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 포라스-김

갈라-포라스-김
갈라 포라스-김은 LA와 런던을 오가며 활동하는 작가이다. 작가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컨텍스트가 언어학과 역사학, 보존의 영역에 있는 소리, 언어, 역사와 같은 무형의 유산을 규정하고, 정의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박물관이나 미술관과 같은 기관이나 제도가 역사적으로 계승되어 온 관습과 형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는 한편, 유물과 오브제가 그들이 위치한 장소의 맥락을 설명하는 방식을 살펴본다. 갈라 포라스-김은 MUAC(멕시코시티), Kadist(파리), 아만트 재단(뉴욕), Gastworks(런던)과 CAMSTL(세인트루이스)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휘트니 비엔날레(2019)와 우랄 산업 비엔날레(2019), 광주 비엔날레(2021), 상 파울로 비엔날레(2021), 제주 비엔날레(2022-2023), 리버풀 비엔날레(2022-2023) 등에 참여하였다. 작가는 2019년 하버드 대학교 래드 클리프 연구소의 펠로우를 하였으며, 게티 리서치 센터(2022-2022)의 아트 레지던시에 참여하였다. 또한, 예일 미술대학 조각 학과의 시니어 크리틱으로 재직하고 있다.

Interview

CV

1984년생

교육

2012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교, 라틴아메리카학 대학원 석사, 미국

2009
캘리포니아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학 석사(MFA), 미국

2007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교, 미술과 라틴아메리카학 학사, 미국

주요 개인전

2023
《국보》, 리움미술관, 서울, 한국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 파울러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미국
《갈라 포라스-김》, 안달루시아 현대미술 센터, 세비야, 스페인
《이야기들 간의 간격》, 국립멕시코 대학교 현대미술관, 멕시코 시티, 멕시코

2022
《살아있는 오브제들을 위한 서신》, 세인트루이스 현대미술관, 세인트 루이스, 미국
《건조한 풍경을 위한 강수》, 하버드대학교 부속 존슨-쿨루쿤디스 갤러리, 케임브리지, 미국
《만기의 순간 나타난 영원한 흔적》, 가스워크스, 런던, 영국

2021
《우리를 속박하는 장소로부터의 영원한 탈출》,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 로스앤젤레스, 미국

2019
《오픈 하우스: 갈라 포라스-김》,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로스앤젤레스, 미국
《고대 기술의 시도들》, 헤드랜즈 예술센터, 헤드랜즈, 미국
《지표와 그 역사》,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 로스앤젤레스, 미국
《지표와 그 환경》, 레이버, 멕시코 시티, 멕시코
《돌/유물 프로젝션의 전망을 위하여》,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 로스앤젤레스, 미국
《오늘날의 무언의 오브제와 고대 이야기들》,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 로스앤젤레스, 미국
《휘파람과 언어의 변형》,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 로스앤젤레스, 미국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배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싶다》, 커먼웰스 앤드 카운슬, 로스앤젤레스, 미국

주요 그룹전

2023
《칼아트 페미니스트 아카이브》, 레드캣, 로스앤젤레스, 미국
《우모야: 잃어버린 것들의 신성한 귀환》, 리버풀 비엔날레, 영국
《선택된 기억들: 라틴아메리카 현대미술—파트리샤 펠프스 드 시스네로스 기증전》, 뉴욕 현대미술관, 뉴욕, 미국
《사변적인 충동: 아카이브로 변화하는 미술》, 컬럼비아 대학 부속 왈라흐 아트 갤러리, 뉴욕, 미국

2022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 제3회 제주비엔날레, 제주, 한국
《문화적 미술관의 두 개의 입장문》, 시빌타 박물관, 로마, 이탈리아
《쉰들러 가의 100년의 역사》, 마크 센터, 로스앤젤레스, 미국
《송출된 과거, 유산의 극장》, 카디스트, 샌프란시스코, 미국

2021
《어둠 속에서도 나는 노래한다》, 제34회 상파울루비엔날레, 상파울루, 브라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제13회 광주비엔날레, 광주
《손의 곡물: 흑연 드로잉》, 시카고 현대미술관, 시카고, 미국
《NOT I: 복화술 (1500 BCE–2020 CE)》,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미국
《포털》, 네온, 아테네, 그리스

2020
《어울리지 않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접근하는 컬렉션》, 브루클린 미술관,뉴욕, 미국

2019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해머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미국
《다이렉트 메시지: 미술, 언어, 그리고 힘》, 시카고 현대미술관, 시카고, 미국
《불멸》, 우랄 인더스트리얼 비엔날레, 예카테린부르크, 러시아 휘트니 비엔날레, 휘트니미술관, 뉴욕, 미국
퓨처 제너레이션 미술상 후보 전시회, 키이우, 우크라이나
《동물들을 위한 오페라》, 파라 사이트, 홍콩/록번드 미술관, 상하이, 중국
《분실물 센터: 새로운 세계의 상상》, 싱가폴 현대미술학회, 싱가폴

2018
《실천에게 말하기: 아메리카의 미술, 교육학, 행동주의》, 시카고 예술대학, 시카고, 미국
《두 번째 시야》, 보든 칼리지 미술관, 브런즈웍, 미국

2017
《미래 과거를 위한 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 서울, 한국
《불명예의 유니버설 역사》,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미국

2016
《미래에서 온 편지: 외국인 노동자의 일기》, FRAC 페이 드 라 루아르 컬렉션, 페이 드 라 루아르, 프랑스
《아직》, 제44회 콜롬비아 예술인 살롱, 페레이라 미술관, 페레이라, 콜롬비아
《메이드 인 엘에이 2016》, 해머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미국

펠로십/레지던시

2022
시빌타 박물관, 리서치 펠로십, 로마, 이탈리아

2020–22
입주작가, 게티 연구재단, 로스앤젤레스, 미국

2021
델피나 파운데이션, 런던, 영국

2019–20
레드클리프 학회 펠로십, 하버드대학교, 캠브리지, 미국
라 탈레라, 쿠에르나카바, 멕시코
베타 로컬, 더 하버, 푸에르토리코

2018
헤드랜즈 미술 센터, 헤드랜즈, 미국

2016
제30회 FRAC 아틀리에 레지던시, 페이 드 라 루아르, 프랑스
카레예스 파운데이션 레지던시, 카레예스, 멕시코
카사 와비, 오아하카, 멕시코

2015
트라이앵글 프랑스 프랑스, 마르세유, 프랑스

2010
스코히건 회화 및 조각 학교, 매디슨, 미국

수상

2021–25
윌셔/웨스트우드 역 정문 메트로
커미션, 로스앤젤레스, 미국

2019
아트 매터스 파운데이션, 뉴욕, 미국
토머스 실먼 밴가드 어워드, 빈센트 프라이스
미술관, 몬테레이 파크, 미국
퓨처 제너레이션 미술상 후보, 키이우, 우크라이나

2017
아터디어, 뉴욕, 미국
레마 호트 만 파운데이션, 뉴욕, 미국

2016
조앤 미첼 파운데이션, 뉴욕, 미국

2015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 파운데이션, 뉴욕, 미국

Critic 1

만물: 갈라 포라스-김의 작업에 대하여

시아오유 웡

 

하늘과 땅이 온전히 상호작용하고 만물이 막힘 없이 소통한다. 위와 아래에 있는 것들이 온전히 상호작용하며 그 뜻이 하나가 된다.

