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요.

잘 모르셨겠지만 저는 출산 이후 네덜란드로 이주하였고, 그 후 대부분의 시간을 온전히 육아에 쏟아왔습니다. 그 와중에 예술은 기실 여성, 외국인, 엄마, 아시안이라는 그 다중적인 정체성 바깥으로 유야무야 밀려났지요. 그건 그저 생활 속에서나 이따금 발견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한국 사회라는 궤도밖에서 전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과 마주하진 않았는지 궁금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와 돌이켜보면, 실상 거기서 무엇을 겪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또렷한 건, 서구 유럽의 어느 수도 역시 이곳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기억 정도이지요. 글로벌 기업들에 둘러싸여 엇비슷한 음식을 먹고 동일한 물건을 소비하는 동질화된 개인들 틈바구니에서 외부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한때 선망과 찬미의 대상이었던 유럽은 이제 도시 전체가 거대한 관광상품이자 박제된 유물처럼 보일 지경이었지요. 이 ‘원본’의 쇠락을 목도하면서 한 가지 분명해진 건, 그간 우리가 열심히 보고 배워온 것들이 거진 제 수명을 다해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마저도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관광객이 사라진 텅 빈 거리 위에 새들만이 날아다니는 봉쇄된 도시가, 그곳에서의 제 마지막 기억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쩌면 이제 저는―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 세 살배기 아이의 모습에서밖에는―더 이상 아름다움을 느낄 마음이 남아있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간혹 미술관에서 희박하게나마 어떤 아름다움을 느낀다 하더라도, 이는 일상적인 냉소를 벗어나는 일탈적인 체험, 곧 예외성으로 확인될 따름입니다. 급기야 저는 아무런 의도성도 갖지 않는, 탈 제도화된 사물에서야 겨우 일말의 미적 자유를 발견합니다. 물론 지금 제가 일상의 모든 것들이 미적 가능성을 갖고 있단 식의 구태의연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단지 잉여로서 마땅히, ‘아름다움’이란 감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 할 뿐입니다. 언제부턴가 예술의 범주는 ‘제도’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순치되어, 그 아름다움은 오로지 그 집행자들에게만 인식되는 듯 보입니다. 여전히 두루뭉술하지만 그간 제가 예술계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본 그곳의 풍경은 이와 같습니다.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주관적인 서술이 지닌 한계를 알지만―차라리 그 한계를 적극적으로 끌어안고―지금 저는 제 성장 서사와 함께 하는 미술계의 어떤 장면들을 되새겨 보려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기억하는 ‘작가’의 첫인상은 분명 헐렁하고 허술한, 어떤 모습 혹은 태도였습니다. IMF 직후 입시에서 막 해방된 저는, 그 와중에 유학을 끝내고 돌아온 ‘영 아티스트’들의 전시 오프닝이나 이를 빙자한 갖가지 이벤트들에 자주 기웃거렸습니다. 작가님과 저는 지금은 사라진 홍대 앞의 한 대안공간에서 처음 만났었지요. 24시 김밥집에 둘러앉아 그곳의 비인간적인 노동에 격분하던 작가님의 첫인상은, 다행이랄지 불행이랄지, 최근 발표하시는 작업과도 여전히 퍽 잘 어울립니다. 모든 게 자연스럽던 그 날의 풍경은, 하지만 그런 무거운 이야기들보다는 그저 그 공간의 살가운 분위기와 낯익은 냄새로 더욱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아직 형식과 이름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뭘 하는 건지도 잘 몰랐지만, 단지 새로움이라는 매혹이 사람을 모으던 그런 현장이 있었지요. 재밌거나 과감하거나 때때로 사악하기도 했던 ‘그때 거기’에, ‘비주류’나 ‘언더그라운드’, 혹은 ‘하위문화’와 같은, 이제 서로 구분도 잘 안 되는 철 지난 라벨을 붙이는 건 조금 맥빠지는 일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인디 뮤지션들의 드럼 비트가 온종일 울리던 그때 그 동네는 모든 게 꽤 그럴싸해 보였지요. 그리고 이 ‘자유’의 감각 속에서 작가는 제도 밖 경계를 돌면서 그야말로 스스로를 예술 그 자체라고 자신했던 듯합니다. 그러니까 ‘작가’는 아직 직업이기보단, 그 자신의 태도로 규정되는 어떤 자의식쯤으로 보였지요.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그들이 유영하던 그 ‘제도 바깥’은 빠르게 협소해지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 그 무렵, 노동의 유연화에 있어 예술가들의 삶 또한 예외는 아니었지요. 마침내 도래한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한국 미술계의 제도적 시스템 역시 그 꼴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큐레이터란 직업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때쯤이었지요. 그 와중에도 어떤 이들은 여전히 아마추어적인 태도를 고수했지만, 일찍이 영리한 이들은 전문가로, 글로벌 엘리트로 명품 잡지 따위에서 자신을 재현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제도의 파이가 선명해질수록 승자독식은 더욱 분명해져 갔습니다. 당시 성공한 소수의 작가가 ‘규모의 경제’와 조력해 빚어낸 현대미술의 스펙터클은, 오늘날 뮤지엄에 설치된 이들의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게 다 뭔가요. 이 같은 제도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은 우리 사회 내부에 그 어떤 뚜렷한 인과관계도 형성해내지 못했습니다. 한국미술시장의 기이한 구조에 대해선 말을 꺼내기조차 민망하고, 미술은 과거의 권위와 대중의 기대를 완전히 잃었습니다. 자신을 설득하는 것은 또 가능한 일인가요?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통령이 두 번 바뀌는 사이, 동세대는 예술이 노동임을 자처했습니다. 그 선언에 누군가는 예술 행위가 어떻게 노동이냐고 반문하기도 했지만, 그 질문은 외려, 오늘날 우리는 모두 노동자란 사실을 명확하게 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들 젊은 예술가들의 언설은, 경제적 안전망에 대한 요구이자 예술계 내부의 계급성에 관한 폭로이기도 했지요. 또한 이는 동시에, ‘사회’가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제도 미술이 그 변곡점을 넘어섰다는 신호처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또래 작가가 말하는 “죽도록 열심히”해 “스타”를 꿈꾸는 개인주의적 의지는 여전합니다. 그리고 이 ‘능력에의 환상’은 끝내 그 인정구조 속으로 극소수의 예술가들을 흡수시키겠지요. 하지만 작가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제 십여 년 전과는 또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예술을 노동이라고 선언하는 동료들의 모습에 저를 투영하고 세속화된 오늘의 미술을 봅니다. 따라서 지금의 제 잉여됨이 불러일으키는 이 모종의 익숙한 감각은, 분명 다 착각일 겁니다. 이제 미술(계)에 더 이상 잉여의 자리는 없습니다.

