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선 위로, 선 바깥으로 던지는 돌

우현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2012년부터 공동으로 주최해 온 대표적인 현대미술 작가 후원 프로그램이자 수상 제도로, 매년 작가 4인(팀)을 선정하여 신작 제작과 전시를 지원해 왔다. 2023년 10주년을 맞아 작가의 작품 세계를 (비)선형적이자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신작에 더해 기존의 주요 작품을 함께 선보이는 변화를 꾀하였다. 스토리텔링이 강화된 전시 방식은 〈올해의 작가상〉이 4인(팀) 4색의 개인전 또는 (이른) 회고전과 어떤 점이 다르냐는 질문을 이전보다 더 무겁게 던지게 하였고, 이와 함께 ‘작가-심사위원 대화’에 뒤이어 발표되는 1인의 수상 작가는 〈올해의 작가상〉의 여러 단면 중 ‘수상’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게 하는 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경계하게 하였다. 전시 구성의 성격과 프로젝트 절차의 변화는 〈올해의 작가상〉이 전시로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되묻게 한다.

〈올해의 작가상〉의 절차와 틀을 뒤로한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4인(팀)의 작가다. 이들은 각기 다른 언어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한껏 확장하는 중이고 전시는 이들의 첨예한 문제의식을 최대한 근접한 거리에서 촘촘하게 엮어 관객들에게 선보일 의무가 있다. 《올해의 작가상 2025》는 4인(팀)이 가진 주제의 공통점보다는 태도의 공통점을, 전략의 다름보다는 방향의 다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느슨한 연대, 모호한 인접지대로 작가를 모으기보다 적극적인 배치를 제안하고, 이로써 일어날 후속의 과정을 기대해 볼 요량이다. 이러한 방향성에 맞춰 이번 전시는 한국의 전통 민속놀이 ‘사방치기’를 본뜬 가상의 놀이터로 작가들을 초대한다. 땅따먹기라고도 흔히 불리는 이 놀이는 땅에 선을 긋고 작은 돌을 던져 나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땅을 지킨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를 확보하는 것’을 뜻하기에 땅은 곧 ‘자아’이기도 하다. 땅따먹기에서 점유를 통한 ‘경쟁’을 온전히 지울 수는 없지만(이 전시도 마찬가지다), 그것만큼 중요한 가치로 ‘접면’을 들 수 있다. 예술에서의 점유는 더 많이 차지하는 것보다 어떻게 다른 것들과 맞닿고 그것들을 통과하느냐에 방점을 둬야 한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예외를 시도하고, 다른 이의 영역을 넘나들며 내 삶을 구축하는 일. 땅따먹기는 치열하면서도 열려 있는 놀이다. 그리하여 《올해의 작가상 2025》에서는 놀이와 규칙 사이의 긴장을 인정하면서도, 경쟁을 경합으로 해석하며 나아가 그것을 사회적 협상을 이끄는 유연한 상태의 움직임으로 읽는다.

놀이와 맞붙은 1, 2, 3, 4가 참여자의 수, 순위, 참여의 순서를 뜻한다면, 전시 속 1, 2, 3, 4는 네 작가의 실험이 도달한 장소적 인덱스와 관객이 밟게 될 좌표로 의미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올해의 작가상 2025》의 작가로 선정된 김영은, 임영주, 김지평, 언메이크랩이 던지는 돌은 어떤 선을 그려낼까? 앞서 말한 태도의 공통점과 방향의 다름을 생각한다면 이 작가들은 ‘경계에서 비가시적인 것을 찾되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자’로서 이곳에 모였다. 목적하는 바가 다른 이들의 놀이는 각자가 만들어 내는 경계선을 밟고, 지나가고, 머무는 방식을 체화하는 가운데 풍성해지지 않을까.