- 『역경』의 태괘에 대한 해설

사람이 죽으면 역사가 된다.
조각상이 죽으면 예술이 된다.
이 죽음의 식물학을 우리는 문화라고 부른다.
조각상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필멸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돌로 만든 얼굴이 부서져 땅에 떨어진다.

하지만 역사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사물은 그것을 바라보는 살아있는 시선이 사라지면 죽는다.

- 알랭 레네, 크리스 마커, 지슬랭 클로케 감독의 영화
「조각상도 죽는다」(Statues Also Die, 1953)의 내레이터

 

1.
여행 가이드가 문을 밀어 열자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칠흑같이 어두워서 다른 감각, 특히 방향 감각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과 폐소공포증이 더 커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둠은 이미지일까?
눈이 적응하기 시작하자 미묘한 세계가 펼쳐졌다.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벽화와 조각품에 그려진 이미지들이 나타나자 마치 동굴이 나를 삼키고 내가 쭈그러들어 동굴 안쪽에 들어와 앉은 것처럼 위쪽과 주변을 모두 아우르는 원근감이 생겼다. 감각이 계속 적응하면서 이미지의 디테일이 드러났다. 이 동굴의 벽화에는 수많은 신화 속 인물과 종교적 상징 외에도 “깨달음을 얻은 오백 명의 도적”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중요한 카르마 이야기가 담겨 있다. 동서 방향으로 두루마리처럼 길게 펼쳐지는 벽화를 통해 인도 남부의 고대 코살라 왕국에서 도적들이 소란을 일으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군대에 붙잡힌 도적들은 눈을 파내는 형벌을 받는다. 도적들은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고 반쯤 옷이 벗겨져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피가 주위에 튀고 통곡하는 모습이다. 큰 고통을 당한 도적들은 야생의 숲으로 쫓겨난다. 그런 다음 이야기가 전환되어 부처가 나타나 마법의 가루를 이들의 눈에 불어넣어 시력을 회복시킨다. 도적들은 불교도로 개종한 후 산속에서 수행과 명상을 하며 결국은 모두가 깨달음을 얻는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줄곧 흥미로웠던 것은 불교의 카르마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이야기 중에서 시력 상실과 회복이라는 부분과 내 신체적 경험이 묘하게 일치한다는 점이었다. 만약 내가 그 혼란스러운 어둠 속에서 일시적으로 시력 상실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동굴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폭이 완전히 다를지 궁금했다. 감각이 달라졌을까? 다르게 지각했을까?


2.

나는 이번 여행이 시작될 때부터 갈라 포라스-김 작가의 작품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당시 그는 2023년 <올해의 작가상> 후보작으로 세 폭짜리 그림 <세월의 녹이 슬어가는 무게>(2023)를 막 완성한 상태였다. 세 점의 대형 드로잉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고창 고인돌 유적지의 고인돌 하나를 상상과 현실의 시점에서 그렸다. 언뜻 보기에 첫 번째 그림은 아무런 내용도 없는 단순한 칠흑 같은 이미지로 보이며, 연필의 흑연으로 여러 겹 칠한 반사적인 금속성 표면만이 그 물성을 드러낸다. 두 번째 그림은 나무와 덤불, 야생화가 고인돌을 감싸고 있는 풍경 속에 고인돌을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흑백 묘사한 작품이다.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는 작은 판에 ‘2408’이라는 숫자와 한글 문구가 부분적으로 잡초로 가려져 있다. 마지막 그림은 세 작품 중 유일하게 다채로운 색이 들어간 작품이며, 괴상한 영역으로 관객을 끌어당긴다. 완전한 형태를 이룬 것이 없이 얼룩덜룩하고 다양한 패턴이 추상적인 드로잉 같기도 하고 유기적인 미시 세계를 표현한 렌더링 같기도 하다.
작가가 밝힌 의도는 고창 고인돌 유적지의 동일한 고인돌에 대해 세 가지 다른 관점을 추측하고 가정하는 것이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은 두 개 이상의 직립 돌이 수평 석판을 받치고 있는 고대 거석 구조물로,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에 무덤이나 묘실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창 유적은 민무늬토기 시대(기원전 1500년 경부터 300년 경까지 지속)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440여 개의 고인돌이 약 100㎢의 면적에 흩어져 있다. 2000년에 화순, 강화 유적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각각 2주, 2개월, 4개월에 걸쳐 완성한 포라스-김 작가의 작품에서 검은색 드로잉은 이 고인돌 밑 땅속에 묻혔을 법한 죽은 사람의 시점을, 색연필과 밀랍 드로잉은 자연의 시점을, 추상적으로 보이는 색 패턴은 곤충과 동물 및 수천 년 동안 돌에 붙어 자라는 이끼의 시점에서 묘사한 것이며, 풍경 속 고인돌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은 인간의 인식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부분적으로 덮여 있는 번호판은 실제로 이 공원에서 2408호 고인돌의 번호를 표시하는 유네스코의 라벨이다.
여기서 포토리얼리즘과 추상은 대립되지 않는다. 기존의 미술사적 시각 분석 용어로 설명하면, 컬러 드로잉과 검은색 드로잉은 모두 형식적으로 추상적이다. 하지만 포라스-김의 작품에서 이들은 우리에게 무형으로 경험되는 ‘존재’를 ‘사실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비구상적으로 보이는 것이 온전히 접근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정보를 보완하려 시도한다. 나란히 전시된 세 점의 드로잉은 다양한 공간적, 시간적, 경험적 차원이 얽혀 있는 세 가지 현실을 보여준다. 이 그림들은 상상이지만 허구라고 하기는 어려우며, 사람의 인식이 가지는 한계 때문에 인식되지 않은 부분을 사실로 입증할 수 없을 뿐이다.
포라스-김은 이전에도 메소아메리카의 고대 도시에 있던 피라미드 안의 어둠을 재현한 <테오티우와칸 태양의 피라미드 꼭대기의 도굴된 구덩이에서 보이는 두 개의 별> (2019), 영국박물관 소장품인 4,500년 된 이집트 석관 내부를 묘사한 <마스타바 풍경>(2022) 등 고고학 유물이나 유적지를 탐구하는 다른 시리즈에서도 검은 드로잉과 유사한 작품을 제작한 바 있다. 제목과 크기가 다르고 자세히 보아야만 볼 수 있는 다양한 연필 자국을 제외하면 흑연으로 그린 이 작품들은 거의 동일하게 보인다. 유머러스하게도 포라스-김은 고인돌 무덤 아래, 피라미드나 석관 안에 누워 있는 죽은 사람(혹은 우리가 죽었다면 우리 자신)이 어떤 장면을 볼지 함께 상상해 보도록 초대했다. 나아가, 역사를 기록하고 지식을 구성할 때 어둠은 인간 인식의 한계와 제약을 묘사하고 우리의 시야를 가리는 사각지대를 가시화한다. 이 세 개의 검은 드로잉은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중심이 되어 포라스-김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연결한다. 이 작품들은 고대 영혼의 주체성과 잠재력을 존중하고 인정할 뿐만 아니라, 다른 경험과 현실의 다공성(porosity)과 다양성을 통해 우리의 상상력을 끌어내는 정신적 풍경 또는 입구의 역할을 한다.
초기의 일부 작품에서 포라스-김은 예술적 제스처를 사용하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연결하고 시각을 다른 형태의 지각 감각, 특히 서구의 고전적 틀과 유럽의 근대성을 벗어난 방식으로 형성, 기록, 유통되는 지식으로 번역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휘파람과 언어의 변형>(2012) 프로젝트를 위해 포라스-김은 멕시코 사포텍 원주민이 사용하는 멸종 위기의 성조 언어 사포텍어를 배우기 위해 노력한 내용을 담은 비닐 레코드를 제작했다. 오악사카에서 유래한 사포텍어는 최근까지 문서 기록 없이 구전으로만 전해져 왔다. 사포텍어는 성조가 강한 언어로, 단어의 내용이 말의 억양에 일부 포함되어 있어 음색만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고 휘파람으로 단어를 모방할 수 있을 정도이다. 사포텍어가 세계 유일의 휘파람 언어는 아니지만, 스페인 식민지배자들에 대한 저항 전략으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원주민들은 휘파람으로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대화를 음악적인 표현으로 위장했다. 포라스-김은 자신이 직접 휘파람 부는 소리를 녹음하고 나아가 그 소리를 음표로 변환했다. 이와 유사하게, <근육의 기억>(2017)은 음악이나 리듬, 외부의 단서 없이 한국 전통춤을 시도하는 무용수의 실루엣을 기록한 영상 작품이다. 반복적인 몸의 움직임으로 형성된 근육의 기억은 지식을 보존하고 보관하는 그릇이 된다. 매번 다른 무용수가 다른 체형과 해부학적 구조, 안무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연기하고 움직이면서 특정 지식은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조정된다. 여러 면에서 이와 유사하게, 구전 전통을 통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얼굴의 움직임과 혀와 입술을 비틀고, 접고, 치아를 건드리고, 침을 모으는 촉각을 통해 개별적인 근육의 기억을 만들어 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휘파람과 언어의 변형>, <근육의 기억>은 모두 집단적 역사와 비물질적 기록에 내재된 개인적 경험 사이의 역동적인 긴장을 시적으로 드러낸다.


