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올해의 작가상 2017》

도화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올해의 작가상 Korea Artist Prize’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여 올해 6회째를 맞이하는 수상제도로서,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할 역량 있는 작가를 전시하고 후원함으로써 한국현대미술문화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마련되었다. 대상 작가는 실험성과 참신성을 갖추고 한국 미술계는 물론 세계 미술계에 새로운 이슈와 담론을 창출하며, 미래적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생존 작가이다.

‘올해의 작가상’ 제도는 공정하고 개방적인 작가 선정과 지원에 큰 비중을 두고 있으며, 동시대 미술계의 필요에 응답하는 현장 중심적이며 실질적인 미술후원 제도를 지향하고 있다. 올해는 회화, 영상, 설치 등 다양한 형식과 주제의 작품으로 국내외에서 예술적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써니킴(1969~), 박경근(1978~), 백현진(1972~), 송상희(1970~)를 《올해의 작가상 2017》전의 SBS문화재단 후원작가로 선정하였다. 4명의 작가는 운영위원회를 통해 10명의 추천위원을 선정하고 그 추천인단을 통해 역량 있는 작가들을 추천 받아, 국내외 미술인으로 이루어진 4명의 심사위원의 포트폴리오 심사 및 작가 스튜디오 현장 인터뷰를 통해 선발되었으며, 서울관 1, 2전시실에서 다양한 주제로 신작을 선보인다. 오는 12월에는 각 작가에 대한 심사위원단의 2차 심사가 개최되며, 이를 통해 《올해의 작가상 2017》의 최종 수상자 1인이 선정 될 예정이다.

1전시실에서 써니킴은 <어둠에 뛰어들기>라는 주제 아래 회화와 설치작업으로 공간을 연출하며, 내재된 기억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심리적 영역을 실제 공간으로 불러낸다. 회화는 오브제, 영상, 소리와 어우러져 ‘완벽한 이미지’를 위한 하나의 무대를 구성한다. 이어지는 백현진의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은 도피처이자 휴게실, 명상의 장소이자 복합문화공간을 재현한다. 관객은 어느 남성의 삶에 관한 가상의 시나리오 ‘시’에 간섭하며 한편의 극을 경험하고 완성시켜나간다.

2전시실로 연결되는 14m의 천정을 가진 공간에서는 박경근이 <거울 내장>이란 주제로 로봇 군상의 일률적인 제식 동작을 연출하고 빛과 색채는 움직이는 조각들에 반응한다. 이를 통해 시스템 안에서 집단화되고 소외되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강하게 질문한다. 2전시실에서 송상희는 종말과 생성의 관계들을 영상과 사진, 드로잉을 통해 섬세하게 읽어낸다. 아기장수 설화를 빌어 죽음과 재탄생의 변이와 확장을 이야기하는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 영상작업과 함께, 비극적 폭발 이미지들이 담긴 푸른 모노크롬 벽 앞에서 낯선 안부 인사들을 듣게 된다.

 

써니킴

써니킴(1969~)은 인간의 상실되고 불안정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을 회화의 형식으로 재구성하고, 그들 너머의 기억 혹은 상상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일시 정지된 ‘허구의 공간’을 구축한다. 그곳은 현실의 삶 속에서 사라져버린 것들이 등장하여 온당한 자리로 복원되는 과정을 재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보낸 짧은 유년기의 기억 속에서 채집한 ‘교복 입은 소녀들’, 이를 전통 자수나 다른 관습적인 이미지들과 병치시키고, 그들이 사라진 풍경을 만드는 다분히 의식적인 차용과 배제의 방식을 통해 다다를 수 없는 ‘완벽한 이미지’의 실현을 시도하였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금껏 만들어왔던 것과 개입해왔던 상황, 새로운 모색들을 통해서 완성된 풍경을 담은 회화 작품들과 함께 3차원의 구조물 위에 다양한 소재와 그림, 영상을 재배치하며 서로 관계 맺고 각자의 내러티브를 만들어가는 여정을 선사한다. <어둠에 뛰어들기>란 주제로 세 개의 공간에 회화와 영상, 오브제가 어우러져 낯선 이미지와 기억을 생성하며 살아있는 공간을 만든다. 어둠 속을 산책하는 관람객들은 공간의 저편이 개입하거나 감각을 매개하는 전이적 공간(transitional space) 체험을 거치며 ‘소녀들의 초상’, 성스러운 도상(iconic image)에 다다른다.