2

정희승의 사진은 마치 얼크러뜨린 퍼즐 조각처럼 공간 안에 흩어져 있다. 쉬이 맞춰지지 않는 이 수수께끼 같은 파편들은, 전시 공간 전체에 걸쳐 하나의 태도를 암시한다: 맞추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한 퍼즐을 고안하려는 의지. 이는 무언가에 대한 명명이 오히려 그에 대한 오해를 부르는 상황과 닮았다. 그는 이를 피하려 한다. 즉 작가는 그 알 수 없는 상태를 긍정하면서, 완성될/되지 않을 것의 모호한 뉘앙스를 꾸미는 데 집중한다. 따라서 그의 사진-이미지는 피사체가 본래 놓여있던 상징 질서를 거부하고, 작가 자신의 말처럼 “아직 대상이 결정되지 않고, 의미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작가님께,
오늘 오전엔 담당 공무원이 자가격리를 위한 구호 물품을 현관문 앞에 두고 갔습니다. 사소한 행정처리에도 두어 달이 걸리곤 하는 네덜란드에서는, 한국 사회의 이 같은 신속한 일 처리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요. 개개인이 떠맡는 과도한 노동에 눈 감고 순전히 소비자의 입장에 서기만 한다면, 한국 사회의 시스템은―경험하면서도, 아니 경험할수록―믿기지 않을 만큼 편리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편리함은 대체로 감시와 통제를 동반하지요. 저를 ‘보살피’려는 양 양손에 먹을거리를 들고 온 공무원에게 실상 저는 지역구에 찾아온 잠재적 위험, 골칫거리에 불과합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대중교통과 공원, 거리에서 흔히 목격하는 공공 표지판, 인포그래픽, 현수막 등에는 “선진 시민”으로서 우리가 지켜야 할 규율이 적시되어 있고, 중앙정부가 하루에도 수차례 발송하는 ‘긴급 재난 문자’는 개인들의 행동 지침을 귀찮을 정도로 세세하게 안내해줍니다. 김강기명은 권력을 점유한 국가가 시민들에게 뭘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고 알려주는 이 같은 통치방식이, 표준 시민을 ‘아동’으로 설정함으로써 미시적 통제와 ‘모성적’ 돌봄을 가능케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여기서 ‘모성’은―그 비유에 담긴 오류와 편견을 김강기명이 우려하듯이―한국 사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왜곡된 개념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보호가 ‘보호받는 대상’을 전제하는 개념이라고 할 때, 보호자와 피보호자는 필연적인 교환 관계에 놓이게 되고, 이때의 ‘모성’은 돌봄이 추구하는 상호존중이나 관계성과는 분명 다른 지향을 갖습니다. 즉 이는 대상에 대한 ‘단속’에 가깝습니다.

몇 해 전 어느 지역 문화재단의 기금 설명회에 참석했을 때, 친절하게 행정 시스템을 설명해주던 담당자가 프로그램 말미에 희미하게 웃으면서 이런 말을 하더군요.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자리를 통해 자주 뭉쳐야 한다”고요. 일그러진 제 얼굴을 그가 봤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스스로의 무례함을 모르는 것은, 상대가 자신의 시선 속에 대상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탓일 테지요. 무지는 권력이라고 했던 정희진의 말이 떠오릅니다. 제도의 집행자와 그 수혜자 사이에 위계를 느끼는 건, 단지 제가 민감하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정부, 지자체, 자치구는 저마다 무수히 많은 지원제도를 만들어내고, 거기에선 그만큼 다양한 지원금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세분화된 기금이 늘어날수록 지원금의 규모는 더 잘게 쪼개지고, 그 각각의 범위는 보다 협소해집니다. 시스템이 지나치게 정교해짐에 따라 우리는 얼핏 그 조건이 쾌적하단 착각에 빠지기 쉽지만, 문제는 그것이 공동체의 신뢰 또한 정교하게 대체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시스템에 예속된 개인들은 목줄을 찬 듯 온순해집니다.