3.

포라스-김의 작업은 서구 인식론과 식민지적 프로젝트의 인간 중심적 경험과 인류세적 입장에 일관되게 도전한다. 이를 위해 그는 인간이 아닌 사물과 인간의 유해, 먼지, 박테리아, 곰팡이 같은 색다른 개체를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말하는 “자연과 문화 사이의 (연속성 또는 불연속성의) 관계”1를 뒤흔들고 풀어내기 위해 사물을 “질서화”한다. 포라스-김의 작업은 강력한 인류학적 충동을 담고 있으며, “인류가 발명한 자연과의 매개 체계로서 문화 또는 문화들…은 기술 능력, 언어, 상징적 활동, 생물학적 유산으로부터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집단적 결집 능력을 포함한다”는2 필리프 데스콜라(Philippe Descola)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포라스-김이 자연과 협업하는 방식은 단순히 비인간적인 의식을 낭만화하거나 인간적 현실을 도피하는 통로로 기능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우리의 인류학적 관점에 좌우되는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는 분류 체계, 과학적 패러다임, 기술적 매개, 미적 형식, 종교적 신념 등으로 자연을 대상화하는 문화적 암호화 장치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 따라서 신체, 사물, 환경에 대한 예술적 조작과 재현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구조의 이해에 접근하는 수단이다. 포라스-김의 작업은 서구 인식론이 강요하는 자연과 문화 사이의 대립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더욱 결정적으로는, 자연물과 사회적 존재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데 사용되는 개념적 도구를 역동적으로 재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마이크로바이옴, 빗물, 주변 습도 등 포라스-김이 협업을 위해 ‘초대’하는 ‘자연 요소’는 물론 항상 존재해 왔다. 우리가 흔히 무시하는 수많은 곰팡이, 박테리아, 기타 미생물들은 우리보다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우리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이들은 손님이 아니라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주인이다. 현재 작업 중인 <만기의 순간 나타난 영원한 흔적> 시리즈(2022년까지 진행)에서 포라스-김은 영국박물관 수장고에서 수집한 곰팡이 포자를 세균 배양액에 적신 모슬린 천에 증식시키고 아크릴 진열장에 넣어 번식하도록 유도한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솜털이 있는 회색-갈색-녹색의 곰팡이 포자가 서서히 자라나면서 텅 빈 천을 풍성한 미시적 세계로 변화시키며 살아있는 그림으로 만든다. 이는 미술관의 보존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부분으로, 포라스-김이 이야기하듯,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곰팡이 포자가 소장품을 갉아먹었다.” 지질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인 얀 잘라시에비치(Jan Zalasiewicz)의 흥미로운 의견을 고려해보자. 그는 미래의 외계인 발굴자들은, 우리가 거대한 공룡 골격을 쥬라기 시대를 대표하여 박물관에 전시해 놓은 식으로 인간을 복원하고 숭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지구의 지배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 추측한다. 대신, 아직 태어나거나 도래하지 않은 탐험가들은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안정적이고 기능적이며 복잡한 생태계를 유지해 온) 무수히 많은 마이크로바이옴과 미생물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다.3 포라스-김의 접근 방식은 잘라시에비치의 명제를 반영하는 것으로, 역사적 사실로 보이지만 종종 편향되고 무지한 관념을 구축하기 위해 무시되고 생략 혹은 경시되는 삶을 인정하고자 한다. 2억 년 전 최상위 포식자 공룡이 사라졌을 때 그랬듯이 혹은 미래에 인간이 사라진다면 세상은 살아 있는 태피스트리 안에 새로운 색과 구성을 선보일 것이다. 작가는 그와 마찬가지로 “공간 안에서 곰팡이를 다시 자라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 사물들이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잘라시에비치는 아직 인간을 사라지게 놓아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는 미래의 발굴자들이 경외감과 존경심을 갖기를, 지구의 역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인류의 유골에 여전히 매력을 느끼기를 바란다. 포라스-김과 협업한 국립광주박물관의 신원 미확인 유골 2구를 비롯해 오늘날 박물관 소장품에는 인간 유해가 적지 않다. 수백 년 전 난파선에서 발견된 이 유골은 신창동43이라는 분류 코드로만 식별되는 연구 대상으로, 인간성이 박탈된 채로 박물관에 보관되어 왔다. 이러한 제도적 관행에 흥미와 문제의식을 느낀 포라스-김은 이 유물들의 권리를 죽은 자들의 몸이 가지는 권리로 돌려놓으려 한다. 그는 많은 문화와 우주론에서 “죽은 후에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될지 결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당사자의 특권이 돼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박물관은 언제든지 인류의 존재를 인식할 능력이 있으며, 그렇게 해야 한다.4 포라스-김은 무늬를 만들어 영혼과 소통하는 주술 행위인 ‘네크로맨시’를 사용하여 고인에게 자신들의 유해가 박물관이 아닌 어디에 묻히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네크로맨시는 종이 마블링 기법을 통해 이루어지며, 종이를 물그릇에 담근 다음, 물에 잠긴 종이에 잉크를 떨어뜨려 줄무늬와 소용돌이를 만든다. <우리를 속박하는 장소로부터의 영원한 탈출>(2022)에 보이는 결과 이미지는 작가가 지형을 도표화한 ‘잠재적 풍경’을 보여준다. 비록 이미지가 추상적이고 죽은 자의 소망에 대한 명확한 답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포라스-김은 의례적인 절차를 구성하여 그들의 사후 세계를 존중할 수 있다.
어쩌면 추상적인 이미지는 다른 종류의 길 찾기 도구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경험적 차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다른 척도나 영역의 의식에는 더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고인돌에 대한 자연의 시각을 담은 <세월의 녹이 슬어가는 무게>의 컬러 드로잉과 유사하게, <우리를 속박하는 장소로부터의 영원한 탈출>은 인간의 경험으로는 상상하지 못하는 이질적인 방식으로 작은 유기체와 생명체가 상호작용하고 번성하는 소우주의 풍경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가장 통제된 보존 조건에서도 유기체의 유해는 곤충을 통해서나, 박테리아나 균류의 성장 또는 점진적인 화학적 분해와 산화의 영향으로 인해 박물관이나 기타 보관 시설에서 계속 분해된다. 어쩌면 고인의 영혼은 박물관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 호수, 바위, 토양, 그리고 수많은 지층과 유기물과 무기물, 생물과 무생물이 겹겹이 쌓인 곳에서 쉬며 진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4.