 

청취의 정치

김영은은 청취라는 행위를 작업의 중심에 둔다. 이때의 청취는 감각적 차원의 경험을 넘어 권력과 이데올로기가 교차하는 정치적 실천이며, 역사 속에서 구성되었고 또 지워진 다양한 목소리와 소리의 흔적을 되짚는 윤리적 접근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소리는 공간적이자 조각적인 매체로, 그리고 근대화가 촉발한 감각의 전환 속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사회적 장치가 된다.

(들리는) 소리와 (듣는) 청취가 어떤 힘을 불러올 수 있을까? 비언어적 음향 신호, 의미를 지시하지 않는 배경음, 혹은 제거의 대상이었던 잡음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청취의 행위는 역사에 기반한 기억과 그것의 빈자리를 메우는 상상력을 통해 실체를 획득한다. ‘소리 민족지학’이라 칭한 작가의 방법론은 특정 공동체의 청취 방식이 문화적·정치적 맥락과 어떻게 겹쳐진 채 형성되어 왔는지를 탐색하는 연구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이주’와 ‘번역’의 상황 속에서,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소리를 기억하고 감각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작가에게 디아스포라는 물리적 ‘이동의 결과’가 아니라 감각의 조건이 재구성되는 장이다. 낯선 환경과 소리에 둘러싸인 이들에게 청취는 늘 협상과 중재를 요구하며, 이들이 삶의 터전을 점유하고 세계를 해석하며 현실을 재구성하도록 적극적 실천을 끌어낸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각의 정치는 공포, 혐오, 소외뿐 아니라 회복, 연대, 저항의 가능성에까지 닿는다.

김영은은 청취를 지식 생산 방식의 한 형태이자, 탈식민화의 전략으로 본다. 그는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온 소리,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기술과 제도적 규범을 해체하며, 그 안에 감추어진 권력의 자취를 읽어 낸다. 이는 과거의 소리가 현재에 어떻게 들리는지를 질문하고, 미래의 청취자가 그것을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김영은은 우리에게 다르게 듣기를 청한다.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고, 그리고 그것들이 사라진 수많은 이야기의 후손들이라고 말이다. 그가 작업 속으로 불러낸 소리는, 결국 들리지 않았던 것을 듣게 하고, 들을 수 없던 존재들을 세계로 회귀시키는 예민한 정치적 감각의 산물이다.

 

믿음의 빈 곳을 채우는 서사

임영주의 작업은 언제나 ‘믿음’의 발생 조건을 묻는 데서 시작한다. 그는 한국 사회에 내재한, 오래된 미신과 현대의 과학기술이 만나는 지점을 추적하며, ‘믿음’이라는 비가시적인 에너지를 구성하는 구조를 성찰한다. 그의 예술은 어떤 신념이 믿음의 대상으로 부상하게 되는지, 그 믿음이 기술과 연결될 때 어떤 지각의 흔들림이 발생하는지를 묻는, 철학적이면서도 미학적인 시도다. 임영주는 개인의 서사와 집단의 기억을 중첩시키며, 전통적 미신, 유사 과학, 종말론, 최신 기술이 한 시공에서 유영하도록 만든다. 이 혼성적 작업은 다큐멘터리의 리얼리티와 연극적 장치를 넘나들고, 때로는 기술적 결함을 도구로 삼으며, 믿음의 경로를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재기술하는 일이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과학과 미신, 합리성과 비합리성, 신앙과 기술 사이의 경계들이다. 특히 과학의 언어가 풍기는 확실성의 신화를 풍자하듯, 그의 작업에는 반복, 오류, 중첩, 비약이 전략적으로 배치된다. 예컨대 알코올램프 위 돌에 손을 올리는 수행 행위를 과학 실험처럼 재현한 초기 작업에서는, 수행자의 신체적 고통이 영상 속에서 무한히 지속되며 과학의 객관성과 신앙적 차원의 헌신이 뒤섞인다(〈테스트_물질〉(2016)). 이때 과학은 권위를 잃고, 미신은 폐기·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포용과 유머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그는 ‘불확실성의 확실성’이라는 말로 근대 과학과 이성주의가 확언했던 이분법 자체가 믿음의 수사임을 들춰내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작가는 VR이나 인공지능 등 최신 기술을 적극 도입하여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탐구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때의 기술은 미래를 위한 최선의 해법을 제공하는 장치가 아니라 과거의 수련법과 나란히 놓인, 이미 실패한 기술로 재맥락화된다. ‘빈 무덤’을 생존의 방편으로 삼는 〈고 故 The Late〉(2023–2025)는 한국의 가묘假墓 풍습에서 착안한 것으로 관객들은 누운 채 유사 VR 환경을 경험하거나, 천장 모니터 속 늙다가 젊어지기를 반복하는 얼굴을 올려다보며 ‘땅’ 속에서 다른 차원(하늘, 죽음, 미래)을 경험하게 된다. 미신이 비이성적 욕망에 뿌리를 두었듯, 기술은 외부/외계로 뻗어 나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실현시켜 준다는 의미에서 ‘믿음’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임영주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갈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이동시켜 주는 ‘빈 무덤’을 “실제적 힘을 지닌 공간”이라 부른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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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전통으로 다시 쓰는 미술사