제 말이, 언제나 제도가 가장 문제이고 예술가는 약자란 진부한 푸념처럼 들리지 않길 바랍니다. 실상 동시대 미술은 제도와 공생하는 관계로, 제도를 횡단하지 않고선 도달 불가능한 지점이 있습니다. 작가님의 오늘을 만든 그 큰 상 역시 거대 기업의 후원에 기댄 것이고, 저 역시 기업에서 운영하는 기관에서 여러 해 봉급을 받고 살았습니다. 물론 비판하는 대상에 빌어먹고 있는 제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한 적도 있지요. 거기다 미술계라는 흐릿한 원 밖을 나와보니, 그 안의 취약한 연결을 대신하던 시스템의 공회전이 되려 미더워 보이기도 합니다. 또 이제 윤리적 순결주의는 얼마나 순진해 보이나요. 다 별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니까 실상 이제 그 누구도 예술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대신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단 사실이죠. 더군다나 주목할만한 사립미술관 하나 없는 상황에서 공공영역에 대한 의존은 일견 당연해 보입니다. 거기서 예술은, 민간의 무관심을 대리하는 국가의 한 복지정책으로 단락화됩니다. 물론 제도가 스스로 강해진 것만은 아니겠지요. 동그란 원을 만들고, 단지 선에 불과한 저 원의 경계를 돌면서 그 폐쇄성을 강화해온 사람들이 있단 걸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제도의 선 위에 우뚝 선 전문가들은 예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오늘날 전문가의 사회적 위신은 붕괴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미술계에서 있었던 미투는, 어느 예술가가 주변의 묵인과 방조로 성범죄를 지속해왔단 사실 뿐만 아니라 그 위력적인 개인이 제도적 자원을 독식해왔단 부조리 또한 드러냈습니다. 끊임없이 기업과 국가 사업에 용역계약을 맺던 소수와, 이들을 승인해준 폐쇄적인 제도.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까지 사기인가요? 예술가가 누려온 자율성의 신화는 진작에 수명을 다했습니다.

이왕 말을 꺼냈으니 더 비관하겠습니다. 어쩌면 이 세계엔 더 이상 예술을 작동시킬 수 있는 영역이 남아있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예술을 완벽하게 불가능하게 합니다. 가령 정치인을 넘어서는 퍼포먼스를 스스로에게 기대하기 힘들 때, 예술가는 기껏해야 제 자신과 그들을 조롱하고 마는 데 기꺼이 만족합니다. 도래하지 않은 세상을 담지하던 예술의 기능이 그렇게 마비되고 있습니다. 그 잉여에 발생하는 미적 체험은 누군가의 삶이나 태도를 변화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원래 있던 자리에서 탈주하게끔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사회가 제시하는 상징체계를 유린하고 제도가 권고하는 절차를 뛰어넘어 비로소 다시 개인으로 되돌아가도록 유인하는, 아니 떠미는 부주의함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예술의 모습은 어떤가요? 잘게 쪼개진 지원금을 타기 위해 자신을 설명하는 그럴듯한 언설의 반복이나, 그럴싸한 상품성을 얻어 취향을 전시하는 매대 위의 고급 팬시 용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예술은 이제 그 모든 위험성을 떠안고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안전한 곳에 가두고 위로하는 기능을 담지할 뿐입니다. 그렇게 모든 게 정해져 있는 제도 속에 스스로를 포박시킨 채, 맨질한 하나의 표피를 얻어 제도의 액세서리 역할을 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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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승이 만난 작가들은 나이, 젠더, 계급, 경력, 위치성 등이 모두 제각각이다. 이처럼 결코 일반화할 수 없는, ‘내가 아는 사람들’에 바탕을 둔 이 편향적인 이야기는, 그 자의성으로 인해 예술이 지닌 일반화의 불가능성을 지시하면서 ‘오늘의 작가’를 드러낸다. 이때 그가 포착한 장면은 작가초상과 같은 사적인 삶의 단면에서부터, 작품 일부나 작업 과정과 같은 창작의 이면이다. 기실 창작 행위가 삶과 일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 속에서 이뤄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정희승이 담아낸 이 사진적 순간은 작가들의 구체적인 삶이면서 동시에 창작의 현장이 된다. 그리고 이는 곧 이런 질문을 불러온다. 창작 과정 혹은 작품 이면도 ‘사진가에 의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가? 관찰자이면서 동시에 작가 당사자로서 정희승은, 작품 안팎의 경계에서 ‘미술하기’라는 구체적인 행위가 예술 제도 안에서 미술이 ‘되는’, 그 불가해한 지점을 포착하고자 한다. 가령, 본 작업에는 ‘올해의 작가상’이라는 제도적 승인과는 일견 무관한, 동료 작가 혹은 그들의 작품 이미지가 틈입하게 되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정희승 자신의 작가성을 증명한다. 요컨대 결국 이들을 예술(가)로 만드는 것들은 무엇인가? 물론 이는 답해지지 않는 질문이다. 정희승을 경유해 전시장에 천연덕스럽게 걸려 있는 동료 작가의 작품 이미지가, 그것의 이전 상태―우리가 눈앞의 사진에선 결코 볼 수 없을―‘원작’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하듯이 말이다. 이는 우리가 모르는 작품의 이면을 상상하게 만들고, 미술이 생산되는 방식과 인정구조(제도)의 비밀스러움을 유보시킨다. 이 미궁의 상태가 은유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술이 불가능한 오늘날의 세계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정희승이 현 작업을 매개로 만난 동료 작가들에게 반복적으로 던지는, “너는 왜 이걸 하느냐”는 질문은 그렇게 종국엔 그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왜 이걸 하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궁극적으로 ‘미술하기’란 행위의 이유와 근거를 환기한다.