서양 인식론이 강요하는 자연과 문화 사이의 이분법적 대립을 재협상하기 위해 포라스-김이 사용하는 개념적 도구는 종종 현대 과학 기술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의도적으로 이해를 거부한 채) 미신, 비합리성 또는 원시성으로 성급하게 비난해 온 관행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한다. 포라스-김은 죽은 자와의 소통을 용이하게 하는 것 외에도 증발, 습기, 흙, 먼지 등 작가가 “기관 내에 물리적, 비유적으로 갇혀 있는”5 것으로 간주하는 다른 ‘영혼’을 소환하고, 기관의 큐레이터와 보존전문가와 협력하여 의례와 예식을 기획하는 등 이들을 밖으로 내보낼 ‘유익한 환경’을 조성하여 박물관 유물의 영적 생명을 회복하고 억압된 마술적 힘과 능력을 일깨우는 작업을 한다.

포라스-김은 <신호 예보>(2021-진행 중)에서 예술 작품을 탄생시키는 예언 같은 과정을 설정했다. 제습기가 전시 공간에서 주변의 물을 빨아들이고, 물이 고이고 응축되면서 천장에 매달린 흑연 가루를 담은 삼베 시트를 통과해 바닥에 놓인 빈 캔버스 패널에 떨어지면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예언으로서의 예술 작품이 탄생한다. 동아시아 수묵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때로는 즉흥적이고 유동적이며, 때로는 혼란스럽고 활기찬 텍스트 같은 깊이와 먹물의 겹침은 전통적인 화이트 큐브 갤러리든 역사적인 수도원이 미술관으로 바뀐 곳이든 특정 장소에 대한 예언을 드러낸다. <건조한 풍경을 위한 강수>(2021)에서 작가는 동굴이 밀집한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위치한 마야 문명의 신성한 동굴 치첸이사 세노테 발굴의 험난한 역사를 들여다본다.
마야인들은 이 천연 동굴을 세속 세계와 저승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마야의 비와 천둥의 신 차크가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곳으로 믿었으며, 이곳은 비의 신이 접근할 수 있도록 의례에 따라 시신과 장례용품을 매장하는 장소가 되었다. 20세기 초 고고학 발굴의 일환으로 동굴을 준설하고 유물과 유해들을 수습하여 하버드대학교의 피바디 고고학 민속학 박물관이 소장하게 되었다. 이 시리즈 작업에서 포라스-김은 (고고학 발굴 시 유물이 제거된 빈 공간을 다시 채우는 데 사용되는) 나무에서 추출한 수지인 코팔을 피바디 박물관의 수장고에서 채취한 먼지와 혼합하여 직사각형 조각이나 큐브를 만들기도 한다. 플랫폼이나 받침대 위에 놓인 이 오브제에는 매일 의식적인 절차를 통해 수집된 빗물을 뿌리는데, 그 형식과 참여자는 전시 기관에서 해석하고 결정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조각품은 새로운 생명을 얻어 제물로 바쳐진 유물 및 유해와 마야 문명의 비의 신을 다시 만나게 한다.


5.

지구화학자 블라디미르 베르나드스키(Vladimir Vernadsky)는 생명 자체를 끊임없이 일어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베르나드스키는 심오한 지질학적 시공간에서 이야기하며, 포라스-김의 작업은 이를 반영한다. 작가의 작품에서는 자연적 시간, 경험적 시간, 죽음의 시간, 영적 시간, 부패의 시간, 박물관의 시간, 역사적 시간이 서로 얽히고 충돌하면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예술적 구성이 되어 간다. 한편으로 포라스-김은 본질적으로 개념 예술가이기는 하지만 결코 기존의 개념주의자가 아니다. 번뜩이는 통찰처럼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개념적인 제스처에 불과한 아이디어는 중요하지 않다. 반면에 고도로 연구에 기반한 포라스-김의 작업은 연구 주제를 단순히 시각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대신 과정과 재료가 매우 중요하며, 주제, 매체, 주변 인프라, 참여자 및 관객 안에 미학의 정치가 내재되어 있어 작업의 복잡성과 깊이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연필과 흑연을 이용한 드로잉을 핵심 매체로 선택한 것은 의도적이다. 작가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가장 접근하기 쉽고 다양하게 활용 가능한 미술 재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의 의도대로 결과물은 스케치, 습작, 특히 ‘전통적인’ 유화에 대한 반항으로 존재하며, 이는 잠재적으로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를 고려할 때 거창하고 대단한 예술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6 포라스-김은 손쉽게 다룰 수 있는 종이와 연필 드로잉을 수단으로 연습하며 드로잉 소재로부터 배움을 얻는다. 드로잉은 대부분 사진 자료를 바탕으로 묘사 대상의 원래 스케일과 유사하게 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을 통해 포라스-김은 소재의 균열과 패턴의 작고 독특한 디테일을 관찰하고 연구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와 상대적인 대상의 크기이든, 공들여 오랜 시간 작업하며 반복적인 움직임이 필요할 때의 신체적인 지구력이든) 특정한 한계에 도달하며 이를 시험해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포라스-김의 드로잉 과정은 수행적이 된다. 즉 드로잉 과정이 하나의 의례가 되는데, 마치 <건조한 풍경을 위한 강수>에서 빗물을 뿌리는 것과 유사하게, 대상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 대상을 위해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현실을 적극적으로 재생산하고 재구성한다.


6.