 

백현진

백현진(1972~)은 음악, 미술, 문학, 영화를 오가며 가수, 작곡가, 화가, 퍼포먼스 아티스트, 시인, 배우, 감독으로 일하는 ‘전방위 예술가’이다. 몇 년 전까지 작가의 회화에 자주 등장했던 익명의 초상(肖像)이 평범한 사람들의 황량한 삶의 분위기에서 유래했듯 그는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불안정한 모습을 관찰하면서 직관적으로 하염없이 붓질한다. 그림의 표면에 나타난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흔적들은 ‘온전할 수 없는’ 감정과 ‘체계 없는’ 생각으로 구성된 우리의 보편적인 삶과 닮아있다. 현란한 색과 소리, 몸짓이 서로 간섭하며 기묘하고 복잡다단한 풍경을 자아낸다. 이 안에서 우리 삶과 일상에 스며있는 사소하고 평범한 생각들에 의지하며 각자의 도상과 지표를 찾거나 부질없이 가로질러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도 즐거운 일이다.

신작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은 전시장을 하나의 도피처이자 휴게실, 명상의 장소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킨다. 한국사회 곳곳에서 도미노처럼 발생하는 병리 현상, 처참하고 슬프고 쓸쓸한 이 모든 조건은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의 ‘서울식 휴게실’에는 어느 남성의 삶에 관한 가상의 시나리오 ‘시’가 놓인다. 일인다역을 맡은 작가는 공간을 구성하는 집행자와 사용자를 넘나들며, 관객들을 그 장면에 자연스럽게 유입시켜 한편의 극을 경험하고 완성시켜나간다.

2017poster

박경근

박경근(1978~)은 영상 미디어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원형과 전설, 시대의 본질이었지만 살펴지지 않은 이면을 새롭게 탐색하는 작가이다. 섬세한 연출과 새로운 편집으로 독특한 영상미를 구현한 <청계천 메들리>, <철의 꿈>, <1.6초> 등에서는 고도성장과 경제개발이라는 신화 뒤에 숨어 있는 시대적 부산물과 광경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한다. 퍼포먼스와 영상이 결합된 최근작 <천국의 계단>은 엇갈리듯 스쳐가는 현대인들의 관계 맺기에서 생기는 감정의 움직임들이 시공간의 틈새를 메우고 조화시킨 실험적 작품이다.

이번 전시는 시스템 안에서 집단화되고 소외되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강하게 질문한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과 근대화의 구호 아래 종속되어야 했던 개인적 경험을 다시 호명하며, 오늘에 이른 한국 남성의 원형이 자라난 ‘터’를 흥미롭고도 심층적으로 탐사한다. 무대로 조성되는 14m 높이의 전시 공간에는 로봇 군상의 일률적인 제식 동작이 연출되고, 생동하는 조각들에 반응하며 빛과 색채가 조절된다.

 

송상희

송상희(1970~)의 작업은 시작은 ‘몫이 없는 자들의 소리 없는 죽음’들을 진혼하는 것이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과거에도 현재에도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현전하는 ‘상징계의 폭력에 의해 배제된 자들’, ‘이름 없는 존재들’ 을 음악, 영상, 드로잉, 텍스트, 퍼포먼스를 통해 더욱 견고해진 서사적 맥락으로 과거와 현재의 복합적 시공간 속에 다시 불러 온다. 2000년대 작업은 근대성을 경험한 여성의 시선으로 비극적 장면과 구조화된 신화를 재현하며 사회 속 여성의 자리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2010년 이후에는 더욱 섬세하고 다층적으로 수집·연구된 역사적 사료를 기반으로 역사의 현장에서 잊혀진 것들, 그 순간 속에 머문 찬란한 것들에 말을 걸며 다시 관계 맺기를 이어간다.

신작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는 비극적 영웅설화 ‘아기장수’ 이야기를 바탕으로 종말과 구원, 그리고 묵시적 상황과 새로운 생성의 에너지를 다룬다. 국가나 집단의 안정을 위한 개인이 희생되거나 대기근과 지자체 파산, 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린 절망과 소멸의 극단적 상황에서도 돋아나는 ‘다시 살아남‘을 영상, 드로잉, 텍스트로 변이시킨다. 한편 맞은편에는 무수한 폭격 이미지를 수집하여 제작한 <세상이 이렇게 종말을 맞이한다 쿵소리 한번 없이 흐느낌으로>를 놓아 여전히 계속되는 파국의 현실과 인류 공멸의 위기에도 익숙히 살아가는 텅 빈 사람들(The Hollow man)을 병치시킨다.