작가님,
지난 메일에서 제가 다소 냉소한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부터 이어진 긴 고립으로 인해 지친 것도 사실입니다. 그곳의 급작스러운 봉쇄 정책으로 인해 저와 제 가족은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돌아올 곳이 있단 건, 그마저도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보단 낫다는 뜻일까요. 지금의 이 상실감은, 어렵게 꾸려낸 그곳의 일상이 얼마나 취약한 토대 위에 있었던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냅니다. 역병이 돌기 시작하던 무렵, 거리에서 저를 보면서 코와 입을 가리던 익명의 몸짓은 언제나 그 이유를 의심하게 했고, 바이러스가 합리화의 길을 터준 차별과 혐오 속에서 제가 맡던 그곳의 공기는 이미 달라져 있었습니다. 저는 분노를 느낄 바에야 철저히 타자가 되는 경험을 통해 더 아래로 내려가길 원하기도 했지요. 그곳에선 “신자유주의 시대 유일한 윤리적 주체가 ‘피해자’인 덕분에 차라리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지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면, 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걸까요? 물론 누구도 언제나 약자일 수 없고 그 위치는 계속해서 변합니다. 돌아온 고국에서 제가 누리는 이 ‘관리받는’ 온건한 삶을 부정할 순 없겠지요. 그러나 제 눈에 분명히 보이는 것은, 오늘날 인간의 삶은 대체로 어느 정도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우리는 그것에 이미 너무 익숙해졌다는 겁니다.

느닷없이 저는 수도권과 강원도를 잇는 어느 터널을 떠올립니다. 길게 뻗은 직선 위로 달리는 자동차들, 땅은 곡선이지만 이 길은 직선으로만 이어집니다. 터널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산을 파내고 그곳의 생명을 내쫓았을까요. 그리고 그런 인간은 고작 어떤 취급을 받습니까? 사방에서 인위적인 소음과 시각적인 자극을 일으켜 졸음운전을 막는 경보 시스템은, 인간을 기계적인 반응 속으로 내몰아 스스로를 물화시킵니다. 폭력은 인간을 사물화시킨다고 했던 시몬느 베이유(Simone Weil)의 말처럼, 이 직선의 터널은 폭력이고, 플랫폼 경제를 떠받치기 위한 이 속도의 전쟁에서 인간은 저 자신 또한 화물차에 실린 짐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계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삶에서 예술가의 삶은 예외일 수 있을까요? 이제야 비로소 제가 작가님의 안부를 묻는군요.

잘 지내셨는지요?

이 물음을 위해 말이 길었던 듯합니다. 그러니까 다시 묻겠습니다. 오늘의 작가에게 남아있는 가능성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간혹 우리는 예술가들이 어떤 기술로도 대체 불가능한 직업이라는 예측을 접하곤 합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일이라는 거지요. 하지만 그런 말들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과연 그러긴 할까요? 이 인간적인 행위를 대체할 수 있는 과학기술은 이미 충분히 확보된 듯합니다. 얼마 전 인공지능이 썼다는 소설을 읽어봤습니다. 데이터를 방대하게 수집한 인공지능의 언어는 웬만한 소설가의 그것보다 나아 보이더군요.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이 편집한 영상이나 고안한 설치, 비범한 회화는 이제 작품에서 ‘작가성’을 지우기에 마땅한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듯 보입니다. 더군다나 비평이 권위와 자격을 상실한 시대에, 비평적 가치에 호응하지 않는 예술에 대한 대중의 주목과 관심은, 사람들이 예술에 실로 기대하는 게 무엇인지 암시하는 듯합니다. 적어도 삶을 ‘진짜’로 위험하게 만들지 모를 예술은, 익숙한 환상 속에 머물고 싶은 이들에게 환영받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상 예술이 처한 가장 큰 위기란 더 이상 미학적 쟁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다시 말해, 우리는 뭘 몰라서가 아니라 다 알아서 속수무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 저는 작가님께서 예술을 이제 그만두셨으면 합니다. 모두가 예술가가 된/될 수 있는 시대에, ‘직업적 예술가’가 제도 예술에 부피와 두께를 더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요? 무언가를 계속 만드는 것은, 단지 고성장 시대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오랜 습관이 아닌가요. 어쩌면 우리가 최선을 다할수록 세상은 점점 더 망가져 가는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시스템을 존속시키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를 합리화시킬 수 없다면, 마지못해 끌고 온 관성을 이제 그만 떨쳐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저는 차라리 아무도 예술을 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곤 합니다. 예술이 없어진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 살갗 밑에는 뭐가 있을지 너무 궁금합니다. 저는 작가님을 여전히 믿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여기 없지요. 당신은 예술계 모두일 수 있지만 동시에 그 누구도 아닙니다. 당신은 모두와 닮아있고 아무와도 닮지 않았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러니까 바로 당신의 부재로부터 비롯합니다. 그동안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누가 당신을 사라지게 만든 건가요? 적어도 그게 우리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그게 제일 괴롭지요. 누군가를 탓할 수 없단 것 말입니다. 지금 당신은 대체 어디에 있나요.

한편, 벤야민의 기획은 미완으로 남았다.