당연하게도, 포라스-김이 역사적 유물뿐만 아니라 박물관 및 기관 운영의 다양한 측면에 통찰력 있고 재치 있게 관여한 점을 고려할 때, 작가의 작품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 대부분은 과거와 현재 진행 중인 식민주의를 감안하는 시대에 유물의 송환과 그것이 박물관학, 문화유산, 정책 결정 면에서 가지는 관계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1953년 프랑스 고전 영화 「조각상도 죽는다」는 이러한 문제를 처음으로 널리 유포되는 형식으로 알렸으며, 가장 중요하고 광범위하게 인용되는 작품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감독 알랭 레네(Alain Resnais), 크리스 마커(Chris Marker), 지슬랭 클로케(Ghislain Cloquets)는 아프리카의 의례용 유물 및 영적 유물을 수집한 유럽 박물관의 렌즈를 통해 식민주의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영화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이유로 프랑스 국립영화센터의 검열을 받아 1964년까지 프랑스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못했다. 포라스-김은 이 영화와 많은 감성을 공유하는데, 특히 역사적 유물이 본래, 어쩌면 더욱 중요하게, 의례용 사물과 영적인 사물로서 다양한 삶을 살았다는 점을 인정한다. 분명히 오늘날 박물관 관행은 많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는 유산, 즉, 식민지 시대의 특정 기술과 서구 기관들에 내재된 인식론에 속하는 낡은 구조를 반영하며 실제로 지속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반환이란 유물을 물리적으로 원소장처나 원산지로 돌려보내는 지리적 의미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포라스-김은 이것이 사실과 거리가 멀고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문화적 정체성 회복, 법적이고 윤리적인 체계의 재구성, 역사적 부당함과 식민지 착취, 문화 제국주의를 바로잡는 화해, 역사 다시 쓰기 등으로 단순한 지리적 국경과 민족국가 정치를 넘어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포라스-김의 작업은 개념적 구조를 만들고 수행적 반복과 지속을 통해 과정에 집중함으로써 이러한 중요한 문제를 둘러싼 문화적 규범, 정체성, 사회 구조를 형성하고자 한다. 그의 작업은 일상과, 주체와 통합되어 경계를 넘나들고 삶과 죽음을 연결하며 다양성을 열어준다.
집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고비 사막에서 천 년 역사의 모가오 동굴을 거닐면서 포라스-김의 작품을 떠올리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 Michel Foucault, The Order of Things (London: Routledge, 1975), 412.
2 Philippe Descola, The Ecology of Others, trans. Geneviève Godbout and Benjamin P. Luley (Chicago: Prickly Paradigm Press, 2013), 35.
3 Jan Zalasiewicz, The Earth After Us: What Legacy will humans leave in the rock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191-218.
4 데프네 아야스, 「갈라 포라스-김, 우리를 구속하는 장소로부터의 영원한 도피」, 제13회 광주비엔날레, https://13thgwangjubiennale.org/ko/artists/gala-porras-kim/.
5 A terminal escape from the place that binds us, Commonwealth and Council, November 6 – December 18, 2021, https://commonwealthandcouncil.com/exhibitions/a-terminal-escape-from-the-place-that-binds-us/press.
6 갈라 포라스-김, 줌(zoom)을 통해 이루어진 필자의 대화, 2023년 9월.

Critic 2

죽음의 캐비닛 너머 살아있는 시간들

김현진

 

“확실히 박물관의 관습에는 지극히 야만적인 것이 있다 ”1
모리스 블랑쇼

 

시멘트 석벽 구조물, 고대 유물과 그림자 춤을 추는 여성 실루엣의 비디오, 바위와 유물을 위한 비트린, 연필 소묘 드로잉과 깊은 어둠의 면을 담는 평면 작업들, 큐빅 오브제, 유적지 주변의 지형을 본뜬 조각물과 필드 레코딩, 얼룩과 추상 사이의 회화, 고대 무덤에서 꺼낸 무겁고 육중한 관 짝, 거대한 커튼에서 떨어지는 얼룩 설치 등, 마치 서로 다른 작가의 작업으로 구성된 미술관의 회랑에 들어온 듯, 갈라 포라스 김의 작업들은 드로잉, 조각, 비디오, 설치, 사운드 등의 다양한 매체와 방법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작가는 지난 십 년여간 박물관의 유물이나 유적지, 고대 건축물들이 원래 존재하던 방식에 깊은 관심을 두고 조사하고 그들이 있던 자리와 방식으로의 되돌아 가는 것에 대한 고민들을 다양한 작업안에 담고 귀결시켜 왔다. 작가가 특정 유물과 유대를 맺고 사고하고 그것들의 본래적 위치를 환기하고자 여러 숙고를 통해 자유로이 선택된 작업은 드로잉, 조각과 같은 물질적인 형태를 통하기도 하고 혹은 비물질적인 소리, 비디오의 움직임을 통하기도 한다. 또한, 곰팡이의 번식과 공기중 습기 등을 작품이 전시되는 기간에 시간의 변화와 더불어 가시화하면서 전시장 내에 다른 생명과 주인공들을 하기도 노출시킨다. 그렇다면 바로 이 다양한 작업의 외형들을 관통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특히 마야문명, 이집트, 고인돌 등 주로 매우 오래된 고대의 유적 내에서 발견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테오티우와칸 태양의 피라미드의 제의 요소들의 재구성을 위한 제안>(2019)은 석조 유물 모조품 두 점과 함께 작가가 멕시코시티의 국립인류학역사연구소 전시 담당 코디네이터에게 보낸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신들의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멕시코 테오티우와칸 지역은 유명한 거대 피라미드 유적지로 그중 태양의 피라미드는 태양의 위치를 계산하는 용도로 천문학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신비로운 고대 건축물이다. 이 피라미드 정상에는 제의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거석 두 점이 존재했는데 전시나 보존을 위해 박물관으로 옮겨져 꼭대기에 두 개의 구멍만 남았 있는 상태이다. 이 작품의 두 점의 거석 모양은 바로 작가가 연구소의 허락을 받아 만든 복제품들이다. 그리고 함께 전시된 편지는 작가가 연구소에 보낸 것으로, 포라스-김은 이 구조물들에 내재된 제의적 의미들을 되살리는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하며 거석이 있었던 원래 위치에 자신이 만든 복제품을 놓을 것을 제안하고 있다. 작가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에서 봤던, 이 거석들을 전시하기 위해 건축물 재구성 등 많은 노력이 투여되었던 점을 언급하며, 그 보다 우리는 실제 거석의 원래 초월적인 제의적 의미와 그 의미와 맞닿아야 할 대상들과의 관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작품과 나란히 놓인 <테오티우와칸 태양의 피라미드 꼭대기의 도굴된 구덩이에서 보이는 두 개의 별>(2019)은 어두운 태양의 피라미드 내부에서 바라본 밤하늘을 연필 흑연을 통해 재현한 회화이다. 마치 모노크롬 평면 같은 이 작품은 긴 시간 천천히 반복적인 연필 움직임을 통해 작가가 인내심을 가지고 채워나간 것이다. 이 칠흑 같은 어둠은 신을 위한 도시였던 테오티우와칸과 피라미드에 담긴 우주론을 두 개의 별과 함께 시적으로 소환한다. 작가가 얇은 흑연으로 하나하나 메꾼 화면의 시간은 불가능을 넘어 하나하나 막대한 노력으로 구축한 거대한 피라미드를 통해 간절히 도달하고자 했던 신성과 영속 그리고 그 심연의 시간을 불러들이고 있다.

고인돌은 인류사상 가장 오래된 원시시대의 무덤이다.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2023)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를 위해 새로이 제작된 작품으로 전라북도 고창에 남겨진 선사시대 거석문화인 고인돌을 방문, 조사하여 만든 작업이다. 약 500개가 넘는 집중된 거석문화 속에서 장례, 제례의식을 살필 수 있는 고창 고인돌은 2000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지만, 고고학적 평가 이전에는 오랜 세월 마을 주민들이 고추와 채소를 햇빛에 말리거나 빨래를 널어 두기도 하는 일상의 공간이기도 했다. 이렇듯 작가는 시간 속에서 고인돌이 통과하는 상이한 존재방식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세 개의 서로 다른 고인돌을 둘러싼 존재들, 그리고 그들과 관련되는 장면을 세 폭 재단화 형식으로 재현 혹은 개념화한다. 첫 번째 평면은 바로 원래의 무덤으로서의 고인돌을 환기하는, 고인돌 내에 잠든 시신의 시선에서 바라본 내부로 즉 칠흑 같은 석관 내부의 어두움을 담은 흑연 드로잉이다. 두번째는 역사적 유적이자 관광 자원으로 보존되고 있는 현재의 고인돌을 직접 묘사한 그림이며, 마지막은 고인돌 표면에 살아있는 생물인 이끼를 확대하여 그린 그림이다. 즉, 고인돌 전체 형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대비적으로 놓인 두 점의 회화는 추상적 회화로 보이지만 사실적 실재를 재현하는 것으로 하나는 개념적으로 시간을 초월한 죽음의 시각과 다른 하나는 새로운 시간을 부여하는 생명과 소통한다.