김지평은 ‘전통’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두 겹의 시간—과거와 현재—사이를 풀어헤쳐 상실된 것들의 잠재성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그가 탐구해 온 책가도·산수화·괴석도·장황 같은 동아시아 미술의 형식들은 결코 고정된 미술사적 범주가 아니라, 시대마다 다른 이해관계와 욕망이 덧칠된 가변적 매트릭스로 읽힌다. 김지평은 이 복합적 층위를 섬세하게 해체하면서 ‘동양화’ 자체를 질문하는 비평적 자세를 취한다.

그에게 ‘동양/서양’, ‘전통/현대’라는 이분법은 이미 뒤섞인 혼종의 과정이었다. 그 예로 〈책거리 그림〉(2001–2012)은 상류층의 ‘숭문주의’에서 비롯한 가부장적 영역을 현대 여성의 유희 공간으로 변형시켰고, 〈미채산수도〉(2006–2011)는 군사적 카무플라주 문법을 전통 산수화와 접목해 냉전과 개발의 풍경을 동시에 드러냈다. 작가는 ‘현대’의 상대로 ‘전통’을 읽거나, 잃어버린 전통을 채우는 방식으로 과거를 대하는 방식을 경계한다. 대신 그는 전통을 비어 있기에 열려 있는 공간, 그 틈새를 생산적 공백으로 보고 새로운 서사의 발상지로 읽는다. 그곳은 공인된 미술사에서 간과되거나 사라진 존재들이 쓰는 이야기로 가득 찬 공간이다.

그가 명명한 ‘재야의 미술’은 문헌, 지도, 민화, 신화, 소설, 영화 등에서 소환된 이들이 동시대와 조우하고, 충돌하며 겪을 혼란과 좌절감을 기대와 가능성으로 뒤바꾸어 줄 수 있는 능동성을 지녔다.

병풍의 각 부분을 부르는 명칭과 여성 한복의 구성이 같다는 점을 발견한 작가는 역사에서 주변화된 인물들—무당, 할머니, 여성 보컬, 조문객, 산책자—을 무대 위로 올려 분절된 목소리가 침묵 속에 울려 퍼지는 청각적 환영을 만들거나(〈다성多聲 코러스〉(2023–2025) 연작), 고대 동아시아 거북 신화를 호출해 우주적 시간과 생태적 위기 상황을 나란히 두기도 한다(〈코즈믹 터틀〉(2025)). 이때의 전통은 시간, 언어, 감각이 교차하는 다차원의 데이터베이스로 재정의되는데, 결국 그가 실험하는 ‘없는’ 전통은 부재 속에서 다시 쓰여야만 살아남고, 그 재서사화의 과정에서 비로소 동시대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전통의 단절을 애도하는 대신 불화와 균열을 지지하는 선언에 가깝다. ‘없는’ 곳을 보라. 그 곳이야말로 ‘없던’ 것들이 되살아나는 자리이다.