 

 


이 글은 정희승 작가의 의뢰에 따라 “오늘의 작가”가 당면한 현실을 조망한 에세이이다.
1 김강기명, 「유럽이 한국으로부터 배울 수 없는 것」, 『피렌체의 식탁』, 2020년 4월, https://firenzedt.com/?p=5909.
2 정희진, 「정희진의 낯선 사이-방역독재자, 순교자를 꿈꾸다」, 『경향신문』, 2020년 9월 16일 자.

Critic 3

즐겁게, 즐겁게, 즐겁게, 즐겁게

김현호 (사진비평가)

 

1

미술관의 입구를 지나 몇 개의 계단과 복도를 건너 전시장에 들어가면, 나직이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우리를 맞이한다. 노래는 사각사각 가볍게 천정을 떠다니다가도 어느새 단자가 거꾸로 꽂힌 스피커 소리처럼 답답하게 웅얼거리며 바닥에 가라앉는다.

의자에 앉아 정해진 시간 동안 눈앞의 스크린을 견뎌야 하는 영화관과는 달리, 미술 전시장에는 대체로 몸을 피하거나 숨길 수 있는 작은 틈새나 샛길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예를 들어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을 부드럽게 움켜쥐고 자신의 어두운 굴 속으로 함께 낙하하려는 작가들이 있다. 그러나 관객은 작품과 작품 사이를 무심하게 거닐며 작가의 손길을 가볍게 털어버리곤 한다. 그는 작가의 득의작 앞에서 스마트폰 메시지를 확인하거나,작가가 숨기고 싶어했던 작은 흠결을 확인하기 위해 전시의 흐름을 거꾸로 되짚어 올라갈 수도 있다. 이 산만한 관객들이 서로 간섭하며 만들어내는 어지러운 동선으로 인해 작가의 의도는 대개 흐트러지고 만다.

즐겁게, 즐겁게, 즐겁게, 즐겁게
인생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네.

하지만 소리를 피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공간을 가득 채우고 물결처럼 찰랑거린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선우정아의 노랫소리는 마치 아주 느린 롤러코스터를 탄 것과 같은 기묘한 상승과 하강의 감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며 눈을 돌리더라도 이 목소리에 휘감기지 않을 도리는 없다. 눈으로는 사진을 보고 귀로는 음악을 듣는다는 두 가지 감각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행복하게 결속되거나 불안하게 어긋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인터뷰에서 정희승은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은 그 창작의 영역이 오직 시각만으로 제한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물론 시각이 단순히 눈으로 빛을 받아들이는 감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무언가를 보는 행위는 언제나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인식의 체계를 요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정확하게 볼 수 있는가? 우리를 둘러싼 사물의 세계가 지닌 무한한 복잡성과 유동성에 비하면 우리의 시각이 처리하는 정보의 양은 대단히 적고 초라하다. 이것은 피와 살로 된 육체의 한계이며, 동시에 해석의 한계이기도 하다. 인간은 밤하늘의 별들이 그려내는 불가해한 형상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상의 별자리와 그것에 얽힌 전설을 만들어내야만 하는 존재다.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기호로 변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식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인간에 의해 굴절되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정보는 그저 흩어져 사라지고 만다.

지난 세기 초 사진에 쏟아졌던 기대감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더 늦기 전에 파국을 막아야만 한다고 절박하게 믿었던, 이를테면 발터 벤야민과 같은 이들이 있었다. 그는 자본과 상품, 생산과 소비의 공정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현실의 구조가 점점 해독하기 어려운 것으로 변하고 있다고 느꼈다. 벤야민이 사진에게 걸었던 일말의 희망은 역설적으로 이 기계 이미지가 인간의 눈이 인지하지 못하는 디테일까지 무차별적으로 감광판에 담아버린다는 데 있었다. 그는 텅 빈 파리의 거리를 찍은 외젠 앗제의 사진을 ‘범죄 현장’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 사진에 기록된 미세한 디테일들이 불씨처럼 되살아나 사회의 구조와 허위를 간파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벤야민 자신이 전통적인 것들을 자본으로부터 탈환할 숨구멍을 찾기 위해 이전 세기의 자료들을 읽고 또 읽었듯이.

물론 사진이 기이하고 낯선 존재였던 시절의 이야기다.카메라는 그 앞에 선 모든 현재를 무심히 과거로 변화시켰고, 인간이 ‘보고 있다고 믿었던’ 세계의 정돈된 모습이 아닌 기괴하고 부조리한 기계 이미지의 파편을 보여주었다. 사진은 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했으며, 무엇보다도 벤야민이 믿었듯이 언젠가는 시간의 지층을 뚫고 눈 밝은 이들에게 도달할 잠재력을 지닌 것처럼 보였다.