박물관의 고통2

“박물관은 그야말로 상징적인 적대 장소가 된 것이다. 추상과 요약만 집중적으로 하는 작업장, 한마디로 가장 폭력적이고 가장 모욕적인 장소가 된 것이다. 이 곳은 장소 아닌 환경이며, 세계 밖의 세계이며, 공기도 없고 빛도 없고, 생명도 없는 곳인데 이상하게 사람을 가둬 놓는 곳이다.”
모리스 블랑쇼, 「박물관의 고통」 중3

 

<영국 박물관의 5세기 경 기자 석관을 위한 일출>(2020)은 영국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5세기 파라오나 귀족들이 안치되었던 이집트 사르코파구스(시신을 담는 상자, 석관)가 고대 관습을 따라 동쪽을 향하도록 위치시킬 것을 제안한다. 바닥의 화살표는 현재 박물관에서 얼마나 관이 회전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시이며, 제작된 복제 석관은 작가의 전시 안에서는 실제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놓여져있다. <마스타바 풍경>(2022)은 이전의 흑연 회화와 마찬가지로 박물관 불빛 아래에서 지워져 있는 석관 내부에 잠든 사자의 시각- 자신의 동쪽 마스터바를 향해 놓인 관 속의 깊은 어둠을 그려내고 있다. 이 작업들은 작가가 2021년 런던의 델피나 재단 레지던시를 통해 영국 박물관의 고대 이집트와 누비아 장례 문화와 관련된 소장품을 접하고 조사하면서 시작되었다. 작가는 역시 영국 박물관에 네켄프트카 화강암 조각의 유리 진열장을 둘러쌀 수 있는 고대 사막 그림을 석상을 위해 함께 전시할 것을 제안하며 다름과 같은 편지를 띄운다.

“영국박물관이 ‘이집트를 제외하고, 가장 방대한 양의 이집트 오브제들을 소장한 곳이자 고대 나일강 계곡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곳인 만큼, 수 없는 사람들의 영생에 대한 계획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게 쉽지만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다행히도, 박물관에 전시된 기존 작품 설명서의 대부분이 이미 그들을 전시할 때 지켜야 할 조건들을 담고 있습니다. 박물관의 분류체계 및 전시, 혹은 기관에서 발생하는 일상적 행위들이 이 지침서를 실천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고대의 관중들이 무덤 너머의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유물들의 위치와 배열을 기획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심혈을 기울여 계획을 세웠을 이들을 재배치함으로써 초래된 혼란을 바로잡으려는 이런 작은 시도가 어쩌면 우리들은 모르고 살아가는 삶의 일면에 대해 많은 걸 알려줄지도 모릅니다.”4

박물관은 서구 사회의 근대성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는 공간이다. 이 편지에서 언급하듯 이집트를 제외하고 가장 방대한 양의 이집트 우물을 영국 박물관이 소장했다는 사실은 바로 이 박물관과 식민 근대성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전 세계의 ‘진귀한 것들’을 수집하고 모아 놓은 유럽 귀족 사회의 호기심의 방(Cabinet de curiosités) 혹은 경이로운 방(Wunderkammer)을 기원으로 하는 서구 박물관은 대부분 비서구 문명의 이국성을 신기한 것으로 타자화하여 수집하고 전시할 뿐 아니라 상당 부분 식민화 과정에서 약탈이나 수탈을 통해 얻은 것들을 소유한 곳으로, 서구의 식민 근대성을 핵심적으로 상속하는 공간이다. 작가는 단순히 약탈 혹은 도난된 문화재에 대한 원소유국으로의 반환의 수준에서, 즉, 문화재 반환과 같은 국제법이나 즉 여전히 현대 법령 체계가 다루는 탈취된 소장품의 물리적 소유권에 집중하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오랜 고대 문명이나 원주민 문화와 관계된- 신이나 종교, 사후세계관과 관련하여 신비롭고 숭고한 예술품으로 완성되곤 했던 제의적 기물, 건축물, 조각상 등의 근본적인 대상인 고대인의 시각에서 그 장소성의 맥락과 세계관에 담긴 영속성의 의미에 어떻게 근접하고 복원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영적 세계관에 대한 존중에 기반하여 사자의 영혼이 유물과 함께 강제 이식되거나 디아스포라에 처한 상태로부터 위안과 쉼을 구할 수 있는, 위로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제안으로 표출된다. 한 예로, 1818년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개관하여 2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브라질 국립박물관이 2018년 화재로 소장 중이던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1만 1천 5백 년 전 미라인 25세 여성 ‘루지아’(luzia) 의 일부분 또한 소실하자 작가는 관장에게 직접 편지를 써 루지아를 DNA 복원 대상의 역사적 유물이 아닌 이제 하나의 인격체로 보고 복원된 나머지 신체를 화장하여 루시아가 박물관을 떠나 이제는 쉴 수 있도록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5

작가가 박물관 학예실로 열정을 담아 써보낸 편지는 대부분 답을 돌려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제안이 수용되거나 실현된 적은 아직 없다. 그럼에도 작가는 박물관이 유물을 원래 존재했던 방식을 벗어나 이질적인 장소에 보관, 전시하는 행위가 근본적으로는 과거와 현대, 범 시간대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우리를 초월하는 더 크고 불가해한 정신적 영역 간의 우주론적 연결과 소통을 해치고 있는 것임을, 박물관 제도하에 사자를 비인격화하는 것임을 이 편지쓰기를 통해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환기하고 일깨우고 호소하고 있다. 모리스 블랑쇼는 예술을 위해 사로잡힌 창조의 공간이어야 하는 뮤지엄은 사실 배타적인 폭력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현실과 그 안에서 자신을 주장하는 모든 생명력을 제쳐 두도록 강요한다고 말한다.6 그는 우마이야 모스크에 있는 다마스쿠스 모자이크의 복원물을 전시로 접할 때 우리가 그것을 실제 있었던 공간이 아닌 낯선 공간에 있는 상태로 경험하는 것의 괴로움에 대해 말하며, 박물관을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추상화(abstraction)의 장소라 칭한다. “제례 의식과 음악, 축하연이 있던 실제적 공간”(a real space, thus, a “space of rites, of music and of celebration”)7 과 다르게 신학적 강요 없이도 오늘날 세상의 모든 사람이 방문할 수 있도록 열린 곳이지만, 그곳에서 우리가 하는 행위는 어쩌면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대리석을 런던으로 옮긴 제국주의자 엘긴 경(Lord Elgins)의 즐김과 다를 것 없는 것일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와서 “어떤 피신처도 은신처도 없이, 일체의 다른 세계 없이, 자기만의 비밀의 정수를 간직한 채 현실 그 자체로 서 있는”8 사물들. 고고학자들에게 유괴된 유물들을 보는 이 ‘괴로움’은 한편으로 보관, 보존, 전통, 안전이라는 의미를 갖는 박물관에 “생명이 없는 영속성” 속에서의 응고되어야 예술이라는 지위를 주는 박물관 제도의 현실 위상의 역설과 다시 상통한다. 박물관은 어떤 식으로든 이런 “결핍과 헐벗음, 찬연한 궁핍”9이라고 말하는 블랑쇼처럼, 한 세계의 현존(presence)이었고 자기 태생 공간에 숨겨진 채 오랜 시간 안위 속에 있었던 유물에서 포라스-김이 보는 것은 바로 그들의 고독은 아닐까?