 

인간을 비추는 기계의 눈

언메이크랩은 기술 발전이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통념과 시각적 질서, 그리고 기술이 만들어내는 인간 중심의 인식 체계를 전복하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생태적 위기를 비추는 렌즈로 활용하면서도 그것이 그려내는 유머, 아이러니, 심지어 섬뜩함을 통해 기술 사회의 무의식에 더 깊이 침투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들은 기술을 신뢰하지도, 반기지도 않으며, 다만 그것들로 인해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칭해온 인식의 틀을 낯설게 하는 데 집중한다.

언메이크랩의 전략 중 하나는 ‘데이터셋-팅’이라 부르는 사변적 데이터셋 구축이다. 이는 통계적 학습을 위한 데이터셋을 단지 정보의 집합으로 보지 않고, 데이터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되묻고 감각적 균열을 주입함으로써 그것을 일종의 문화적 도구로 전유하는 행위다. 재난의 현장, 또는 신화의 영역에서 수집한 이미지와 데이터는 추출과 증강을 거쳐 재조직되고, 이 데이터는 인공지능 학습의 기반이 되어 엉뚱한 결과물을 생성한다. 수없는 ‘딥러닝’을 거쳐 뒤틀리는 이미지가 생성되는 세계. 이곳을 떠도는 인간의 세계를 반영하는 동물의 초상, 핫도그로 인식되는 케첩 뿌린 돌은 단순한 유머를 넘어서 인간의 인지 체계가 얼마나 기술과 허술하게 맞물려 있는지를 풍자하는 유령같은 사물이다. 예측과 기억, 가상과 실재가 비껴가며 만들어진 이와 같은 결괏값을 작가들은 ‘비미래’라 칭하는데, ‘비미래’는 기술이 상정하는 이상적인 미래 비전이 오히려 현재의 상태적 파국을 추동케 하는 시제이며, 자연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의해 어긋나고야 마는 좌절을 품고 있다. 당도하기도 전에 끝나 버린 비미래는 “피할 수 있는 장소와 시간 없음”의 실존적 차원이다.2

알고리즘이 인도하는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언메이크랩의 작업은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하려는 기술사회의 세계관을 비켜 묻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들이 구성한 ‘비미래’는 기술의 시제가 빠뜨린, 인간의 논리로 정의할 수 없는, 혹은 껍질만 남은 의미의 잔해들이 떠도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언메이크랩은 예술이 기술을 재감각하게 하는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때의 예술은 데이터가 놓치고 있는 세계를 되짚는 실험적 신탁이 된다.

땅따먹기는 명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칸과 칸 사이를 이동하고, 때로는 돌아가며 순환하는 놀이이다. 여기에서 돌이 닿지 않은 칸은 다음 기회를 허용하는 가능성의 공간이며, 이 놀이터는 참여자 모두를 위한 공유 자산으로서 혼자보다는 여럿일 때 그 가치를 더한다. 〈올해의 작가상〉이라는 이름이 ‘상’을 전제로 하지만, 이 전시를 통해 우리가 목격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누가 뛰어난가의 증명이 아니라, 누가 어디에서 출발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가에 대한 궤적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당신이 이 놀이터 위를 밟으며 우리와 함께 지도를 만들어 나가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5의 자리를 마련하였다. 돌을 던지는 행위를 하나의 시작으로 보는바, 당신의 돌이 네 작가가 그려 놓은 경계 위로, 그 바깥으로 나가는 탈주의 포물선을 그려내기를 희망해 본다.

 

 

1. 임영주, 작가노트 인용, 2025.
2. 언메이크랩 외, 『잠재공간 속의 생태학 : 재난, 생성신경망, 그리고 비미래』(서울: 미디어버스, 202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