다시 말하지만, 오래전의 이야기다.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이 날것의 이미지들을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강력한 도구를 가지게 되었다. 기호학과 구조주의, 정신분석학, 마르크시즘, 그리고 역사와 제도 같은 것들로 조립된 기계의 한쪽 구멍으로 사진을 넣으면 다른 한쪽으로는 꽤 그럴듯한 설명글이 출력될 수도 있다. 이제 사진은 친숙할 뿐 아니라 간단히 해석 가능한 대상이 되었다. 이미지에 함축된 의미와 그것의 디테일이 지시하는 바를 해부하듯 펼쳐 보여주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과연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담론의 언어는 과연 사진 한 장을 설명해낼 수 있는 해상력을 지닌 도구인가? 여전히 빛과 렌즈가 만들어내는 경이로움과 그 가능성을 믿는 작가가 있다면,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 아마도 도망칠 것이다. 자신의 사진이 간단히 해석되어버리지 않도록 여러 함정을 설치하고, 자기 자신도 답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있으려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사진 이미지가 사고 실험의 결과물이 아니며, 담론이 한 장의 사진을 아무리 날카롭게 파헤치려 해도 결국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해골처럼 남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진이 오직 시각의 영역에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흥미롭다는 정희승의 말은 그의 작업에 접근하는 일관적인 실마리를 제공한다. 즉 자신이 찍은 사진 이미지가 외부의 지식 체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그저 작가는 사진을 통해 시각의 가능성을 더 해방할 수 있기를,즉 더 명징하게,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몸이 없는 존재처럼 모든 감각을 눈에 집중하며 대상을 향해 돌진하다 보면, 다른 감각은 물론이고 작가의 의도나 작업의 계기 같은 것들조차도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하얗게 말라붙어 떨어져 나가버릴 것이다.

이런 작업 방식은 실제로 포스트모던 비평 이론과 대결하던 지난 세기말의 문인들이 주장하던 ‘천천히 읽기’와 비슷한 면모가 있다. 글과 문장에는 분명 불가해한 속성이 있으므로 함부로 담론을 사용해서 해부하려 하지 말 것. 문학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까지 아주 천천히 대상에 집중할 것.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단어들뿐이니, 그것을 조용히 바라볼 것. 이는 사진이 이미 낡아버렸으며, 우리가 사진에 대해 캐물을 수 있는 것이 ‘사진이란 과연 무엇이었는가’와 같은 고고학적 질문에 불과하다는 입장에 맞서 사진이 여전히 지닌 시각적 가능성을 옹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작가는 사진 위로 흘러 다니는 노랫소리를 통해 과연 무엇을 얻으려 했던 것일까.

2

긴 직사각형 모양의 전시장안에는 두 개의 기둥과 네 개의 가벽이 어슷하게 서 있다. 천정을 없애고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면 아마 핀볼 머신처럼 보일 것이다. 통상적인 사진 전시에서 가벽은 기존의 벽면과 함께 일시적으로 공간을 분할해서 작은 전시장들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그런 구조들은 대개 지루하지만 논리적으로는 명료한 편이다. 예를 들어 전시장을 네 개로 나누어 전시가 일종의 소설적 기승전결을 지니도록 할 수도 있고,훨씬 더 촘촘하게 공간을 분할하여 개별 구역 각각을 특정한 주제나 작업에 할애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어슷하게 선 정희승의 가벽들은 서로 맞물려 공간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자꾸만 보는 이가 길을 잃도록 유도한다. 일반적인 사진전을 관람하듯 전시장 벽면을 길잡이 삼아 걷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수시로 애매한 갈림길이 나타나는 셈이다. 작가는 유독 의미심장해 보이는 색을 골라 가벽에 칠하고 그 위에 크고 강렬한 사진들을 설치해 두었는데, 이는 관객들이 무심코 그쪽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하는 신호처럼 작동한다.

물론 걸어오던 방향대로 전시장 벽을 따라 직진하는 관객들도 적지 않다.그러나 다음,또 그 다음의 갈림길이 등장해서 새로운 판단을 요구한다. 같은 지점에 맞닥뜨린 관객들은 마치 핀볼 머신 안의 구슬처럼 회전수와 속도에 따라 각각 다른 갈림길로 튕겨져 나아가게 된다. 하나의 모퉁이를 거듭 지나가기도 하고, 몇몇 사진을 놓쳐 흘려보내기도 하면서 그들의 동선은 어지럽게 산란된다. 가벽이 만드는 부정형의 공간에서 사진은 그저 관객들의 움직임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다.

책으로 비유하면 이 공간은 한쪽 끄트머리가 제본된 양장본이 아니라 상자에 담긴 카드 무더기와 같다. 대체로 사진 전시의 역사는 낱장의 사진을 어떻게 엮어서 작가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노력의 집적체다. 산만한 관객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사진의 크기와 간격이 정교하게 조절되어 벽에 걸리며, 관객들이 시각적 클라이맥스를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전시는 나직하게 움츠렸다가 갑자기 질주하기를 반복한다.

반면 이 전시는 카드를 섞어 배치할 때마다 새로운 서사가 생성되기를 바라는 듯하다.물론 길을 잃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야기들이 완전할 리 없으며, 그것들은 혼란스럽고 동어반복적일 것이다. 그러나 사진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던가? 각자의 시간과 공간이 우연히 교차한 흔적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매끄럽게 봉합되어 있는 모습이야말로, 혹시 지나치게 작위적인 것은 아닌가?

작가가 관객에게 이야기의 재료로 제공하는 정보는 대단히 한정적이다. 이 사진들은 정희승이 자신의 동료 예술가들을 찍은 것으로, 그들은 한편으로 예술계 안에서 생존 투쟁을 벌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악전고투한다. 이는 괴롭지만 드문 이야기는 아니다. 사실 적잖은 관객들 역시 자신을 비슷한 인물로 가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범박한 일상을 견디고 있는 잠재적 예술가들, 자신의 내면에 작가의 정체성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 이들은 사실 산업사회의 전형적인 인물형이기도 하다.