조상의 영혼에 대한 <우리를 묶어 두는 곳으로부터의 영원한 탈출>(2021)이라는 평면 작업은 2021년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된 기원전 1세기 미라의 유해와의 소통을 시도한 결과이다. 작가는 조상의 영혼을 소중히 기억하고 제의 형식이나 샤머니즘의 전통을 가진 한국의 박물관이 유해를 다루는 방식에 특이점이 있는지 조사하고 학예연구원들과 대화했으며, 여전히 망자가 인격체가 아닌 연구를 위한 보존 대상으로 다루어진다는 사실을 재확인한다. 그에 따라 유해와의 샤머니즘적 소통을 통해 다시 매장되기를 원하는 장소를 되찾아주기를 주장하는데, 물웅덩이에 잉크를 풀고 동시에 영적 소통을 개입하여 그 잉크들이 만들어 내는 불가해한 무늬의 위치 정보를 살피고 그것을 페이퍼 마블링 기법으로 기록하여 그들의 소망을 읽어내고자 한다. 아름다운 마블링의 색채가 만들어낸 무늬가 마치 현대 추상회화나 아름다운 텍스타일 무늬처럼 보이는 이 평면은 역설적으로 박물관으로부터 유해를 존재론적으로 복권하고자 작가의 의지와 망자의 영혼을 잠정적으로 대리하는 표식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가의 시도는 분명 동시대 미술의 전위적인 제도비판적 실천의 계보 위에 서 있다. 제도, 법률, 학문 분과 등 점차 고도화된 서구 이성의 매트릭스 시스템 위에 수렴된 거대한 관짝 같은 박물관에 망자의 인격, 고대 세계관, 조상의 영혼 같은 탈식민적, 탈이성적 영역을 존중할 것을 피력하고 설득하는 편지에서 어떤 행동주의의 면모를 엿볼 수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급진적이거나 교란적인 방식 대신 익숙하고 안정적인 평면, 조각 오브제, 드로잉 등의 전통적인 매체들의 프로덕션을 지속하며 그 안에 진중하고 무게있는 인식론적 통찰을 담아내고 있다. 차분한 설득의 언어로 등장하는 제안들은 나아가 애니미즘적 영적 세계관의 자오선이 통과하고, 밤과 별, 눈을 감았을 때의 어른거리는 태양의 모습, 닿지 않는 지평선, 동성 형제의 금기시된 사랑에 바치는 노래 등에 담긴 서정성은 부드럽고 섬세한 시적 공간을 마련한다. 포라스-김의 작업은 특별히 더 유리관에 유배된 위태로운 영혼과 그 모든 유물에 깃든 디아스포라를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듯, 그들의 본래 자리, 고향, 사후 환경과의 정신적 연결까지 관객의 마음에 결코 가볍지 않은 상상과 여운을 드리운다. 과학적 성분이나 재료, 연대 등의 정보와 지식의 무미건조한 대상에서 유물의 존재론적 위태로움과 상실, 비밀스러움과 고독으로 우리의 마음을 닿게 하여 고대 지구의 조상의 영혼과 그들의 세계관, 그 존엄에 대한 회복과 실천을 위한 장소로서의 박물관의 책임과 유물의 존재론을 매우 섬세하게 공명한다.

이러한 서정성은 <흐릿한 지평선을 향한 점근선>(2021)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작업은 신석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튀르키예의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 풍경을 2시간 간격으로 24시간 담아낸 12점의 연필 소묘 시리즈와 유적지와 연관된 여러 경로로 수집한 사운드스케이프를 담은 괴베클리 테페 지형을 미니어처로 만든 조각 오브제로 구성되어 있다. ‘괴베클리 테페’란 배불뚝이 언덕이란 뜻으로, T자 형 돌기둥이 2백 개 이상 늘어 서서 스무 겹으로 원을 이루는 형태가 특징이다. 신전으로 추정되며, 인공구조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약 1만 2천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해발 760m 높이 정상에 묻혀 있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다. 현재에도 여전히 발굴 중으로, 기자 피라미드나 수메르 문명을 뛰어넘는 초고대인류의 건축술에 대한 미스터리를 간직하고 있는데 신전의 건설 동기가 시리우스 별의 관측이나 어떤 천문관측 기록을 위한 장소일 수 있다는 가설이 존재한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현장 방문이 좌절되자, 작가는 유적지의 북서쪽에서 서쪽 하늘 풍경을 천문학자의 도움을 받아 구성했다. 드로잉에서 하늘의 영역은 천문관측대로부터 1만 2천 년 전의 별 위치 값을 제공받아 표현했다. 땅은 태양을 따라가며 볼 수 있는 구글 어스에서 얻은 오늘날의 이미지를 통해서 해가 뜨고 어둠이 드리워지는 하루 동안, 땅과 하늘이 지평선에 가까워지는- 그러나 결코 맞닿지 않는 괴베클리 티페의 24시간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 공간의 창연하고 불가해한 시간에 다가가는 서정적인 연필 소묘 시리즈는, 그 자리를 통과하는 자연 바람 소리부터 이 유적지를 말하고 기록하거나 설명하는 서로 다른 인물과 영상 자료에서 얻은 소리를 통해, 그저 순수한 청각적 감각에서, 개인의 이야기, 신화, 신비, 그리고 국가의 관광 자원으로까지 그 다양한 모습으로 흐르고 조용히 변화한다.


습기과 곰팡이 포자를 통한 영혼 설계10

유리관 안에 유물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유물의 형태, 존재 그 영혼을 본다. 2023년 리움미술관에서 연 개인전에서 갈라 포라스-김은 유물이 존재하던 자리에 종이 조각을 설치하는데, 이 가볍게 매달린 종이 조각이 조명을 받으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마침내 그 형태가 유물의 형태를 ‘구현’한다. 종이 그림자는 보는 각도에 따라 형태가 흩어지기도,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유물의 윤곽을 신비롭고 매혹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이렇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그림자를 통해 유물은 비물질적 존재로, 즉 어떤 영혼적 소통 상태로 전환한다.

“영혼을 “사건(event)”으로, 소유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중간적 영역에만 존재하는 무엇으로 상상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한다면 애니미즘이라는 문제를 달리 볼 수 있지 않을까? “영혼”이 그러한 사건들의 매개라면? 결국 우리 개개인은 살이 있는 대화와 살아 있지 않은 대화를 구별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를 발화하거나 객관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사실상 이러한 차이를 “전시하는 것”은 농담이나 캐리커처의 형태를 통해서나 가능하다.”11

리움미술관 유물 전시실의 유리장 안에 설치된 종이 조각들과 그것의 그림자를 통한 포라스-김의 작품 <청자 동채 표형 연화문 주자의 연출된 그림자>(2023)는 바로 안젤름 프랑케가 말하는 사물에 대한 애니미즘적 상태를 상상하고 촉발하는 위트 넘치는 조각적 사건이자 탁월한 ‘영혼 설계’의 방식의 실현을 보여준다. 고대의 제의성이 여전히 박물관 내에서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애니미즘적 신념을 설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물인 작품의 위트 있는 ‘살아있는 대화들’을 설계하고 실행한다. 사실 동시대 미술적 대화는 본질적으로 애니미즘적 대화와 이미 깊은 상관관계에 있는데, 작가는 매우 시각적으로 간결하고 미니멀한 형태의 개념적 작업 방식을 통해 애미니즘적 대화들을 활성화한다.

<피바디 박물관에 소장된 비를 위한 303점의 제물들>(2021)은 고대 마야인들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 지역의 천연 석회암 침식 동굴 신성한 세노테(Sacred Cenote)의 지하 샘물—바로 고대 마야인들이 비의 신 차크의 장소로 여긴—에서 건져 올려 현재 하버드 피바디 박물관에 보관 중인 수많은 유물을 183 × 183 cm(72 × 72 인치)의 드로잉 화면에 실제 사이즈로 담고 있다. 문제는 이 유물들은 원래 신에게 바쳐져 수장되어 있던 것이라는 점이다. <건조한 풍경을 위한 강수(降水)>(2021)는12 바로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세노테 우물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유물인 코펄(copal)13, 피바디 박물관 수장고에서 채집한 유물에서 떨어져 나온 먼지들을 빗줄기 같은 습기로 뒤덮인 유리관 안에 안치한다. 이 습기 유리관은 작가가 이 작업을 전시하게 되는 각각의 미술관, 박물관이 직접 방법을 고안하여 구현하도록 요청하여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설치에 빗물을 제공하도록 하는데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마야 비의 신 차크(Chaac)와 소장 유물들의 재회’인 즉, 바로 그들 간의 영혼의 재회를 기관의 권한과 순기능을 활용하여 드디어 이루고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다.

습기를 위한 장치화나 설계는 계속 여러 작업을 위해 뮤지엄에 요청되곤 한다. <만기의 순간 나타난 영원한 흔적>(2022)은 모슬린 천 위에 미술관 수장고에서 채집한 곰팡이 포자를 배양하여 습기를 제공하며 전시하는 동안 포자가 번식하도록 하는 작업이다. 곰팡이가 시간을 거치며 퍼져 나가며 매일 다른-추상적 화면으로 진화해 나간다.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의 마지막 방에 설치된 <신호예보>(2021)는 보이지 않는 습기를 산업용 제습기를 통해 모아 액상 흑연을 흠뻑 적신 마대 천 (burlap) 차양 위로 흘려보내고 떨어지는 물방울의 자국을 바닥에 놓인 패널에 기록하는 작업이다. 검은 물은 바로 전시하는 동안 응축된 습기의 양을 시각화한 것으로 미세한 날씨 변화나 실내 습도 변화를 알리는 ‘신호’이다. 미술관에서 습기 제어는 어쩌면 그야말로 생태적으로 무균(clinical) 공간을 지향하는 즉, 미생물들이 비활성화된 밀실을 지향하는 박물관 제도 본질과 특성의 많은 것을 설명한다. 작가의 전시 기간 중 일어나는 물과 곰팡이의 이러한 이벤트들은 바로 숨 쉬고 잠자고 있던 유기물과 미생물의 상호 교류와 활성화, 박물관에서 사멸해야 했을 생명의 부활 같은 기묘한 역설의 유머를 보여준다. 이 두 작업에서 관객들은 곰팡이를 추상회화처럼 보거나, 잉크 자국이 만든 패널의 무늬와 천의 설치 형태에 우선 주목할 것이다. 즉, 표면적으로는 동시대 드로잉, 조각, 오브제, 설치 등의 전통적인 매체 내에 있지만, 고대 영혼을 위한 제의부터 사물의 대화로 만들어지는 전시라는 영역까지 뮤지엄 안에서 살아있어야 할 것들에 대한 총체적 질문과 수행을 우리 앞에 가져다 놓는 것이 바로 포라스-김의 작업들이다.

작가는 구체적인 소장품이나 고고학적 장소에 대한 조사와 경험, 그리고 자유로운 상상과 유물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를 통해 서구 식민 이성의 상징적 제도에 대한 성찰과 통찰을 일깨우는 탁월한 작업을 지속해 왔다. 작업은 종종 애니미즘적 세계관과 관계하는 시적 순간들로 현현한다. 제도 비판적 행동주의, 개념적, 시적, 회화적인 매우 다양한 방식들을 경유하며 고대 애니미즘적 세계관과 동시대 미술의 사물 영혼 설계를 성공적으로 교차시킨다. 하나의 인격을 대하듯 유물에 잠든 영혼을 떠올리고 호소하며, 고대의 별과 밤을 시처럼 불러들이고, 사자와 유물의 눈과 입이 되고, 뮤지엄과 미생물 간의 대화를 생성한다. 유물은 오랜 디아스포라적 존재들이기도 하다. 유물과의 대화는 결국 인류의 조상들에 다가가는 공동체적 시간에 귀속된다. 고대인의 죽음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우리의 이해의 척도를 벗어난 세계의 사물을 소유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오늘날 뮤지엄의 재량권(discretion)은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 보는 행위로 점철된 뮤지엄에서 우리가 보는 것, 그리고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유물과 작품은 어떻게 살아있는 대화를 마련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포라스-김이 10년 동안 예술적으로 추구해 온 핵심적이고 중요한 질문들이다. 이러한 질문과 더불어, 작가는 오래된 사후 세계의 염원을 수신하며 변화를 요구하고 실천 방식을 제안해 왔다. 갈라 포라스-김의 작업은 기억하고 위로하고 살아 움직이는 개체의 사들이다. 이들은 공동체적 회복의 대화를 향할 뿐 아니라 스스로 애니미즘적 사건으로 선명하게 빛난다.

 


1. Maurice Blanchot, “Museum Sickness,” in Friendship, trans. Elizabeth Rottenberg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7), 45. . 한국어판은 다음을 참조. 모리스 블랑쇼, 『우정』, 류재화 옮김(서울: 그린비, 2022).
2. 이 장의 제목은 모리스 블랑쇼의 글, 「박물관의 고통」(Museum Sickness)에서 차용한다. 각주 1과 같은 책.
3. 모리스 블랑쇼, 『우정』, 류재하 옮김(서울: 그린비, 2022), 90.
4. 2022년 1월 26일 영국박물관의 이집트 및 수단 담당부서 관리자(Acting Keeper)인 다니엘 앙투완(Daniel Antoine)에 보낸 편지에서 발췌했다. 작품과 함께 전시되었다.
5. 2022년 1월 26일 영국박물관의 이집트 및 수단 담당부서 관리자(Acting Keeper)인 다니엘 앙투완(Daniel Antoine)에 보낸 편지에서 발췌했다. 작품과 함께 전시되었다.
6. 각주 1과 같은 책, 48.
7. 같은 책, 47.
8. 같은 책, 47.
9. 같은 책, 47.
10. 이 장의 제목에서 쓴 ‘영혼 설계’라는 표현은 안젤름 프랑케가 《애니미즘》 전시를 위해 작성한 글 「애니미즘: 전시와 개념」 내 한 장의 제목 “영혼 설계”(Soul Design)에서 따 온 것이다. 안젤름 프랑케, 「애니미즘: 전시와 개념」, 『애니미즘』(서울: 일민미술관, 2013), 24.
11. 각주 10과 같은 책, 24-25.
12.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그것이 이 회화와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13. 작가에 따르면 나무에서 채집되어 제의에서 향으로 사용된 것으로 우물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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