또한 그 믿음은 사진이 되어 벽에 걸려 있는 작가들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세계는 자신의 논리를 바탕으로 마치 쳇바퀴처럼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쿤데라가 말한 ‘카프카적’ 상황과 같다. 즉 세계는 거대한 미로와 같고, 한가운데 던져진 인간은 그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 제도 안의 인간은 탈출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막연한 불안에 사로잡혀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끊임없이 자문자답하며 자신을 벌준다.1

이 전시는 우리가 속한 사회가 그렇듯 미술관 역시 꿈과 현실이 빈틈없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구성물이라는 점을 무심히 드러낸다. 벽에는 작가들이 사진의 형태로 결박되어 있고, 관객들은 벽과 벽 사이를 그저 돌아다닐 뿐이다. 인간을 제도에 복속시키는 것은 일종의 불안감과, 희망이다. 『변신』(1915) 에서 벌레로 변해 잠에서 깬 그레고르 잠자는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대신 이런 몸으로 과연 어떻게 출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불안해한다. 자신을 억압하는 제도에서 튕겨져 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다소의 고통을 견디면 이 제도 안에 몸 붙일 곳을 지닐 수 있다는 희망은 정확히 동일한 감정의 다른 이름이다.즉 한 명의 예술가로서 제도를 두려워하고 그것에 따라가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지만,절대 그 밖으로 굴러떨어지고 싶지는 않다는 지친 마음이 만들어내는 뒤틀린 풍경이야말로 작은 미로를 헤매는 이 전시의 기본적인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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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에 걸린 사진의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인물들, 알약들, 가면을 쓰거나 손에 든 이들, 민물고기나 벌레, 고양이 같은 것들, 그럴듯한 비즈니스맨처럼 보이는 이들, 렌즈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이들과 시선을 피하는 이들, 기이한 허수아비처럼 보이는 인형들, 손, 날개, 구슬, 계단, 그림, 꽃의 사진들, 흑백 사진과 컬러 사진들, 태양 아래서 찍은 것들과 인공 조명으로 찍은 것들.

정희승 자신의 예술가 동료들에 대한 작업이라는 것만으로는 개별 사진들이 어떤 구체적인 맥락을 지니고 있는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프린트의 크기뿐 아니라 액자의 색깔과 간격, 높이까지 세심하게 조정된 이 사진들은 한편으로는 풍부한 가능성을 지닌 이야기의 재료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저 작가들의 사적인 공간과 연결된 밝은 구멍들처럼 느껴진다.

분명한 것은 이 사진들이 전통적인 ‘예술가의 초상’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정희승은 전시에 등장하는 모든 작가들의 인터뷰를 수집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진을 찍는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인물 사진 작업과 다르지 않다.그러나 그가 찍은 사진 속의 인물들은 딱히 전통적인 예술가들처럼 굴지 않는다.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예술적 야망은 얼마나 웅장한지, 내면에는 얼마나 깊은 상처가 있는지를 알 방법은 별로 없다.

사진의 발명이 인간의 몸에 가르친 것 중 하나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포즈’를 취하는 방법이었다. 사진은 처음부터 시간과 공간을 소멸시키는 매체로 알려져 왔다. 그것은 까마득하게 먼 곳의 모습을 부르주아의 가정에 전송하고, 과거가 되어버린 순간들을 현재의 공간에 소환한다. 즉 사진에 찍힌다는 것은 자신 한 장의 이미지가 되어 불특정 다수의 눈 앞에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예술가들 역시 ‘예술가처럼’ 보여야만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주변의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 필요가 없었고,렘브란트는 끊임없이 자화상을 고쳐 그리며 자신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예술가의 모습으로 형상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진 발명 이후의 예술가는 속절없이 빠르게 작동하는 카메라와 사진가를 상대하게 되었다. 윌리엄 포크너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처럼 인쇄된 책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작가들도 있었지만, 거기에 성공하는 이는 실로 드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진 속의 예술가는 자기 자신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자기 자신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과연 사진으로 포착될 수 있는 것인가? 롤랑 바르트는 『밝은 방』(1980)에서 이런 혼란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이가 나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이’는 서로 다르며, ‘사진가가 나라고 생각하는 자’와 ‘사진가가 자신의 예술을 보여주기 위해 이용하는 피사체’ 역시 다르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나’는 분열하여 대립하기 시작한다. 바르트는 사진을 찍힐 때마다 자신이 진짜가 아니라는 느낌, 속이고 있다는 느낌이 스쳐간다고 썼다.2

가볍고 분열되고 분산된 것이 자아이며, 무겁고 움직이지 않으며 집요한 것은 이미지다. 이것 역시 바르트의 표현이다.3 우리는 『밝은 방』을 쓰기 한참 전에 ‘작가의 죽음’을 이야기했던 바르트조차도 카메라 앞에서는 어떤 강박에 시달린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그럴듯한 예술가의 초상 사진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불안해하며 여기저기로 날뛰어 도망가는 여러 자아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예술가’라는 라벨이 붙은 통 안에 쑤셔 넣어야 하는 것이다. 대체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어쩌면 우리는 그런 예술가의 이미지가 여전히 작동하는 미술관이라는 제도가 하나의 터무니없이 늙고 거대한 몸이라고 상상해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서 있는 전시장은 미술관의 눈이다. 제도는 이 전시장을 통해 우리를 바라본다. 혹은 이곳은 미술관의 입 속이다. 우리는 혓바닥처럼 축축하고 부드러운 곳을 걸어 다니며 그 뱃속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는다.

제도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의 일부가 되는 일이다. 이 전시장과 이어진 길고 긴 목을 통과해서 미술관의 내장 안에 들어가면,반쯤 제도가 된 늙은 예술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예술적 실천을 통해 세상의 범속함에서 벗어난 개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작가들, 심지어는 세계 자체를 협소한 미로 같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를 펼쳐 보여줄 가능성의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거기에 있다. 미술관 수장고에 있는 예술가의 오래된 초상 사진들을 모아서 하나의 전시를 연다면, 그것들은 이 전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은 정말로 ‘예술가처럼’ 보일 것이다. 사진에 찍힐 때마다 자신을 기꺼이 괴물 미노타우루스에 비유하던 피카소처럼. 물론 그가 피카소인지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저 눈빛이 좀 고약하고 머리숱이 적은 노인처럼 보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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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벽면에 걸린 가늘고 긴 흰색 선반들에는 엽서 크기의 종이가 채워져 있다. 이것은 사진 속 작가들의 말을 마치 하이쿠처럼 발췌하여 디자이너 박연주가 만든 서른세 종의 ‘타이포그래피 시’다. 내용은 주로 푸념에 가까운 반면 디자인은 한껏 섬세하고 정교한 탓에 기묘할 정도로 읽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제법 탐욕스러운 이들이라고 할지라도 서른세 장의 종이를 전시장에서 모두 읽고 챙겨가기는 어려울 것이고,설령 가져간다고 해도 이것이 누구의 말인지 알 도리는 없을 것이다.예를 들어 사진을 보고 “하루 종일 누워 있는/저 새끼/열심히 산다”라는 말을 한 이는 대충 짐작해볼 수 있지만 “밀고 당기면서/미니멀해지다가 / 이제는 / 없어지는 지경”이라는 말을 한 이를 알 방법은 없다.

사실 하이쿠의 특징 중 하나는 그 극단적으로 짧은 길이로 인해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대단히 모호하게 설정된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아마도 가장 유명한 하이쿠일 마츠오 바쇼(松尾芭蕉)의 “오래된 연못(古池や)/개구리 뛰어드는(蛙飛び込む)/물보라 소리(水の音)”에서, 말하는 이와 듣는 이는 각각 어디에 있는가? 목소리는 잘 구분되지 않은 채 뭉쳐져 허공을 천천히 맴돈다.

전시장에 비치된 ‘타이포그래피 시’를 전부 펼쳐놓고 읽다 보면, 주어가 모두 의식적으로 제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설령 하이쿠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니다.이로 인해 관객은 자신의 손에 쥔 종이에 적힌 말이 벽에 걸려 있는 이들 중 누구의 것인지 잘 구별할 수 없으며, 이것이 그리 중요하지도 않다. 이 말들은 마치 종이로 만든 인형의 옷처럼 누구에게 걸치든 대충은 어울리고, 대체로는 어색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 종이들이 전시에 덧대는 의미가 그리 가벼운 것은 아니다. 전시장에 비치된 예술가의 말이 정작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좋든 싫든 한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원천처럼 생각되던 ‘예술가의 내면’을 정희승이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서른세 조각의 말들 중 자신의 의지를 구속하는 운명에 대한 분노와 투쟁심을 지닌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내면적인 동기가 이렇게 한없이 가벼워져 버리게 된, 협소한 미로와 같은 세계에서 예술가에게 남아 있는 가능성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그저 이곳에서 자신으로 존재하는 일을 견디며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일일까.

알 수 없다.나는 종이에 씌어진 말들이 하나같이 조금쯤 농담처럼 보인다는 데 주목하고 싶다.가능한 결론은 두 가지다. 첫째, 비극보다는 희극이 훨씬 절망적이라는 점이다. 비극이 현실을 이겨내고 마침내 전진하는 인간을 보여준다면, 희극은 모순에서 파생되는 웃음의 공허함을 드러내는 데 멈추기 때문이다. 둘째, 그럼에도 이 글들은 꽤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지속되는 어떤 지점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예술가의 작업이 단지 작가의 내면을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탈출의 가능성이 없는 세계를 견디며 작업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어떤 탐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시각을 방해하는 모든 요소들을 얇게 저며내듯 제거하고, ‘아직 의미가 도래하지 않은 상태’에 멈추려 노력해온 정희승은 전시장에 음악이 흘러다니게 하는 것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했던 것일까. 혹시 그는 마음을 바꿔 시각과 청각으로 각각 흘러들어오는 정보가 서로를 자극하면서 우리를 어떤 절정의 고양감으로 이끌기를 바랐던 것일까. 마치 할리우드 영화의 한 시퀀스처럼.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선우정아의 사각사각한 목소리는 알 수 없는 연민의 감정을 함뿍 담은 채, 우리의 귓전에 계속 당신의 배를 저으라는 말을 끝없이 속삭인다. 영화관과 미술 전시장이 다른 점은 하나 더 있다.영화는 끝난다.크레딧이 올라가고 불이 켜진다.그러면 모두가 이제 영화관에서 나가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원한다면 아주 오래 걸으며 이 전시장을 헤맬 수 있다. 세계를 걷는 미술가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어쩔 수 없이 즐겁게, 즐겁게, 즐겁게, 즐겁게.

 

 


1 밀란 쿤데라, 『소설의 기술』, 권오룡 옮김 (서울: 민음사, 2013), 145–149.
2 롤랑 바르트, 『밝은 방』, 김웅권 옮김 (서울: 동문선, 2006), 27.
3 같은 책,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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